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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놀라운 아버지 1937∼1974

- 글ㆍ그림 : 조동환ㆍ조해준

- 펴낸곳 : 새만화책 (2008.9.5.)

- 책값 : 15000원

 

 

 (1) 어버이와 아이

 

 고등학교 적 동무가 새로 얻어서 산다는 막 지은 아파트에 나들이를 갑니다. 냄새를 빼느라 겨울에도 창문 열어 놓고 비운 다음, 불을 한창 달구어 빠져나가도록 합니다. 조그마한 골목집에서만 살아오다가 처음으로 아파트에서 살게 되는 동무녀석은 처음으로 집다운 집에서 살게 되었다면서, 이 아파트에서 늙은 어머니하고 함께 살겠답니다. 다음해에 일흔을 맞이하는 동무녀석 어머님은, 당신 막내아들 집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지금 살고 있는 조그마한 골목집’으로 돌아가서 동네 이웃 아주머님들하고 어울리시겠답니다. 아들내미하고 함께 살기는 살아도, 아파트보다는 오래도록 당신 살림을 꾸리며 아이 낳아 기르던 옛집을 뒤로 할 수 없으시다는군요. 그래서 동무녀석 어머님은 동무녀석 누나가 아파트로 옮겨가 살 때에도(혼인하고 아이 낳고 하면서) 당신 딸하고 함께 살지 않았어요. 당신 이웃이 함께 있는 옛 동네가 좋다고 떠나지 않으셨어요.

 

 여느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동무녀석 어머님 사는 집은 낡고 가난하고 좁다란 동네 골목집입니다. 그러나 동무녀석 어머님 생각으로는, 또 삶으로는, 눈물뿐 아니라 웃음을 함께했고, 고단함뿐 아니라 즐거움을 함께했던 집입니다.

 

 동일방직과 대성목재와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수많은 중화학공장이 만석동 9번지 긴 담벼락과 이웃하며 있으나, 동무녀석 어머님 눈에는 숱한 매연 내뿜는 공장 굴뚝이 아니라, 당신과 똑같이 낮은 지붕 작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웃들만 보이시는구나 싶습니다. 이웃들 따뜻함을 느끼고, 이웃들한테 따뜻함을 베풉니다. 이웃들 포근함을 받고, 이웃들한테 포근함을 선사합니다.

 

 동무녀석 어머님한테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 본다면, 눈물겹고 웃음나는 이야기가 몇 자루, 아니 수십 자루 쏟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책으로 적히지 못하는 이야기라고 하나(책 만드는 이들이 눈길을 안 두는 이야기이니까, 또 문학인류학 하는 이들도 눈길을 안 두는 이야기이니까), 우리들 살아가는 데에 밥이 되고 술이 되며 깨가 되고 소금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랴 싶어요.

 

 동무녀석 어머님뿐 아니라 우리 어머니 걸어온 길도 수많은 이야기자루가 아닐까 헤아려 봅니다. 우리 어머니 스스로 털어놓고 있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자루인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당신 아들들한테 당신 삶을 차분하게 들려줄 만한 자리는 없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어머니 스스로 자리며 겨를이며 마련하지 않았다고도 할 텐데, 우리 아버지는 우리 어머니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으며 들어 보았으며 마음속에 새겨 놓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와 함께, 아버지는 당신 살아온 이야기를 얼마나 어머니한테 들려주고 나누면서 같이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이가 하루하루 크는 가운데 더더욱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 아버지 된 사람으로서, ‘네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이란다’나 ‘네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란다’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어야 할는지 걱정입니다. 아이한테 거짓말을 할 수 없고, 거짓말을 할 까닭도 없으니, 보고 듣고 겪은 그대로 들려줄 텐데, 자라나는 아이가 제 아버지한테서 듣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가 어떻게 새겨지게 될지 근심이 됩니다. 그래도 아이는 제 나름대로 곰삭이며 받아들일 텐데, 우리 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미워하는 마음을 당신 아들한테 심어 주었듯, 저 또한 우리 아이한테 아이 할아버지 될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도록 잘못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씁쓸합니다. 모자라고 아쉬워도 내 아버지는 내 아버지이니, 내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은 한결같지만, 늘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돈이 없이는 못 산다고 하지만 돈만 가지고 살 수 있지도 않아요. 우리가 어떤 꿈을 이루어 가는 길에 제 이름값을 높이고 싶은 마음을 품을 수 있으나, 이름값을 높이지 못한다 할지라도 꿈을 못 이루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힘이 세어야 내 몸을 지킬 수 있지 않아요. 여리고 작은 힘이라 할지라도 내 몸을 다부지고 알뜰하게 간수하고 돌볼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씁쓸하고 허전하지만, 기다려 봅니다. 어린 딸아이 사진을 틈틈이 찍어서 종이로 뽑아 둔 다음, 편지 한 통 써서 부치면서 기다려 봅니다. 아버지가 시골집 얻어 살면서 글을 쓰겠다고 하셨으니, 모쪼록 당신 지나온 삶과 당신하고 한삶을 같이한 어머니 발자국을 가만히 더듬으면서 살갑고 푸진 이야기를 써내 주시기를 기다려 봅니다. 더 가지려는 마음이 아니라 더 나누려는 마음을, 더 뽐내려는 마음이 아니라 더 낮추려는 마음을, 더 드러내려는 마음이 아니라 더 고즈넉하려는 마음을 선보여 주시기를 기다려 봅니다.

