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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때 가장 신고 싶었던 것이 운동화였습니다. 지금은 운동화가 흔하지만 그 당시는 대부분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시절이라 운동화는 동네 아이들에게 자랑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1주일정도 앞두고 어머니께서 그렇게도 신고 싶었던 운동화를 사주셨습니다. 저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서 운동화를 방안에서만 신고 얼마동안 밖에서는 신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오래전부터 성당을 다니셨는데, 그 성당은 고아원을 함께 운영하던 성당이었습니다. 성당에 있는 고아들은 얼굴이 검은 친구, 머리가 꼽슬한 여자 아이, 눈이 파란 친구 등 전쟁후 주둔한 미군과 우리 나라 여자들 사이에 낳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같은 한국인인데, 왜 나와는 다르게 생겼을까 하고 궁금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평소 부모님 따라 잘 가지 않던 성당을 간 것은 산타할아버지가 성당에 오셔서 선물을 나눠준다는 부모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선물을 받을 욕심으로 어머니께서 사주신 운동화를 신고 성당에 갔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은 성당에서 자정 미사가 있는데, 미사 시간 내내 머리를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졸았습니다. 가끔씩 어머니께서 제 머리를 만지시며 잠을 깨우곤 했지만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졸고 나니 미사가 끝났습니다. 이제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줄 시간이라 기대가 되서 그런지 금방 잠은 달아났습니다. 그리곤 산타복장을 한 오빠, 언니들이 선물을 나눠주었습니다. 연필 한 다스를 포장한 선물이었지만 산타할아버지에게 받는 선물이라 생각하니 남달라 보였습니다.

 

 

미사가 끝난후 선물도 받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성당문을 나서는데, 성당 입구 신발장에 제 운동화가 안보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신발을 어디에 두었느냐며 제게 물었지만 분명 들어올 때 신발장 맨 위에 구석에 놓았는데(귀한 것이라 숨기고 싶은 마음에) 그곳에 제 운동화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황해서 대답도 못하고 울음부터 터졌습니다. 너무 귀한 신발이라 잘 신지도 않고, 흙도 묻히지 않던 신발이 없어진 것은 하늘이 무너진 느낌 그 이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성당 수녀님께 말씀드리고, 혹시 고아원 아이들이 신고 싶은 욕심에 가져가지 않았는지 한번 알아봐 달라고 했지만, 신발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어머니 따라 성당에 갈 때마다 운동화 생각이 나서 성당 고아원에 사는 아이들이 모두 도둑으로 보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다음해 설날에 잃어버린 운동화를 다시 사주었지만 설날까지 2개월 동안 괜히 고아원 아이들을 미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는게 풍요로워서 그런지 아이들이 운동화를 잃어버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또 운동화도 한 켤레가 아니라 여러 켤레씩 갖고 삽니다. 가난했던 시절 크리스마스 이브날 운동화를 잃어버린 기억은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날이면 떠오릅니다. 나이가 들어서면서 그때 운동화를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면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제 운동화를 가져간 고아원 아이는 얼마나 마음이 콩당콩당 뛰었을까요? 아마도 성당 수녀님이 남의 물건 훔치면 지옥간다고 교리공부때 가르쳤으니 제 신발을 가져간 아이는 신발을 신지도 못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놓고 마음 고생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날이 되니 어릴때 잃어버렸던 운동화가 생각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Daum) 블로그뉴스에도 송고되었습니다.


태그:#크리스마스, #운동화, #고아원, #산타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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