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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와 80년대 초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 이름 하여 '70년대 민주노동운동동지회'다 이 모임이 1999년에 창립되었으니까 9년이 된 셈이다. 

이 모임에서는 해마다 연말이면 총회 겸 송년모임을 갖는다. 그래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방에서 송년모임을 갖기로 하고 지난 12월 12일 전북 진안군 주천면에 있는 '무릉원'이라는 팬션을 빌려서했다.

 

송년모임을 도시가 아닌 산 좋고, 물 맑고, 인심 좋고, 거기에다 품격 높은 예술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에서 하게 되니 한층 여유롭고 멋스러웠다. 산촌에는 어둠이 일찍 내려앉았다. 초저녁에는 보름달이 둥실 떠 있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방에 어둠이 깔렸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나오는 무공해 야채와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건강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저녁 식사와 함께 이곳 주인장이 제공한 걸쭉한 막걸리가 한 순배씩 돌아갔다. 술잔이 도니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왔다. 노래가 나오니 장구가락이 나왔다. 노래에 가락이 나오니 그에 맞춰 덩실덩실 춤이 나오더니 우리는 어느새 하나가 되어 온 방을 빙빙 돌았다.

 

 막걸리 한순배씩 마시고
막걸리 한순배씩 마시고 ⓒ 민종덕

 

"이렇게 놀아본지가 얼마만이냐?" 우리들은 한참을 춤추며 노래하다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70, 80년대 그 치열했던 현장에서 서로를 감싸주며 하나가 되면서 놀던 그 끈끈하고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사실 이날도 우리는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었다. 노래방기계가 없으니 마이크가 없는데다 늘 애창하던 노래들도 가사를 잠깐씩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이거 우리도 노래방 기계가 없으니 바보가 된 것 아닌가?" 하면서 스스로를 한심해 했다.

 

 어깨춤이 절로 나오고
어깨춤이 절로 나오고 ⓒ 민종덕

 

요즘은 모든 것이 자동화 되고 기계화 되어서 버튼만 누르면 해결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전화번호도 외울 필요 없이 단축키가 해결해 주고, 길 찾는 것도 네비게이션이 해결해 주고, 먹고 마시는 것도 자동판매기가 해결해 주고, 노래도 기계가 알아서 반주와 가사를 해결해 주고, 심지어는 인간의 감정까지도 자판기가 해결 해주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속에서 사람은 점점 바보가 되어 기계가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피동체가 되어간다.

 

 장구장단에......
장구장단에...... ⓒ 민종덕

 

우리는 마이크 대신 소주병에 숟가락을 넣어서 잡고, 노래방기계 반주 대신 장구로 장단을 맞추면서 제멋대로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노래 가사 때문에 약간 주춤 했지만 이렇게 노래하는 것이 훨씬 자유롭고 멋스러웠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하면 한쪽에서는 노래를 부르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음 곡을 찾느라 바쁘다. 노래하는 사람은 자막에 나타는 가사를 보랴, 박자를 맞추랴 신경 쓰다 보면 어느새 노래는 끝나고 기계가 채점 해준 점수에 기계가 울리는 팡파르에 환호한다.  우리는 이렇게 노는 것에서까지 개별화 되고 숫자화 되어버렸다.    

 

 노래가 나오니 춤이 절로 나온다
노래가 나오니 춤이 절로 나온다 ⓒ 민종덕

 

 

 신명나니 하나가 되고.....
신명나니 하나가 되고..... ⓒ 민종덕

 

이날 우리들은 그동안 노래방에 익숙해 있던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씁쓸해 했다. 그리고 예전의 우리 모습으로 돌아가자고 다짐했다. 예전의 우리 모습은 노동과 놀이와 투쟁이 서로 분리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었다.  이날 우리는 장구장단으로 철저히 상업성이 배재된 그 시간 속에서 모든 시름 날려버리며 하나가 되었다.

 

요즘에는 어지간하면 시골에도 노래방이 다 있다. 도시야 그렇다 치더라도 마당 넓고, 한갓진 시골에서까지 노래방기계에 의존해 노래할 필요가 있는가 싶다.  가끔은 장구나 꽹과리 장단에 신명나게 놀아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이날 우리는 노래방기계에 없는 타령조 노래를 신명나게 부르면서 즐거운 송년모임을 마쳤다. 

 

우리 집에 시어머니는 염치도 좋지

저런 자식 낳아놓고 날 볶아먹네

날 볶아 먹더라도 살살 볶아 먹지

가마솥에 꽁 볶듯이 달달 볶아 먹네

 

 신명과 포복절도 하는 웃음도 곁들인 놀이...
신명과 포복절도 하는 웃음도 곁들인 놀이... ⓒ 민종덕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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