 

 

 (2) 만화로 담겨진 어버이 삶

 

 만화책 《놀라운 아버지 1937∼1974》를 넘기면서 여러모로 놀랍니다. 먼저, 한 아버지가 보내온 삶을 꾸밈없이 만화로 담아낸 데에 놀랍니다. 다음으로, 만화 솜씨가 대단하기에 놀랍니다. 그리고, 만화마다 우리한테 일깨우는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조금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길이 아니기에 더욱 놀랍니다. 흔한 가르침이 아니라, 너른 사랑입니다. 가벼운 자랑이 아니라, 깊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아버지》를 그려낸 이 아버님은 어이하여 이렇게 오래도록 당신 이야기를 당신 가슴속에만 묻어 놓고 지내셨을까요. 만화에서 느껴지듯, 굳이 ‘당신 같은 사람들 이야기를 내어놓을 까닭이 없다’고 하는 고개숙임 때문이었을까요. 세상에는 책도 많고 이야기도 많은데, 굳이 그 많은 책과 이야기에 당신 삶을 얹어 놓지 않아도 된다는 몸낮춤 때문이었을까요.

 

 가볍게 보아넘기면 우편엽서 크기 만한 그림 수백 장이 들어간 만화책 《놀라운 아버지》일 뿐입니다. 그림 하나하나 글 하나하나 꼼꼼히 읽고 느끼고 새기자면, 그림 한 장에 한 해치 이야기, 또는 여러 해치 이야기, 또는 여러 날치 이야기이기 때문에, 책 한 쪽을 넘기는 데에 여러 날이 걸리게 됩니다.

 

 책 머리말을 보면, 아버지한테서 이러한 만화책을 일구어 낸 아들은, 어느 날 문득 “아버지와 대화하던 중 나는 아버지께서 궁금하게 여기시는 내 개인사가 있는지 여쭤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아버지는 “내가 생각할 때 네가 태어나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여 지금까지는 서로에게 관심과 사랑이 있었던 시기라면, 초ㆍ중ㆍ고 12년 시절은 내가 너에게 대해서 알 수 없는 시기다. 그래서 그 기간 동안 무슨 생각과 행동을 하며 보냈는지 궁금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을 여러 번 되읽으면서, 내 아버지도 《놀라운 아버지》를 그려낸 그 아버지와 마찬가지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한테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앞서인 일곱 살 때까지는 거의 아무런 일들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아기였고 어린이였던 때 이야기를, 내 아버지는 잘 떠올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아닐 수도 있지만). 그러면서,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그러고 부모님 집을 나와서 혼자서 살면서 혼인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오늘까지는, 내 아버지 되는 분은 거의 한 가지도 모르리라 봅니다. 거꾸로, 저 또한 부모님 집을 떠나서 홀로 살아가던 때부터는 아버지며 어머니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신지를 잘 모릅니다.

 

 살붙이요 한식구라고 하지만, 멀리 떨어진 채 보내온 삶이 함께 살아온 날 못지않게 길기 때문에(어쩌면 더 길기 때문에), 둘 사이에 이어지는 끈이 옅어지고, 둘 사이에 맺어지는 이야기가 줄어듭니다. 어머니하고는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어도 아버지하고 연락을 주고받았던 일이란 없습니다. 조금이나마 어머니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제 삶과 생각을 들려주기는 했다손 쳐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던 셈이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셈입니다.

 

 만화를 엮어 《놀라운 아버지》를 그려낸 조동환 님은 책머리에, “예부터 호사유피 인사유명이라 했으나, 나는 미술을 전공한 자로서 이렇다 할 화집이나 자서전 한 권 남기는 것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뻔하였다. 그런데, 다행히 막내아들 해준이가 미술가의 길을 걷게 되어 아버지인 나에게, 부자가 공동 작업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권해 왔다”고 합니다. 아버지 조동환 님은 스스로 생각해 내어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라는 옛말처럼 당신이 걸어온 그림밭을 남겨도 되었을 텐데, 그렇게까지는 못하고(이 나라 여느 사람들은 누구나 이와 같지 않으랴 싶습니다) 아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비로소 좋은 생각과 느낌을 얻어서 그림을 남기게 됩니다. 그러나 모르는 일입니다. 아버지 조동환 님은 당신 아들이 그렇게 ‘함께 그림일을 해 보자’고 말을 건네 주기를 기다렸을 수 있으니까요. 당신처럼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아들을 보면서, ‘언젠가 나(조동환)도 우리 아이(조해준)하고 그림일을 함께하는 날이 있겠지’ 하고 꿈을 꾸면서 조용히 당신 붓을 매만지고 있었는지 모르니까요.

