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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공책, 삐뚤빼뚤하지만 태국어를 적어놓은 내 공책 역시 만만치 않다.
 아이들의 공책, 삐뚤빼뚤하지만 태국어를 적어놓은 내 공책 역시 만만치 않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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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엄마!"

왕리앙의 아이들에게 관계의 기본이 되는 단어라고 생각하고 가르친 단어, 그다음에 가르친 '선생님'이라는 단어는 금세 잊어버리고 보이는 선생님마다 "아빠, 엄마"라고 외치고 다닌다.

지나가는 초등학교 2학년 말썽쟁이 '쩌업'은 "리안 막막 파사 까올리!(한국어 공부 열심히 해요!)"라며 나를 안심시키고,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들은 "밥먹자!"고 외친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 광경, 사실 이렇게 되기까진 수많은 물음에 직면하고 있었다.

태국 북부의 왕리앙 학교에서 석달 남짓한 일정을 보낼 요량으로 활동하는 우리. 그저 즐겁게 뛰어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고정된 수업시간이 정해지자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린 커리큘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뽑아든 건 '한국어' 카드였다,.

첫째, 5명의 팀원이 비슷한 수준으로 알고 있고, 둘째, 다른 주제보단 우리가 잘 알고 사용하고 있으며, 셋째, 우리가 지금 태국어를 더듬더듬 배우고 있으니 수업이 쉬울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러자 마자 날카로운 질문이 날라왔다.

"그거 제국주의적인 것 아니야?"

팀내 평가회의에서 날라온 직격탄이었다.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태였지만 쉬이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그들은 원하지 않는데 돈 좀 있는 나라에서 와서 자신들의 언어를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사고일 수 있다"는 얘기가 더해졌다.

중학교 2학년 수업시간, 아시아 지도를 그려보고 한국어를 배워봤다. 우리가 모두 친구라고 몇 번 이야기하니 아이들 모두 그 이야기를 반복하곤 한다.
 중학교 2학년 수업시간, 아시아 지도를 그려보고 한국어를 배워봤다. 우리가 모두 친구라고 몇 번 이야기하니 아이들 모두 그 이야기를 반복하곤 한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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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가르치는게 목적이 아니잖아"

"우리는 '함께하는 즐거운 친구들(라온아띠 해외봉사단의 슬로건)'이라는 정체성 아래 팀의 뿌리를 '관계'에 두고 생활해왔다. 지금은 우리가 가지고 온 이 뿌리를 공유해야 할 시점이고, 공유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 한국어는 단지 수단일 뿐이다"

반론이 시작됐다. 한국인으로서 태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모두들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던 사람들이다. 특히 태국에서 건너온 결혼이민자나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인들의 관계를 생각해볼 때 정말 많이 틀어져 있다는 생각을 해본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듬더듬 태국어를 우리도 배우면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수업시간에서 발현시켜보자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이 왜 한국어야 하냐?" 질문이 돌아오자 상황은 미궁속으로 빠져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 희로애락을 표현하자"

이때 쯤에 엉뚱한 질문이 들어와 상황이 환기됐다.

"서로가 서로와 관계를 맺는 것, 그게 무조건 좋아야 하는 것인가?"

한 마디로 관계에 하나의 삶을 집어넣자는 소리였다.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겁고.

"우리가 이 곳에서 평생 사는게 아니잖아. 짧은 기간 우리가 생각하는 압축적인 생각을 공유해야 되잖아. 상호 언어를 배움으로써 이런 부분이 공유되지 않을까? 언어라는게 마냥 기쁘고 즐거운 건 아니잖아. 안되서 화나고, 슬플 때도 있지 않겠어?"

그리고 또다시 엉뚱한 회상이 들어와 상황이 재환기됐다.

"내가 제 2외국어 배울 때, 왠지 그 나라랑 친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어. 그리고 태국 사람 중에서도 '사랑해요'라고 한 마디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괜히 반갑고, 가까워지는 느낌이었고. 왜 우리도 그렇잖아. 떠듬떠듬 태국 말 몇 마디 하면 사람들이 엄청 좋아하잖아!"

이 정도 생각들이 공유가 되니 한국어를 가르치는게 목적은 아니고, 제국주의는 아니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샨칸팽 YMCA에 했던 페인팅, 다음주에 우리는 왕리앙에 관계를 논하는 페인팅에 하나로 한국어와 태국어가 비내리는 중간에 서있는 아이들을 그려볼 생각이다.
 지난 10월, 샨칸팽 YMCA에 했던 페인팅, 다음주에 우리는 왕리앙에 관계를 논하는 페인팅에 하나로 한국어와 태국어가 비내리는 중간에 서있는 아이들을 그려볼 생각이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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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도 아닌데, 함부로 가르쳐도 되겠냐?"

방법적 측면이 고민되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주입할 수도 있고, 한국어를 가르쳐본 사람 한 명이 없는 우리가 이런 행위를 함부로 해도 되겠냐는 말이었다.

"야 그럼 우리 수업하지 말아야지. 뭘 가르치겠냐?"

속편한 합리화성(?)의 발언으로 일단 한국어 교육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름대로 고민한다고 했지만, 실제 수업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아이들의 수준차 고려, 자모음을 가르치면서 따라오는 아이들과 못 따라오는 아이들, 말이 통하지 않아 수업이 중간에 우왕좌앙하다 끝났던 일까지.

초창기엔 가서 밭일하는게 차라리 봉사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치닫곤 했었다.

지금은 상호 언어를 배워가면서 관계의 뿌리를 접목시키기 위해 부던히 시도하고 있다. 가족과 학교, 그리고 친구, 왕리앙에도 존재하는 '두레'에 대해 공유해본다. 처음엔 단어로 시작하고, 간단한 문장이 연결되어 그림동화를 보여주거나, 함께 연극이나 게임을 해보고, 그림을 그려본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두레에 참여하고, 아이들의 가계도에 참여하여 함께 생활하고, 그들과 친구라는 명목(?)하에 낚시 다니고, 고구마를 궈먹는다.

잘하는 일일까? 그건 모르지만 아이들이 순간순간 보여주는 표정, 그리고 표현들을 봤을 때우리의 생각이 공유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관계가 본디 쌍방향 소통이라면 우리가 이만큼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초등학교 1학년 수업시간, 두레를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가 얼마 전에 있었던 두번의 마을 장례식과 연결해봤다. 두번 모두 동네 모든 아이들이 와서 일을 거들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수업시간, 두레를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가 얼마 전에 있었던 두번의 마을 장례식과 연결해봤다. 두번 모두 동네 모든 아이들이 와서 일을 거들었기 때문이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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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왜 가르칩니까?'
"그거 제국주의적인 것 아니야?"

아직도 무서운 두 문장이다. 지금도 첫 번째 문장으로 혼란을 겪을 때가 있고, 두 번째 문장이 실천되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이로써 대신하겠다.

"고, 언제 다시 왕리앙에 올거야"
"한달에 2만원씩 모아서 3년 후에요"

5분 정도 걸렸지만 더듬더듬 태국어로 구사한 왕리앙의 할머니와의 대화, 난 위험할 수 있지만 관계맺음의 훌륭한 수단 중에 하나로 한국어를 가르친다.

덧붙이는 글 | 제3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KB-YMCA 라온아띠 해외봉사단 태국팀은 2008년 8월부터 2009년 1월까지 태국 북부 일대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태그:#YMCA, #KB, #라온아띠, #해외봉사,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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