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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동지(冬至)입니다. 동지하면 얼른 떠오르는 게 팥죽입니다. 팥죽은 1년 12달 먹을 수 있지만 동짓날 먹는 팥죽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 전통적으로 붉은색 팥은 악귀를 물리치고 액운을 쫓는 의미도 있지만, 한겨울 뜨끈 뜨끈한 팥죽 한그릇 먹으며 그 옛날 추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하여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새해를 준비하며 팥죽을 쑤어 먹었습니다. 그래서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까지 전해집니다. 저 어릴 적에 할머니와 어머니는 동지날이면 아침부터 팥죽을 쑤느라 하루 종일 분주했습니다.

 

가을에 수확해 놓은 팥을 동지 하루전에 할머니는 광에서 꺼내어 물에 담가 놓습니다. 물에 담근 지 한두 시간이 지나면 빨간 물이 우러 나옵니다. 어릴 때 그 빨간 물을 보고 팥에서 왜 피가 나오지 물었는데, 할머니께서 팥을 불리시며 "동짓날 팥죽을 쑤어 귀신과 나눠 먹어야 한해의 나쁜 기운을 다 쫓을 수 있단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땐 그 뜻을 전혀 몰랐습니다.

 

팥이 다 불려질 즈음이면 어머니는 방앗간에서 찧어온 찹쌀가루 반죽을 해서 동글동글하게 새알을 만듭니다. 저도 옆에서 추석날 송편 만들 듯이 새알을 만들어 보지만 아무리 예쁘게 만들려 해도 어머니께서 만든 것처럼 예쁘지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광주리가 가득할 만큼 새알을 다 만드셨을 즈음이면 할머니는 부엌에 있는 가마솥 밑에 불을 지핍니다.

 

가마솥에 할머니는 불려 놓은 팥을 넣습니다. 그리고 팥이 익어갈 즈음이면 큰 나무 주걱으로 팥을 휘이 젓습니다. 가녀린 팔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할머니가 주걱으로 지을 때마다 팥이 다 으스러지고, 어느새 팥 본래의 모양은 다 없어졌습니다.

 

물과 팥이 하나가 된 듯 걸죽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한광주리 만들어 놓은 새알을 가마솥에 넣습니다. 팥죽과 새알이 섞여 할머니가 젓는 주걱으로 하얀 새알이 보였다 안보였다 합니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젓던 주걱을 받아 연신 또 가마솥을 젓습니다. 얼마나 저었을까요? 드디어 먹고 싶은 팥죽이 다 되었습니다. 팥죽이 다될 무렵은 저녁을 먹어야 할 때입니다.

 

이때가 되면 일 나가셨던 할아버지, 아버지 등 뿐만 아니라 동네에 사는 일가 친척, 이웃들까지 다 모입니다. 안방에 오랜만에 큰 호마이커상 2개가 펼쳐집니다. 제사때나 할아버지 생신 때 펼쳐지던 상을 2개나 펴고 우리 가족들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까지 모두 모여 팥죽을 먹습니다.

 

제 팥죽 그릇에는 할머니가 많이 먹으라며 당신의 팥죽 그릇에서 덜어 주신 새알로 가득합니다. 저는 그 새알 하나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 오물 잘도 먹습니다. 새알만 먹고 남긴 제 팥죽은 할머니가 다 드셨습니다. 팥죽을 먹을때는 꼭 김장할 때 담가두었던 동치미 국물과 먹어야 제맛입니다.

 

어머니는 가마솥에서 연신 팥죽을 담아 안방으로 나릅니다. 몇 번을 나르고 나서야 어머니는 팥죽 한 그릇을 담아 방문 입구 쪽에 쭈구리고 앉아 팥죽을 드십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고생으로 오랜만에 팥죽 한그릇으로 따뜻한 겨울을 보내던 그 때가 생각납니다.

 

어제 동지인 것을 알고 팥죽을 먹고 싶어 남편을 졸라 어제 성남 재래시장으로 팥죽을 먹으러 갔었습니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재래시장 한켠에서는 벌써 팥죽을 쑤어 팔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팥죽을 사먹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도 팥죽을 두 그릇 시켰습니다. 비록 컵라면 용기같은 스티로폼 용기에 담아주는 팥죽이었지만, 남편과 함께 먹는 팥죽맛은 어릴적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그 맛은 아니더라고 그 때의 추억을 다시 생각나게 한 맛있는 팥죽이었습니다.

 

오늘이 동지입니다. 그 옛날 추억과 향수가 담겨있는 맛있는 팥죽 한그릇 드셨나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Daum) 블로그뉴스에도 송고되었습니다.


태그:#동지, #팥죽, #액운, #가마솥, #작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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