 

 석 달에 걸쳐 아버지 조동환 님 서른일곱 해 삶(1937년부터 1974년까지)을 더듬어 보면서 온갖 생각에 잠깁니다. 저 두 사람은 어쩜 저렇게 어울리고 함께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을까 하고. 나는 내 아이와 살가이 어깨동무하고픈 마음이라면, 아이에 앞서 내 아버지 되는 사람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는 좀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아버지한테도 아이한테도 가까이 다가서도록 애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우리 아이가 제 할아버지한테 “할아버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꽃은 무슨 꽃인가요?” 하고 여쭈어 볼 수는 없겠지요.

 

 

.. 아버지께서 일본에 징용 가시기 전에 해질 무렵 무엇인가 한짐 잔뜩 지시고 오셨다. 어머니와 함께 우리 4형제들 좋아라고 내려놓은 짐이 무엇인가 궁금하여 쏟아 놓고 보니 과자 종류의 포장지 폐품이었다. 어머니께서도 상의도 않으시고 폐품을 사 오셨다고 불만스러워 하셨는데 …… (이튿날 그 폐품 포장지를 삶아 풀을 섞어 찧어 종이 찰흙을 만들어 흙바닥의 방에 발라 불을 지펴 말리니 아주 좋은 장판 대용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방에 뛰어놀다 넘어져도 탄력이 있어 다치지 않아 좋았다. 내가 미술을 가르치면서 또는 생활하면서 흥미를 갖고 아름답게 꾸미고 수선하는 습관이 아버지의 유전인자를 전수받아 그런 것으로 새삼 느끼면서……) ..  (19쪽)

 

 

.. 1944년 일본 북해도에서 초등학교 2학년 다닐 때 겨울인데 어머니께서 물을 끓이시는데 솥이 기울어져 끓는 물이 내 오른발에 쏟아져 화상이 심했기 때문에 1개월 간 학교에 못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약으로는 흙을 무르게 개어 붙이고 마르면 또 붙이니 화기 빠졌고 시원했다. 그리고 참기름을 바르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병원에 갈 생각도 안 했고,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  (35쪽)

 

 

..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1948년) 여름에 보리를 베고 나면 고구마를 심는데, 어머님의 소박한 희망의 말씀이 오늘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닿는다. 고구마를 심으면서 어머니께서 “이 고구마를 가을에 캐서 방 웃목 구석에 수수대로 엮어 둥글게 만들어, 고구마를 담아 놓고 눈오는 날 문구멍으로 눈오는 것을 보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먹는 재미를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심어 보자고 말씀하셨다 ..  (51쪽)

 

 

.. 나는 중학교를 3년 동안 집에서 학교까지 10km 거리를 도보로 통학했다. 언제나 친구 장종일 형과 같이 다녔기 때문에 외롭지 않았다. 겨울에 눈이 내리던 날 5분쯤 늦어 훈육주임으로부터 기합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맨손으로 눈 위에 엎드려 있으면 눈이 녹아 손자국이 깊이 남아 있던 그때의 추억이 생생하다 ..  (74쪽)

 

 

.. 내가 부산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다. 대구에서 부산 가는 열차를 기다리던 때가 한밤중이었다. 그런데 아주 깨끗하게 늙은 노 부부가 차를 기다리는데 의자가 없으므로 가방을 놓고 그 위에 할아버지가 앉고 할아버지 무릎 위에 할머니를 앉혀 놓고 차를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그 당시는 부부가 같이 외출할 때에 서로 떨어져 가는 시대였는데……) 1955년이었다 ..  (91쪽)

 

 

.. 1957년, 군에서 1년 만에 휴가 나온 둘째 형님의 첫말 한 마디! “뜨거운 숭늉 한 모금 먹는 것이 소원이였어요!” ..  (98쪽)

 

 

.. “할아버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꽃은 무슨 꽃인가요?” “나락(벼)꽃과 미영(목화)꽃이지!” 우리 할아버지는 이승만 대통령과 동갑이시고 같은 해 작고하셨는데, 농사가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부지런히 농사일하는 사람을 좋아하셨다. 벼와 목화는 식량과 의복의 근원이므로 꽃도 제일로 여기셨다. 질문하던 친구도 작고했고, 그때가 1950년쯤 된 것 같다 ..  (134쪽)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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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아버지 1937~1974

조동환.조해준 지음, 새만화책(2008)


태그:#만화, #만화책, #아버지, #놀라운 아버지,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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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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