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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댄 게 예사롭지 않다. 친구일까. 부부일까. 아니면 부모 자식간일까. 남해군 홍현 해라우지 마을에서 봤다.
 사마귀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댄 게 예사롭지 않다. 친구일까. 부부일까. 아니면 부모 자식간일까. 남해군 홍현 해라우지 마을에서 봤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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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남해지도를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 77번 국도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내내 고민했다. 남해를 갈까 말까 해서였다. 남해는 여러 차례 다녀왔었다. 자전거 타고 돈 적도 있다. 섬에 워낙 언덕이 많아 자전거를 타고 돌았을 때 고생한 기억이 뚜렷하다.

'다녀왔으니 제쳐도 되지 않겠어?' '여행이 흐름이라는 게 있는 건데, 그 때 느낌하고 지금 느낌하곤 다른 거지. 솔직히 힘들어서 안가려고 하는 거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내내 싸웠다. 결국 가자는 쪽이 이겼다.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자마자 이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몸은 가뿐했고 길은 좋았다. 하늘도 맑았다. 역시 선택을 잘 했다는 만족감이 밀려들었다.

역쒸.

다리를 건너니 양 갈래 길이 나타난다. 한쪽은 77번 국도, 한쪽은 1024번 지방도다. 가능하면 좁은 길로 가자는 게 이번 여행 목표. 1024번 도로를 골랐다. 선택은 옳았다. 자동차는 거의 다니지 않았고, 경사도 그다지 가파르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마다 빼곡한 마을 유래, 정류장만 돌아도 역사가 보인다

소벽마을은 영화 <밀애> 촬영지다. 남해 버스 정류장을 다니다 보면 마을 유래, 마을 특산물, 마을 자연환경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소벽마을은 영화 <밀애> 촬영지다. 남해 버스 정류장을 다니다 보면 마을 유래, 마을 특산물, 마을 자연환경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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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벽마을을 지나 소벽마을이다. 버스 정류장에 마을 소개를 해놓았다. 영화 <밀애>에서 미흔(김윤진)이 인규(이종원)과 데이트를 하다 남편 효경(계성용)에게 들킨 마을이다. 

버스정류장에 마을 소개를 한 게 신기하다. 길 따라 여행하다 보니 남해 전체가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됐다. 70년대 다른 마을로 곡식 팔러 갈 정도로 가난했던 사포마을은 지금은 창선면에서 가장 부자마을로 손꼽힌다는 자랑을 적었다. 80년대 갈망조개(새조개)와 피조개로 큰 성공을 거뒀단다. 그 당시 한 가구당 2000여만원 소득을 올렸으니 적지 않은 돈이다.

신전마을은 오래된 마을숲에 전투경찰이 주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군부대 이전을 건의했고 남해군과 남해군의회가 이전을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에 첫 번째 해야 할 일이 군부대에 무상임대한 신전숲을 되찾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신전마을은 자기들이 간절히 바라는 바를 정류장 안내판에 담았다.

석교마을은 힘이 센 장사가 혼자서 약 6톤 정도 되는 돌을 들어 가교를 놓았다 해서, 숙호마을은 누군가 범을 잡아 굴에서 키웠다 해서 잘 숙(宿) 범 호(虎) 해서 지금 이름을 얻었다.

재미있다.

단지 유래만 적은 게 아니다. 마을 명물도 담았다. 신보탄 정류장엔 서불과차 암각문 비석이 있다. 진시황 사자 서불이 적었다는 설이 있는 오래된 문자다. 창선·삼천포대교에서 멀지 않은 율도마을 정류장은 다리 모양이다. 금포마을 정류장엔 물메기가 걸렸다. 마을 특산물이 물메기다. 정류장마다 개성이 넘친다.

도대체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정류장마다 들르며 마을 유래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류장이 붙박이 문화해설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돌과 대나무로 물고기를 잡는다, 아직도...

죽방렴. 대나무로 틀을 짜서 물고기를 가둬서 잡는다.
 죽방렴. 대나무로 틀을 짜서 물고기를 가둬서 잡는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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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렴. 돌담을 만든 뒤, 조수간만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다.
 석방렴. 돌담을 만든 뒤, 조수간만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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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달렸다 싶은데 다리가 나온다. 창선교다. 남해군은 크게 동북쪽 창선도와 본섬인 남해도로 이뤄진다. 창선교를 지나면 창선도에서 남해도로 넘어간다. 창선교 옆엔 바다 위로 대나무발이 삐쭉 솟아있으니 바로 죽방렴이다.

창선교 옆 지족해협에서 보이는 죽방렴은 좁은 바다 길목에 대나무발을 세워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자 형태로 발을 벌려서 가둬서 잡는다. 1469년(예종 1년) <경상도 속찬지리지> (남해현조편)에 이미 기록이 나올 정도로 역사가 오래다.

남해엔 석방렴(石防簾)이란 또다른 원시어업 형태가 있다. 바다 일부를 돌담으로 막아 고기를 잡는다. 200년전 남해도 남쪽 앵강만에서 처음 석방렴을 만들었다. 만조시 돌담은 물에 잠기고 간조시 드러난다. 서해안에도 있다.

