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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위헌 시비가 가장 많은 법률을 꼽으라 하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빼놓을 수 없다. 1988년에 헌법재판소가 세워진 이래 집시법만큼 헌법재판소를 들락날락거린 법률도 흔치 않다. 그만큼 문제거리가 많은 법률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실제로 집시법은 수많은 집회에 대해 ‘금지통고’를 내릴 수 있도록 해준 장본인이었다. 집시법이 아니었다면 인간다운 삶을 위해,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수많은 이들을 정부에서 그렇게까지 ‘통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올해 촛불집회에서 집시법의 역할은 특히 두드러졌다. 덕분에 집시법은 이제 상당수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법률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야간 집회 원칙적 금지’ 조항을 이유로 또다시 헌법재판소에 불려가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별안간 동아일보에서 집시법의 ‘변호인’으로 나섰다.

 

‘촛불’을 끈 집시법이 악법이란 말인가 (동아일보 12월 18일자 칼럼)

 

동아일보는 무슨 근거로 자신만만하게 ‘집시법이 어떻게 악법이란 말이냐’고 소리치는 것일까. 일단 동아일보의 ‘합헌론’부터 보자.

 

'촛불' 탄압의 도구 집시법이 6월 민주항쟁의 산물이라니

 

헌법이 보장하는 각종 기본권이 무제한의 권리가 아니듯이 집회·시위권도 마찬가지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저마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100% 누리려 한다면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충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그런 혼란 상황을 막을 책임이 있다.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자유와 권리를 법률로 제한할 수 있게 한 헌법 제37조의 정신이 그것이다.(동아일보 칼럼서 인용)

 

대한민국 헌법 37조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조항이다. 거기까지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헌법 37조의 정신이 기본권을 제한하는 데에 있기보다는 기본권을 국가가 ‘함부로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즉 헌법 37조 2항(“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에 따라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오직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 그것도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해서만’ 제한할 수 있으며, 그 경우에도 권리의 본질적 내용은 ‘절대’ 침해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이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때에 ‘과잉금지원칙’이라는 복잡하고도 엄격한 판단기준을 사용하는데, 이 역시 헌법 37조 2항의 초점이 어디에 놓여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헌법 21조 2항은 집회에 대한 허가 제도는 ‘절대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데, 그만큼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야간에 집회하면 사회분위기가 불안해진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집회를 금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헌법의 ‘정신’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보니 동아일보의 ‘집시법 합헌론’은 상당히 빈약해보인다. 아니, 오히려 집시법에 얼마나 ‘위헌적인’ 요소가 많은지가 더 분명해진다. 5월 중순 처음으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청계광장에서 광화문 거리로 나서려 할 때 경찰측은 수십 대의 전경버스를 동원해서 도로 곳곳을 철저히 봉쇄했다. 촛불시위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는 소화기와 물대포가 난무했다. 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닭장차 투어’를 경험했고,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간부들에게는 수배령이 떨어졌다.

 

노무현 정권때는 어땠는가? 노태우 정권 때도 한번도 막은 적이 없었던 11월 노동자대회를 2007년에는 전경버스로 광화문 사거리 전체를 봉쇄하면서까지 막으려했고, 이에 반발하여 대회를 성사시키고자 했던 민중들을 200명 넘게 연행했다. 이 모든 것이 집시법(10조: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일정 요건을 갖추면 허용할 수 있다.)”, 12조: “관할경찰관서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 교통 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금지 … 할 수 있다.”)을 근거로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이 일들을 과연 헌법의 ‘정신’에 따라 이루어진 일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동아일보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산물(産物)이라 할 수 있는 현행 집시법은 그런 점에서 권위주의 정권 때의 규제 위주 법률과 다르다. 민주적 정당성을 충분히 갖춘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했지만, 무슨 근거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촛불에 대해 할 얘기가 '폭력' 얘기 밖에 없는가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동아일보가 ‘집회’를 바라보는 시각 그 자체다.

 

A 교수는 최근 교내 학술대회에서 “촛불집회는 무한한 상상력과 표현력이 분출된 장(場)이었다”고 찬양했다. (중략) A 교수가 극찬한 ‘촛불의 상상력과 표현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경찰관을 붙잡아 계급장을 떼고 옷을 찢어 상반신을 알몸으로 만들어 집단 구타한 것, 여대생이 경찰관에게 목 졸려 죽었다는 허위 사실을 퍼뜨리기 위해 사진을 조작한 것, 시위 현장에 유모차를 끌고 나와 아기를 위험에 빠뜨린 것, 누리꾼들이 일부 신문사 광고주와 상점을 협박한 것을 말하는가.(동아일보 칼럼서 인용)

 

집회의 자유를 ‘폭력․비폭력’의 구도로만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비좁은 시야에서 비롯된 것이다. 폭력, 비폭력을 운운하는것보다는 앞서 그 집회가 무엇을 위한 집회이고,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무슨 목소리를 외치기 위해 모였는지부터가 중요하다. 왜 중고생들이, 직장인들이, 노동자들이, 그리고 이 땅의 수많은 민중들이 촛불집회에 모여들었는가? 단순히 ‘미국산은 싫어’, ‘광우병은 무서워’식의 이유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 아니다. 한미동맹, 한미경제공조를 내세우면서 국민의 건강과 나라의 자주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팔아넘기는 정부의 모습. 이것에 대해 분노하고 반대하면서 광화문에 촛불이 모여든 것이 아닌가.

 

이런 반대의 목소리를 이명박 정부는 어떻게든 억누르려고 했고, 이에 대한 저항으로 인해 시민 쪽에서도 폭력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방어적․대항적인 의미가 더 컸다. 오히려 폭력적 진압을 자행했던 것은 경찰 측이었다. 이런 일련의 제반 상황들을 전부 무시하고서 동아일보 칼럼은 집회의 폭력성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여기에 동아일보가 집회의 자유를 바라보는 비좁고도 왜곡된 시선 - 법과 질서, 정부의 요구에 맞는 온순한 집회만이 헌법적으로 보호받는다 - 이 녹아들어 있다.

 

민중생존권의 최후 보루,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

 

집회와 시위는 역사가 생긴 이래로, 특히 근대에 들어서 사회에서 억압받는 이들이 자신들의 요구가 기성 법제도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에 마지막으로 쓰는 수단이었다. 자신들의 생존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역사의 변화를 만들어 왔고,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다.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헌법에서는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하는 등 집회․결사의 자유를 특별히 강하게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에 집회의 자유가 적혀있느냐 아니냐가 결정적인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집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나아가 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나서려는 민중들의 노력 그 자체일 것이다. 87년 6월 항쟁과 올해 08년 촛불집회를 통해 민중들은 그러한 노력들을 온몸으로 실증해주었다.

 

미국발 경제위기로 인해 민중생존권 요구가 절박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집회의 자유가 또다시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회에는 여당 의원의 발의로 ‘복면 착용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집시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움직임들이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도 이번 칼럼을 통해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아일보가 진정으로 ‘헌법의 정신’을 생각한다면, 집시법 변호에 신경쓰기 전에 광화문의 촛불을 통해 확인된 민심의 흐름부터 되새겨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언론비평웹진 필화(www.pilhwa.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집시법#촛불#집회#시위#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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