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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부수형의 명당 한 가운데 꽃술에 자리 잡은 청량사

 

청량사는 청량산을 이루는 여러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다. 마치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간난 아이 형상이다. 북쪽으로는 연적봉과 탁필봉 자소봉이, 남동쪽으로는 금탑봉이 절을 감싸고 있다. 서쪽으로는 자란봉과 연화봉이, 동쪽으로는 경일봉이 절을 호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절을 이루는 공간은 좁은 편이다.

 

청량사는 그 좁은 공간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절집을 배치했다. 가장 위에 중심법당인 유리보전과 강원에 해당하는 심검당이 있다. 가파른 길을 한 단 내려가면 2층의 종루가 있다. 그리고 다시 한 단을 비켜 내려가면 세속과 절이 만나는 안심당이 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전각이 가파른 경사를 잘 이용하여 상당히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들 전각과 당우가 연꽃 한 가운데 꽃술 자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들 절집 중 청량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역시 유리보전이다. 현판을 공민왕이 썼다는 이야기를 통해 청량사의 역사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절이 원효와 의상 대사까지 인연을 이어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전설 수준이다.

 

고려 말 조선 초를 살다 간 법장 고봉선사(1351-1426)가 청량사를 중창했다고 하니 유리보전도 아마 그때쯤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유리보전은 조선 후기 양식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법당 안에는 세 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약사여래 부처님을 주존불로 하고 좌우에 문수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했다. 중생의 소원을 잘 들어주는 세 분 부처님이 모셔져 있으니 기도처로는 이만한 곳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약사여래 부처님은 종이로 만든 지불(紙佛)이라고 하니 특이하다. 금동불과 철불은 많아도 지불은 많지 않은 편이다. 

 

5층석탑과 심검당 그리고 산신각에서 느끼는 절의 분위기

 

유리보전 앞에는 정말 멋진 5층석탑이 있다. 석가탑을 모델로 하여 최근에 새로 만든 것인데 주변의 자연과 정말 잘 어울린다. 탑이 위치하고 있는 언덕 너머 금탑봉과 빚어내는 풍광은 가히 일품이다. 그 탑을 향해 절을 올리는 불자의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유리보전에서 눈을 왼쪽으로 돌리면 강원인 심검당과 선방인 선불장이 있다. 이들 두 곳은 스님들의 수행처이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심검당(尋劍堂)은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을 지녔다. 선불장은 말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참선을 통해 깨닫는 곳이라는 뜻이다. 불가에서는 참선을 통해 마음의 어지러움이 없을 때 부처님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 법당 뒤로 조금 더 높은 곳에는 산신각이 있다. 이 역시 최근에 지은 당우로 단청을 예쁘게 해서인지 다른 절의 산신각에 비해 화려하다. 안에는 탱화로 표현된 부처님과 산신을 모셨다. 이곳 산신각에서 내려다보니 유리보전과 심검당 그리고 선불장이 나란히 있고 그 앞으로 5층석탑이 우뚝하다. 이곳이 바로 청량사 스님들이 불법을 깨치기 위해 정진하는 공간이다.

 

절도 사람이 만드는 거구나

 

스님들이 수도하고 정진하는 이들 법당 구역을 한 단 내려가면 2층의 범종루가 있다. 우리나라 절에서는 대부분 1층 종각에 종을 봉안하는데 이곳은 특이하게 2층의 종루에 종을 봉안했다. 그리고 종 뿐만 아니라 법고, 운판, 목어 등 사물을 모셨다. 더 특이한 것은 바로 범종루 일층 한쪽에 있는 서점이다.

 

불교와 관련된 책을 팔고 있을 뿐 아니라 불교용품도 진열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 절의 주지인 석지현 스님이 쓴 책들이다. 지현 스님은 2007년 두 권의 책을 냈다. 그 하나가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고, 다른 하나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도 길은 있다>이다.