요즘같이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 이와 같은 원시 형태가 남아 있는 게 놀랍다. 이런 형태로 큰 배와 큰 그물을 쓰는 요즘 어업과 상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언젠가 EBS 지식채널e에서 본 해녀편이 기억난다. 그 때 방송관계자가 한 해녀에게 스킨스쿠버 장비를 달고 물에 들어가면 몇 십배 더 딸 수 있을 텐데 왜 그러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때 해녀는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이 그만큼 못 따지 않겠느냐고 대답했었다.

꼭 필요한 만큼만 잡았던 옛사람들 지혜가 생각난다. 16세기 모리셔스 섬에서 발견된 도도새는 18세기에 완전히 사라졌다. 약 400년 전 뉴질랜드에 있던 자이언트모아는 17세기 말 멸종됐다. 무분별한 사냥 때문이었다.

얼마 전엔 그 흔한 참치가 멸종 위기라면서 환경운동가들이 경고를 하고 나섰다. 실제 참치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 아무리 흔한 것도 사라질 수 있다. 죽방렴이나 석방렴은 그 오랜 세월을 이어오면서 후세인들에게 점잖게 훈계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방렴 관광다리 옆엔 해안도로다. 1차선 길로 아주 한적하다. 지도엔 번호조차 없는 길이다. 바다와 마주 달리니 오르막이나 내리막도 없다. 이처럼 번호 없는 해안도로만 따라 달리면 자전거로 둘러보는데 큰 부담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전엔 국도를 따라 달렸기에 그리 힘들었던 게다.

장승이 무척 익살맞다. 남면해안도로에 있다.
 장승이 무척 익살맞다. 남면해안도로에 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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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 끝까지 달린 뒤, 다시 1024번 지방도와 만났다. 남면 해안도로를 탄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가운데 하나다. '아름다운 길' 표지판 옆에 장승이 있다. 장승 모양이 우스꽝스럽다. 여장군은 혀를 빼물었다. 대장군은 이빨이 두 개다. 원래 장승은 근엄하고 무섭다. 이들 돌장승은 '픽'하면서 웃게 만든다. 남해가 지닌 넉넉함이 느껴진다.

앵강만 석방렴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서 사마귀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죽은 모습을 봤다. 여행에서 사마귀 죽은 것은 많이 봤으나 두 마리가 이처럼 죽은 것은 처음이다. 무슨 사연일까. 친한 친구였을까. 부부 사이였을까. 왠지 부부라고 믿고 싶어진다. 한 사마귀 등엔 잎사귀다. 바람이 명복을 빌며 덮어주었나 보다.

가천 다랭이 마을. 45도 각도 산비탈에 논을 만들었다.
 가천 다랭이 마을. 45도 각도 산비탈에 논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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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다랭이 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이 나온다. 경사가 대략 45도다. 뒷산인 설흘산이 그대로 바다로 내리꽂는 모양새다. 사람들은 이 산비탈을 깎아 논을 만들었다. 논이 얼마나 작은지 삿갓배미라는 이름이 붙은 곳도 있다. 삿갓 아래 쏙 들어갈 정도로 작은 논이란 뜻이다.

경제논리에 따르면 진작 사라졌어야 할 논이다. 어떻게 살아남았더니 지금은 남해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가 됐다. 그 날도 관광버스가 마을에 서 있었다.

잠은 장항마을에서 잤다. 다음 날 굵은 비가 내렸다. 군내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남해읍까지 갈 생각이었다. 오전 10시쯤 나왔다. 시골마을엔 대략 1시간에 1대쯤 다니니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웬걸. 12시를 넘었는데도 버스가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책은 이미 다 읽은 상태다.

남해군청과 여객사무실 등 여러 군데 전화를 돌리고서야 버스 시간대가 크게 줄어들었음을 알게 됐다. 장항마을에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는 하루 두 대에 불과했다. 오전 9시 10분과 3시 10분. 그 전엔 3시간 간격이었다. 마을 인구가 줄면서 버스 운행 수익률도 줄어들었다.  주민들은 반발했지만 버스 회사는 배차 간격을 늘렸다.

비 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 장항마을에서 버스는 하루 두 번 운행한다.
 비 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 장항마을에서 버스는 하루 두 번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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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13만7천여명이던 군 인구는 5만명대로 줄었다. 그 곳이 고향인 한 50대 택시기사는 실제 인구는 5만명이 안 될 거라고 말했다. 주소만 두고 인근 도시에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택시기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조선소가 들어오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고 말했다.

인구가 주니 이런 불편이 생긴다. 주민은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자가용을 사서 굴리거나, 국가가 지원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시장에 맡긴다면 전자를 선택하게 할 것이다. 그러면 자가용을 굴릴 능력이 안되는 사람은? 운전면허가 없는 어르신은? '보물섬' 남해가 위태롭다.


태그:#남해, #77번국도,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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