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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한 군데에 걸려있는 여성 속옷들이 예쁘게 전시되어 있다.
▲ 여성 속옷 가게 한 군데에 걸려있는 여성 속옷들이 예쁘게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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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재래시장에 가면 10년 째 속옷장사를 하는 총각 CEO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누나의 가게를 도와 점원으로서 5년, 누나의 가게를 이어받아 CEO로서 5년이다. 속옷장사를 하면서 CEO라고 하니 우습다 할 수 있지만, 그가 만드는 세상에 대해 듣고 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질 것이다.

16평 규모 매장에 4명이나 근무하는 까닭은?

총각 CEO 김정태씨(32세)가 경영하는 매장은 얼추 16평. 그나마 창고 평수 빼고 나면 13~4평. 얼핏 보기엔 그리 크지 않은 매장인데 여기에 근무하는 사람이 김대표를 포함해 모두 4명이다. 일단 직원 3명을 책임지는 사람이니 CEO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렇게 직원 3명을 두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11시간 근무하고 매장의 공식 휴일이 1년에 2회(구정과 추석)입니다. 이런 직원들에게 그나마 개인당 매월 6일의 휴일을 챙겨주기 위해선 인원을 줄여서는 안 되겠죠. 인원을 줄이면 그만큼 남아 있는 사람이 고생하는 것이니까요."

이것은 김 대표의 경영철학이다. 인건비를 줄여서 당장의 이윤을 더 많이 남기는 것보다는 이윤이 조금 남더라도 같이 하는 직원들의 삶의 질을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쉬는 날도 별로 없이 계속 근무하다보면 직원들이 힘들어하고, 그러다보면 손님들에게 불친절이 가고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거라는 게 김대표의 생각이다. 바로 장기전으로 가고자 하는 김대표의 전략인 셈이다. 그래서 김대표는 직원들을 일러 항상 ‘파트너’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파트너들은 손님들을 우선시하고, 나는 손님보다는 파트너들을 우선시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인터뷰 내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김대표의 이런 한 마디를 보면서 조그만 매장의 전산에 등록된 고객 수만도 1만 명이 넘어가는 이유를 알 듯하다. 농촌도시 안성에서 속옷 파는 것으로만 1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터. 하여튼 불황에도 불구하고 항상 재미있는 일터가 되는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게다.

10년 째 속옷장사를 하고 있는 김정태 대표는 3명의 직원을 거느린 총각 CEO다. 손님보다도 직원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영을 하는 것이 그의 경영철학이다.
▲ 김정태 대표 10년 째 속옷장사를 하고 있는 김정태 대표는 3명의 직원을 거느린 총각 CEO다. 손님보다도 직원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영을 하는 것이 그의 경영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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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의 10년 변천사를 증언한다.

김 대표가 속옷가게를 한지도 10년이 되다보니 속옷이 변천하는 것도 나름 꿰뚫고 있다.

그에 의하면 10년 전엔 추억의 빨간 내복 등 두툼한 순면 내복이 인기였다가 점점 내복이 얇아지기 시작했다는 것. 요즘은 순면 내복 보다는 면과 다른 재질을 혼합하여 만든 '이중직' 내복이 대세라고 한다. 추억의 빨간 내복조차도 색깔만 빨갛고, 재질은 혼합이라는 것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웰빙 내복이 유행한 것도 내복변천사의 큰 획이라 하겠다. 이를테면 녹차, 황토, 쑥 등의 내복이다. 요즘은 한 가지 새로운 스타일의 내복이 등장했단다. 바로 '홈웨어'다. 외출할 땐 내복의 기능을, 집에 있을 땐 실내복의 기능을 겸하는 것이다. 스타일은 잠옷 같지만, 재질은 내복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10년 전과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보온을 중시한 내복에서 지금은 기능성과 활동성 그리고 디자인을 중시하는 것이라고.

10년을 하다 보니 고객들과의 교감도 다양하다. 해마다 내복을 사시던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아 걱정하고 있으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될 땐 안타깝다고. 때론 여중생 때부터 단골이었던 소녀가 어느새 주부가 되어 갓난아기를 둘러업고 매장에 찾아오면 반갑기가 그지없다.

유난히 이 매장에 여학생들이 많이 오는 것은 세련된 매장과 친절한 언니 오빠들의 서비스에 만족한 여학생들이 스타킹을 사러 온다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10대부터 60대까지의 안성시민들과 애환을 같이하는 곳이라 하겠다.

지금 그들은 한참 근무 중이다. 여기서 그들의 꿈을 하나씩 이루어 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선물'을 팔면서 말이다.
▲ 근무중 지금 그들은 한참 근무 중이다. 여기서 그들의 꿈을 하나씩 이루어 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선물'을 팔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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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파트너들과 더불어

김 대표보다 더 대단한 파트너들이 함께 근무하는 것도 여기의 매력 중 하나다. 매장에 근무하는 김유진(23세)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3년째 여기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자신이 벌어서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다. '대학은 자신이 벌어서 간다'는 집안의 분위기 때문이란다. 그런데다가 그녀의 동생인 김미령(20세) 씨도 마찬가지 뜻을 품고서 언니의 뒤를 이어 여기에 근무하고 있다니 그 언니의 그 동생이다.

올해는 날씨가 유난히 춥다. 사실 옛날에 비하면 실제 온도는 낮은 게 아니지만, 경제가 어렵다보니 사람들이 마음으로 느끼는 온도는 훨씬 밑바닥이다. 이런 때 안성의 한 귀퉁이에서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씩씩한 젊은이들의 소식을 듣는다면 우리의 마음을 한 번 더 데워주지 않을까. 자신의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신나게 살아가는 그들이 뿜어내는 행복바이러스가 주위에 조금씩 전염될 것이기 때문이다.

속옷매장 한 귀퉁이에 적혀있었던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선물'이라는 한 광고 문구처럼 그들은 오늘도 그런 따뜻한 기운을 팔고 있는 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김유진(23세)씨, 김정태대표(32세), 김미령(20세)씨 이다. 이들의 표정에서 벌써 그들의 직장 분위기가 묻어 나온다.
▲ 함께 사진 왼쪽부터 김유진(23세)씨, 김정태대표(32세), 김미령(20세)씨 이다. 이들의 표정에서 벌써 그들의 직장 분위기가 묻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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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23일 안성트라이( 안성 광신 로터리, 031-673-3921)에서 이루어졌다.



태그:#안성 트라이, #속옷, #내복, #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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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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