 

지현 스님은 이처럼 불교계의 대표적인 문사이자 학승이다. 그의 시를 보면 그렇게 차분하고 정적일 수가 없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에서 그는, 바람이 삼라만상과 부딪치는 소리를 통해 순환과 무상(無常)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꽃이 필까 잎이 질까

          아무도 모르는 세계의 저쪽

          아득한

          어느 먼 나라의 눈 소식이라도 들릴까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저녁연기 가늘게 피어오르는

          청량의 산사에 밤이 올까

          창호문에 그림자.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현 스님은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그는 청량사 산사 음악회를 대중이 가장 많이 찾는 불교 음악회로 만들었다. 그는 또한 '함께 하는 시민행동'의 공동대표로 진보적인 입장에서 사회 개혁을 위해 애쓰고 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일종의 NGO로 정부의 부정부패와 기업들의 무책임성을 감시하고 견제할 뿐 아니라,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석지현 스님은 이처럼 늘 함께하는 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안심당 가는 길

 

범종루에서 다시 한 단을 내려가면 안심당이 나온다. 이 길은 특이하게 침목으로 만들어져 밟는 느낌이 남다르다. 그리고 안심당으로 내려가는 길 왼쪽으로는 금잔화가 심어져 있다. 그런데 꽃 사이로 통나무를 설치해 물을 흘러가게 만들었다. 정말 신선한 발상이다.

 

이러한 물길이 있어 꽃은 자연스럽게 물을 공급받을 수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를 통해 시원함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금잔화는 청량사를 상징하는 꽃으로 경내 곳곳에 심어져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금잔화는 금낭화라고도 하며 주황색 꽃을 피운다.

 

안심당은 말 그대로 절을 찾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안심당은 법당이 아니다. 그곳에는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전통 찻집이 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은 석지현 스님의 책 이름에서 따왔다. 입구에 보니 지현 스님의 또 다른 책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도 길은 있다>에 나오는 한 구절이 붙어 있다.

 

"길은 멀지만 가까이에 있다.

늘 저기 있고 여기 있다.

숨어 있는 어떤 길을 우리는 찾아가고

또 찾아가고 있을 뿐이다."

 

북에도 동자승에도 진리는 숨어 있다

 

 

 

안심당은 청량사와 청량산을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여유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다.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다 가도 좋고 그냥 앉아서 쉬었다 가도 좋다. 이곳에 앉아 창문에 통해 밖을 바라보면 신선의 세계가 따로 없음을 알 게 된다.

 

그런데 이 창문 앞에서 우리는 한지로 만든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다. 소박하면서도 조금은 촌스러운 듯한 동자승이다. 그런데 이들 소품이 예술성과 경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곳을 지키는 보살님께 물어보니, 금년 봄 이곳에서 한지공예 전시회를 연 신도분이 기증한 작품이라고 한다.

 

동자승은 모두 다섯으로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한 동자승은 염주를 들고 기도를 올리고 있다. 다른 동자승은 얼굴을 손바닥에 괴고 생각에 잠겨있는 듯하다. 또 다른 동자승은 바랑을 등에 걸고 만행을 떠나고 있다. 또 다른 동자승은 소의 등에 앉아 피리를 불고 있다. 이들 네 동자승은 모두 창가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한 동자승만 안의 벽 쪽에 있다. 그것도 다른 동자승과는 달리 풍선을 불고 있는 장난기어린 모습이다. 이들 동자승들 때문에 이곳 안심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즐거울 수 있고 더 편안할 수 있다. 종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 그 예술가를 언젠가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안심당을 나오며 보니 천정에 은은한 조명을 한 북이 걸려 있다. 저 북은 부처님의 법을 소리가 아닌 빛으로 전파하는 것 같다. 역대 조사 스님들은 우리에게 늘 법과 진리가 가까이 있음을 가르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생들은 항상 그것을 멀리서 찾고 있다. 북에도 동자승에도 진리는 숨어 있다. 단지 우리가 그 진리를 찾지 못할 뿐이지.

 

      

 

덧붙이는 글 | 청량산과 청량사에는 9월말과 10월말에 두 번 다녀왔다.


태그:#청량사, #유리보전, #오층석탑, #석지현 스님, #안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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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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