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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을 흔히 '우리교육청'이라고 합니다. 1970~80년대 상명하달식 교육행정의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학교교육 현장에 대한 든든한 지원행정체계로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정립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나아가 일선 학교 교사들이 좀 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과거 권위주의 교육행정에서 탈피해 거듭나려는 의도에서 나온 용어변경으로 이해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마음으로 크게 환영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교육청은 일제고사와 관련하여 우리 선생님들 일곱 분에게 파면과 해임이라는 중징계처분을 내렸습니다. 파면과 해임은 공무원인 교사에게 가장 무거운 징계처분이자 사형선고입니다. '그만한 일로… 설마…'하던 저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자 무서운 폭력 그 자체로 다가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법과 상식이 통용되던 민주화된 시대에 갑자기 둔탁한 무엇에 얻어맞아 필름이 끊긴 느낌입니다.

 

아이들에게 시험을 거부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교육적 고민과 배려에서 학부모에게 시험 선택권을 준 교육적 활동이었음에도 돌아온 것이 파면과 해임이라니요. 이젠 우리교육청이 공포의 대상이 되어 무서워집니다. 지시와 명령대로 하지 않으면 저 자신도 징계를 받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육청에서 시키는 대로 무작정 따라해야만 하는 교육 현실은 교사에게 한없이 초라함을 느끼게 하는 한편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합니다. 왜냐하면 교사는 그 자체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지대한 정신적 감화를 줄 수 있는 인격이자 곧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가치를 지향하며 영혼의 성숙을 기하도록 노력하고 성찰하는 교사에게 권위주의적인 지시와 명령 그리고 조폭 같은 행정처분이라니요.

 

교육을 일제시대로 되돌리려 합니까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징계처분은 오래 전 퇴물이 되어 역사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1970~80년대 국가주의 교육행정의 망령들을 일순간 되살아오게 합니다. 그것은 또 가까운 나라 일본 교육계에서 몇 년 전 벌어진 일을 연상하게 합니다.

 

일본에서 제국주의 시대 군국주의 상징인 히노마루를 향해 경례를 거부했던 역사교사를 쫓아낸 사실이 자꾸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저의 지나친 연상 작용 탓일까요? 교사를 한낱 국가 행정체계상 위계서열의 말단으로 만들려는 국가주의 교육행정은 일제고사를 당연시했던 식민주의 시대나 과거 권위주의 독재체제에서 횡행했던 모습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의 주장대로 그리고 12월 17일자 전국시도교육감회의 내용대로 전국 단위 일제고사의 시행취지가 학생의 학력을 측정하여 "교육목적이 얼마나 달성됐는지를 파악하여 앞으로 교육계획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를 얻기 위한 활동"이라고 한다면 학교별로 1~2개 학급만 표집조사해도 충분히 평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굳이 전국 모든 학생들을 일제히 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된 것이 교육청의 판단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일선 학교 교사들의 교육적 판단은 범죄시하는 것입니까? 왜 교육청과 생각이 다르다고 교사의 존재를 무시하고 공권력을 앞세워 징계로 위협하는 것입니까?

 

존경받았던 선배교사들, 원로교사들은 한결같이 '교육은 일곱 빛깔 무지개색'이라고 하였습니다. 교육청은 파면과 해임 통보를 받은 일곱 분 선생님들의 교육적 고민과 판단 그리고 아이들·학부모를 배려한 교육적 행위를 또 다른 빛깔 무지개색으로 마땅히 존중해야 합니다.

 

성폭력·비리 교육자들 제대로 징계하십시오

 

 

왜 우리교육청은 1500명 교사를 무 자르듯 잘랐던 1989년 군부독재시절로 돌아가려 하는 것입니까? 왜 착하고 친절하며 아이들에게 존경받았던 선생님들을 무지막지하게 내쫓고 어린 학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슬픔과 상처를 강요합니까? 국가권력의 무지막지한 횡포 앞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배울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힘의 논리 앞에서 굴복하고 체념하는 것을 반복해서 학습하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교육청이 해서는 안 될 일일 것입니다.

 

교육청의 일제고사 관련 행정행위가 교육적으로 숭고한 가치를 지녔다면 일선교사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교조와 비전교조라는 이념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무엇이 진정으로 교육적이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것인지를 고민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학원관계자나 입시교육을 교육의 전부인 양, 맹신하는 극히 일부의 교사들을 제외한다면 전국 학교현장에서 절대 다수 선생님들은 일제고사를 교육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왜 교육청만 외면하는 것입니까? 교육청은 즉시 이 땅의 교육전문가인 교사들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하여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교육청, 아니 서울시교육청에 정중하게 항의하고 요청합니다. 학부모로부터 대가를 받거나 기대하여 성적을 조작하고 학교공사 관련업자·급식업체·참고서 업자·학원관계자들로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뇌물을 받는 교장, 교사들 그리고 성추행·성희롱 등 성폭력 관련 교사들과 어린 제자들을 미친 듯이 구타하는 폭력교사들을 솜방망이 징계하지 마시고 제대로 좀 징계하여 학교현장에서 영원히 추방하십시오.

 

이들이야말로 학교 내의 암적인 존재들이자 자라나는 어린 영혼들에게 지울 수 없는 가치관 혼란과 씻을 수 없는 어두운 기억을 심어주는 장본인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교육청답게 학교교육현장을 측면에서 없는 듯 있는 듯 쉼 없이 지원하는 교육행정조직으로만 남으십시오. 그리고 제발 학교 위에 그리고 교사 위에 군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이미 교육도, 교육행정도 아니며 우리교육청의 모습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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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하성환 기자는 현직 교사입니다. 


태그:#일제고사, #한국교육문제, #사교육, #국가주의 교육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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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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