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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를 지나 반듯한 길을 달리다가 구불구불한 15번 국도로 들어선다. 다리를 건너고 다시 구불거리는 도로를 달린다.

 

오늘(12.20) 찾아갈 곳은 고흥 나로도(羅老島). 나로도는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로 이루어 졌다. 나로도는 나라에 바칠 말을 키우는 목장이 여러 군데 있다고 해서 ‘나라섬’으로 불려왔는데, 일제치하 한자 지명으로 바뀌면서 나로도가 되었다. 한 번 바꿔 놓으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다리를 건넌다. 1994년 양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완공되어 이제는 차로 갈 수 있다. 차창 밖으로 비가 조금씩 흩날린다. 산행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지만 바다 근처 산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섬과 어우러진 맑은 바다 풍경을 느껴보고 싶어선 데….

 

안개 속을 걷는 숲길

 

무선국 안테나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노란표지판은 봉래산(蓬萊山, 410m) 정상을 1.4㎞라고 알려준다. 비가 살짝 내리더니 산은 안개 속으로 숨었다 나왔다 한다. 모아서 자라다보니 경쟁하듯 하늘로 자란 소사나무는 안개 속에서 구불거리는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비에 젖은 산길은 촉촉하다. 바닥에 쌓인 낙엽은 일부러 깔아 놓은 것처럼 수북하다.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송악, 마삭줄, 줄사철은 겨울이지만 푸르름을 자랑하듯 반짝거린다. 얼마 오르지 않아  능선 길로 올라선다. 안개 속으로 구불거리는 해안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답다. 하지만 조금 아쉽다.

 

부드러운 산길을 40분정도 쉬엄쉬엄 올라가니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393m)가 나온다. 20여분 더 가니 돌무지가 덮고 있는 정상이다. 예전에 봉화대가 있었단다. 사방을 둘러본다. 안개 때문에 바다가 맑게 보이지 않는다. 아쉬워서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보고 또 보고. 아쉽고 또 아쉽고.

 

 

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용송의 꿈

 

아래로 내려서니 숲길은 또다시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소사나무는 하얀 빛으로, 단풍나무는 살짝 붉은 빛을 띠고, 때죽나무는 검은 색으로 눈길을 끈다. 숲과 어우러진 안개는 그 속으로 들어가려고 다가가면 다시 저만큼 물러난다.

 

그렇게 내려오니 똬리를 틀고 죽은 소나무가 한그루 있다. 용송(龍松)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완전히 ‘전설의 고향’ 분위기다. 죽은 용송을 안타까워하는 표지석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아름다운 봉래산 계곡 청석골에서 안식하던 용이 이곳의 비경에 도취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소나무로 변신 100여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청석골의 신비를 지키는 용송으로 살아 있다가, 고흥 군민의 염원인 봉래산 자락에 우주센터가 들어서게 되자 召命을 다한 龍이 때맞추어 2003년 태풍 “매미”때 드디어 승천하게 되었다고 한다.

 

너무나 잘 짜 맞춘 한편의 전설이 되었다. 나무의 상태로 봐서는 승천하지는 못한 것 같다. 태풍에 부러진 가지는 땅으로 고개를 떨어뜨린 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조금만 더 살아보지. 내년이면 이곳에서 하늘로 로켓이 올라간다고 하는데. 살아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삼나무 숲을 가로지르는 오솔길 따라서

 

조금 더 내려오니 시름재. 더 이상 능선을 타지 못한다. 우주센터가 들어오면서 철조망으로 막혔다. 임도가 나온다. 길옆으로 소나무 한그루씩 서있는 게 옛날에 달구지 타고 다녔을 것 같은 분위기가 난다. 임도를 따라가니 삼나무 숲으로 인도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숲으로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간다. 와! 크다.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 큰 키에 주눅이 들었는지 조용조용 걸어간다.

 

 

이 삼나무 숲은 1920년대에 조성되었는데, 처음 심어졌던 나무들은 좋은 목재로 사용되었고, 지금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은 나중에 다시 심어진 것이라고 한다. 삼나무 숲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군데군데 빈 의자가 앉았다 가라고 한다.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지나온 길이 더 아름다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삼나무 숲을 나오니 외딴집이 한 채 있다. 저기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어떤 기분일까? 산허리를 타고 가는 길은 다시 처음 산을 오르던 곳으로 나왔다.

 

300년 된 소나무가 숲을 이룬 나로도해수욕장

 

나오는 길에 송림이 아름답다는 나로도해수욕장에 들렀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진다. 300년 이상은 되었을 소나무들이 해변으로 방풍림처럼 서있다. 한 두 그루도 남아 있기 어려울 텐데 대충 봐도 100그루는 넘겠다. 한동안 넋을 잃고 소나무를 바라본다. 만져보기도 하고 올려다보기도 하면서 한참을 감상했다.

 

 

해안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니 천연기념물 제326호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나온다. 바가지를 엎어 놓은 듯 둥그런 숲은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등 해안가 대표적인 상록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상록수들로 가득 찬 숲은 어둡고 빽빽하다. 울타리로 둘러쳐 있지만 울타리가 없다고 해도 들어가기 무섭겠다.

 

해안 길이 끝나는 곳은 더 이상 길이 이어지지 않는다. 외나로도와 내나로도를 연결해주는 다리가 보인다. 나로도. 참 아름다운 섬이다. 숲길이 걷고 싶으면 나로도로 오세요.

덧붙이는 글 | 봉래산 산행은 한 바퀴 돌아오는데 넉넉히 2시간 20분 정도. 바로 아래로 우주센터가 있으며, 외나로도 들어오는 길 바로 옆으로 나로도해수욕장이 있다. 섬 끝으로는 몽돌밭으로 유명한 염포해수욕장도 있다.


태그:#나로도, #봉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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