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에 던져진 마르크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마르크스만큼 오해를 많이 사는 이도 없을 테다. 체 게바라는 사랑받는 영웅이지만 카를 마르크스를 말하면 뜨악한 눈초리를 받기 십상이다.
한때 그이의 사상은 온 누리를 풍미했고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의 꿈을 잉태했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가 실패하고 붕괴하면서 마르크스도 함께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20세기는 광란과 야만의 시대였고 대한민국은 미국의 우산 아래 가장 보수적인 나라로 남았다. 나는 초중고 12년의 교육을 받는 동안 종종 '좌편향' 교과서의 '우편향'적인 가르침 때문에 불편하였다.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이며 직업에 귀천이 없고 누구나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들이 도처에서 빤히 벌어지고 있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꼭두새벽 인력시장의 고단한 한숨을 설명하지 못했다. 밀의 '자유론'은 왜 단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수십 년 갇혀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교과서는 왜 이쪽에서는 노동과 가난과 궁핍이, 저쪽에서는 자본과 사치와 풍요의 세상이 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세상을 켜켜이 뒤덮어 온통 깜깜하게 하는 것의 정체를 짐작조차 하지 못해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고등학교 막바지에 마르크스를 만났다. 혁명적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세상을 계급의 눈금으로 식별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가 위대한 거장인 이유
흔히들 현실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의 실패를 동일시하지만 그것은 대개 사실은 마르크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범하는 전형적인 오류다. 모두들 마르크스를 이야기할 때 거의 기계적으로 공산주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방법을 써서 자본주의의 미래에 공산주의라는 역사적 대안을 던져주었을 뿐이다.
그이는 일생 동안 한 번도 자신의 방법만이 옳은 길이며 이걸 그대로 따라하면 공산주의가 오고 인간이 해방된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런 맹목적인 숭배와 노예근성은 마르크스가 가장 혐오하는 태도였다.
마르크스가 진짜 천재이고 위대한 거장인 이유는 그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아주 철저하고 정교하게 밝혀냈다는 데에 있다. 마르크스 이전까지 제도권(우파) 경제학에서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
그들은 노동자의 임금과 자본가의 이윤 사이에서 불거지는 중한 문제들을 자유주의라는 지우개로 지워 버렸다. 이 때문에 우파 경제학에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공황론이 없다. 불안한 작금의 상황, 미국조차 휘청거리고 세계가 공황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이때 자유주의 경제학이 무기력한 이유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주기적 공황이란 아주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옛날 대공황 시절 미국을 구한 '슈퍼맨' 케인즈가 축적과 공황의 관계를 1936년에 이야기했으나 이미 마르크스가 그보다 훨씬 전에 같은 이야기를 <자본론>에 썼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누구나 노동하지 않을 자유가 있지만 노동자에게 '노동'이란 실상 '생존'과 마찬가지 말이다. 제 몸뚱이 외에 아무것도 없는 노동자는 오직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팔아서만 생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며 노동에서 해방된 인간은 자본가뿐이다. 바로 이에 대한 울화와 비탄에서 사회주의가 태어났다. 사회주의는 뜨거운 감정을 거름 삼아 싹트지만 차가운 이론으로 가지를 뻗어 인간의 존엄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그걸 가능하게 한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잉여가치 착취부터 이윤율 하락의 법칙과 거듭되는 공황을 지나 노동자 계급투쟁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붕괴를 말한다.
두루뭉술하고 화려한 말재간이 아니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명료하고 정확한 수식으로 된 이론이다.
거대한 세상이 작동하는 일반 법칙을 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간은 백 년에 하나가 나오기 힘들 테다. 아인슈타인이 물리의 공간에서 'E=mc²'라는 간단한 말로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증명했다면, 마르크스는 자본의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해냈다.
마르크스주의가 단지 이론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실천을 요구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럴 때면 마르크스는 현실의 공간으로 나타나 자본의 사슬을 끊기를 목 놓아 소리친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 편에서 싸우는 모든 것에 마르크스의 흔적이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의 것이다.
원숭이도 이해한다니 그만큼 쉽다는 말
나는 마르크스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책을 읽었지만 이 책이 가장 쉽다. 원래 <자본론> 원전은 두꺼운 책 세 권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글이다. 게다가 글자를 꼭꼭 씹어 읽어야 숨은 속뜻을 알기에 어렵기까지 하다.
<공산당 선언>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일반 노동자들이 보도록 쓴 것이지만 <자본론>은 마르크스가 노동자에게는 너무 어려울 거라고 걱정한 책이라니 말 다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당장 제목부터가 원숭이도 이해한다는 것이니 그만큼 쉬이 설명할 수 있다는 배짱의 표현인가 보다. 읽어보니까 과연 알맹이만 쏙쏙 골라내 차근차근 풀어놓고 있으니 마르크스와 첫 만남을 바라는 사람에게 좋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 좀체 드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거두, 김수행 교수가 권하는 책이니까 나도 덩달아 슬쩍 권한다 하더라도 허물이 되지는 않겠다 싶다.
특히 내 또래 88만원 세대 청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은 죄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다. 참과 거짓을 판별하려면 자본권력을 올바로 알아야 한다. 어쩌면 아무리 세상을 살피고 머리를 쥐어뜯어도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별안간 북받치는 뜨끈한 감정의 덩어리로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
어디서였는지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바보이고, 늙어서 마르크스주의자면 더 바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철이 들어 어른이 되면 마르크스주의 따위는 버려야 한다는 뜻이겠다. 누가 말했는지 참 어른스러운 말이지만 나는 이리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 돈이라면 환장하는 '경제 동물'로 남아 인간적 존엄을 버려야만 한다면, 늙어서까지 그냥 바보 피터팬으로 남고 싶다고 말이다.
[최근 주요기사] ☞ [현장] '대운하 양심선언' 김이태, 끝내 정직 징계 결정 ☞ [보신각 앞 집회] "일제고사, 개나 줘버려" ☞ [MB의 남자들] 양심 따른 이길준, '명심' 따른 어청수 ☞ 이 대통령 '국가정체성 훼손' 발언은 전교조·인권위 겨냥 ☞ [엄지뉴스] 어느 중학생의 시험지 "난 일제고사가 싫어요" ☞ [E노트] <조선> 류근일 마지막 칼럼, 참으로 유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