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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를 둘러싼 기류가 심상찮다. 이미 7명의 교사가 중징계를 받았고 이젠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이 앞선다.

 

이번 논란은 교육방식을 둘러싼 보수 성향과 진보 성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다. 보수 성향의 사람들은 아이들은 판단력이 부족하므로 비록 그들에게 힘들더라도 적당한 강제와 압력을 동원해 교육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학습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지나치게 고려하는 교육방식은 오히려 학습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역차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진보 성향의 사람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존중과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적 가치에 의하면 학습능력이 부족한 아이들도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

 

보수와 진보는 교육의 목적에 대해서도 전혀 다르게 설명한다. 보수적 교육관을 가진 사람들은 국가의 번영과 이익에 기여할 수 있는 산업 인재를 기르는 것이 교육의 주목적이라고 말한다. 반면 진보적 교육관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가지고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위해 일할 수 있는 훌륭한 인격을 가진 인간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주목적이라고 말한다. 

 

일제고사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두말할 필요 없이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이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현상이고 오히려 이런 다른 생각들의 공존은 바람직하다. 물론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는 그런 상호 노력이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현재의 형국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이 때문이다. 바위는 아무리 계란으로 쳐봤자 좀 지저분해지기는 하겠지만 결코 갈라지지 않는다. 외형상의 지저분함도 시간이 지나면 바람과 비로 말끔해 씻겨나간다. 그런데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이유는 그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인데, 다시 말하면 최후의 수단인 셈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심각한 힘의 불균형 상태가 존재함을 설명한다. 이런 상황은 상대적으로 강한 자가 자신보다 약한 자를 철저히 무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현 교육 당국은 바위와 같은데 일제고사에 반대하고 교사들에 대한 중징계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가진 것은 겨우 계란뿐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의 상황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소수 의견도 당당히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 당국은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수적으로 봤을 때 소수이므로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얘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꽃'이 아니라 어설픈 민주주의의 '변명'이다.

 

다수결은 편리한 민주적 절차로 이용되기는 하지만 진정한 민주적 절차로서의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다. 특별히 다수결로 논란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잠재적 갈등을 촉발시키거나 현 갈등을 약화시킬 수 있으므로 현명치 못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이런 연유로 많은 나라들과 국제적 기구들이 논란이 되는 문제를 다룰 때는 소수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다수결을 지양하고 한 사람의 의견까지도 경청하는 합의방식을 실천하고 있다. 게다가 일제고사와 관련해서는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므로 다수결 원칙도 타당성이 떨어진다.

 

교육 정책은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고 전 국민이 교육 정책에 있어서는 나름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교육 당국은 가치관의 차이에 의해서든 경험의 차이에 의해서든 교육 정책과 관련해 많은 다른 생각들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육 당국이 할 일은 상대적 소수의 의견을 내치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다양한 의견을 발굴해 아이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교육 정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아무리 '계란으로 바위치기'의 형국이지만 이 논란은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민주의식이 교육 당국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당국이 해야 하는 일은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제고사 정책을 잠정 중단하고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을 찾아봐야 한다. 복잡하긴 하겠지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찬, 반의 단선적인 의견 수집이 아니라 직접 당사자들인 학생, 교사, 학부모들의 의견을 최대한 자세하게 수집하는 것이 전국적 조직망을 갖춘 교육 당국에게 뭐 그리 어렵겠는가.

 

사실 이런 진부한 글을 쓰는 것은 현재로선 '계란으로 바위치기' 외에 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끝까지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계란으로 계속 바위를 치면 바위를 매몰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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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일제고사,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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