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봉·사·활·동. 오마이뉴스를 매일 찾는 남다른(?) 감성의 독자들은 이 네 글자에서 풍겨오는 채취를 어떻게 맡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백하건데 난 이 네 글자의 채취를 상당히 미화시키기도 했고, 따뜻하게 탈바꿈시키기도 했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이 곳 태국에 오기까지는 말이다.

 

내 주된 활동은 '환경보호에 대해 배우고 실천하는 일'. 하지만 환경 그 자체인 마을에서 이 구호가 조금은 쓸모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급히 바꾼 활동은 '친구 되기'. 대상은 초등학생과 중학생이었는데, 매일 궤도를 이탈하는 나는 엉뚱하게 매일매일 옆에 있는 유치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으~ 으~ 으앙"

 

처음 유치원 문을 두드린 날, 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덩치는 산만한 거한이 유치원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지레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그 넓은 공간에서 20명 남짓되는 아이들이 한 쪽 공간으로 모두 피해 있었다.

 

25살이나 먹은 남자였지만, 조금은 심상했다. 난 그저 그 공간이 궁금해서 들어갔을 뿐인데. 그 때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외국인을 바라보는 유치원 선생님의 눈빛, 미안함을 동반해서 빨리 나가주길 바라는 그 눈빛, 나의 첫 번째 방문은 그러했다.

 

"우~ 우~ 으악!"

 

두번째 방문한 날, 다행히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리진 않았다. 하지만 역시 사람 취급(?)을 받진 못했다. 여기저기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잠깐 옆에 오는가 싶더니 큰 소리를 지르면서 탁자 밑이나 구석으로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리고 난처해하는 유치원 선생님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유치원 선생님의 눈빛이 다시 느껴지기 전에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그 공간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오기가 생겼다. 이번엔 울지 않았으니, 다음엔 소리는 안 지를 거라는 나름대로의 가설! 하지만 3~4일여 아이들의 반응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오~ 오~ 까올리! 까올리!"

 

이 주 정도가 지나자 까올리(한국사람이라는 태국말)를 외치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마 '괴물' 정도에서 '신기한 사람' 정도로 인식이 변한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난처한 눈빛의 유치원 선생님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더없이 마음 편했다.

 

이 때부터 아이들 중 일부가 나를 보고 '싸와디캅(합장하며 외치는 태국 인사말)'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놀랄 만한 변화였다. 나를 사람으로 인식해주는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지만, 또다시 '으악'이나 '으앙'으로 회귀할까봐 그 정도에서 만족하고 말았다.

 

 

"피고~ 피고~"

 

(나를 갸륵하게? 여긴 유치원 선생님의 멋진 지도가 있었지만) 아이들은 나를 '까올리'에서 '피고('고'는 나의 성, '피'는 태국에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붙이는 호칭)라고 불러주기 시작했다.

 

이젠 제법 아이들이 다가와서 바지를 잡기도 하고, 때리고 도망가기도 했다. 거기에 내가 자주 유치원을 방문한 이유 중 하나, 낮잠을 즐길 때 아이들을 안고 자기 시작했다. 이 놀랄 만한 변화에 유치원 선생님은 이제 내가 올 때마다 반겨주기 시작했다.

 

어제는 유치원 아이들이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춘다는 첩보(?)를 입수,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춤을 신나게 췄다. 혹자는 지능이 덜 발달한(?) 유치원생 한 명이 늘었다고 표현했다.

 

 

"으 하하하~ 으 하하하~"

 

두 달 쯤 된 것 같다. 이젠 아이들이 나만 보면 웃는다. 시장에서 5바트 혹은 10바트(한화 200원에서 400원쯤)하는 과자를 서로 먹여줄 수 있는 정도의 사이가 됐다. 달려와서 안기는 아이도 있고, 바지를 잡고 놓지 않는 아이도 있다. 내가 간단한 회화를 구사하자 "밥 먹었냐?", "어디 가냐?" 등을 물어보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아이들이 나만 보면 환하게 웃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동네에 아주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유치원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매일 익숙한 공간을 벗어났는데 날 기억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나에게 반갑게 이야기 했다.

 

'피고!'

 

왜 그렇게 그 아이에게 고마웠던지,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를 일이다.

 

요즘은 마을 잔치다, 중학생 캠프다 해서 내 주요 활동무대(?)인 유치원에 소홀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반응만큼은 뜨겁다. 다만 어제 본 '앵'이라는 여자아이가 이유없이 짜증을 내던데,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것은 아닌지 시시 때때로 고민해보고 있다.

 

봉사활동, '남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삶'.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 쯤은 이렇게 생각해보지 않을까 싶다. 비록 몇 달 안되는 기간 해봤지만 봉사활동은 그냥 '삶'이다.

 

세상에 일방적으로 헌신하고 희생하는 삶은 없다. 상호 영향을 주고 도움을 주는 것이다. 봉사라는 것이 허울좋은 명분을 빌려서 자기만족을 하는 형태가 아닐까 요즘 때때로 고민을 해본다.

 

어쨌든 나는 오늘도 유치원의 문을 두드린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위한 단순한 시도와 관계 속에서 내 삶의 월척을 건지기 위해서!


태그:#라온아띠, #KB, #YMCA, #유치원, #해외봉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