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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핸 정말 '분위기 안 난다 안 난다' 하지만 24일 저녁 서울시청 근처에는 제법 많은 시민들이 모여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을 만끽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가스펠 송이 울려퍼졌고 시청광장에 조성된 스케이트장과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리고 있는 특별무대 근처에도 인파가 몰렸다. 솜사탕과 닭꼬치, 어묵 등을 파는 좌판이 깔렸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은 좁은 사람들 틈을 이리저리 빠져나가고 있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덕수궁 앞에서 출발하는 촛불산책. 24일이 여덟 번째 날이다. 8시 무렵 누군가가 대한문 앞에서 "자, 촛불 산책 하러 오신 분들 모여 주세요"라고 소리 지르자 인파 속에서 50여 명의 사람들이 빠져나왔다. 지난 주 산책 이후 경찰이 이들의 소환 가능성을 언급했으나 이들의 뜻을 꺾지는 못한 것이다.

 

24일 저녁, 크리스마스 기분 대신 촛불 산책을 하다

 

모임지기 격인 박경훈(음반제작자·39)씨는 '촛불산책'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촛불을 추억하는 사람 개개인에게 사색의 기회를 주는 것 같다"면서 "연인, 부부, 가족들이 특히 많이 나온다"고 했다. 박씨는 이 '사색'의 기회가 불씨가 되어 다시 촛불이 모일 것으로 기대했다.

 

"분명히 그 때는 올 것이다. 우리가 그때까지 관문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이들은 저녁 8시 10분께 차례대로 줄을 선 뒤 촛불을 켜고 묵묵히 대한문 앞을 출발하기 시작했다. 10m 간격을 두고 다음 사람이 뒤따랐다. 경찰은 전경버스 4대를 동원했고 수십 명의 사복, 정복 경찰들이 근처에서 대기했으나 이들의 출발을 막아나서지는 않았다.

 

정미경(가명·30)씨와 박범균(가명·28)씨는 '촛불동지'라고 했다. 지난 5월부터 광화문 앞을 달궜던 촛불집회를 통해 알게 된 사이란다. 박씨는 이번이 두 번째 산책이고 정씨는 오늘이 처음이다. 촛불 집회 때 부지런히 나왔다는 두 사람 중 정씨는 현장에서 연행돼 재판중이라고 했다. 박씨는 종로에서 전경의 방패에 맞아 머리가 터진 경험이 있다. 이 경험들 때문에 두 사람은 사진에서 얼굴은 가려달라고 했다.

 

정씨와 박씨와 함께 덕수궁을 출발, 경향신문과 경찰청 앞을 거쳐 다시 순화동 쪽을 돌아 다시 덕수궁에 돌아오는 산책에 동행했다. 박씨는 선약을 일찍 깨고 산책에 참여했다고 했다.

 

"일단 본업들이 있으니 다들 바쁜데, 밤에 하는 것이기도 하고. 안전하기도 해서 나오게 됐습니다."

 

정씨는 "시간이 있으면 무조건 문화제나 집회에 참여하자는 생각인데 쉽지 않았다"면서 "얼마전 명동에서 열린 무한도전×2 행사에 참여하고 오늘까지 이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가 바로 말을 받는다.

 

"솔직히 더 많이 나올 수 있는데 정부가 원천봉쇄하고 있잖아요. 의사표현을 막고 있으니까... 집회 참여하면 죄인으로 취급하고 범죄자라고 인식하고 있으니 나오기가 쉽지 않죠. 연행하고 벌금 내라고 하고... 오늘도 이것보세요. 저 사복 경찰들이 저렇게 많으니... 이 자체가 말이 안 되죠."

 

촛불 사이사이에는 사복경찰들, 분위기 안 나네

 

오늘도 경찰은 이들의 행동을 예의주시했다. 출발 자체를 막진 않았으나 사복경찰들은 4~5명씩 조를 이뤄 촛불과 촛불 사이에서 이들과 함께 움직였다. 때로는 간격을 조정해 주기도 했다.

 

박씨는 본격적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고 얘기하지는 않았는데, 당시 얘기와 반대로 가고 있다"면서 "상위 1%만 위한 정책을 펴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제가 일하는 데도 매출 40% 줄었어요. 월급 맞추기 어려워요. 다른 데는 더 힘들다고 하잖아요. 저는 정부가 "지네들끼리 다 해먹는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서민 정책이 정말 부족해요. 절대 부족해요."

 

정씨가 바로 말을 받았다.

 

"대통령도 얘기했듯이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게 '소통'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된 게 국민 의사를 듣기는커녕 윽박지르기만 하는 것 같아요. 민주주의가 죽고 있다고 하는데 삽질 경제에만 관심이 있고... 아까 얘기했지만 이 촛불산책에 저렇게 경찰들이 몰려 오고 감시하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니에요. 국민을 두렵게 하고 위축시키고... 이렇게 4년을 더 살아야 하니..."

 

"올 한해 대통령 말 중 어떤 말이 가장 듣기 싫었냐"고 묻자 박씨가 "노동자 해고하기 쉬운 사회 만들겠다고 한 거요"라고 대답한다.

 

정씨는 가장 관심있는 이슈를 묻자 뜻밖에 '독도 문제'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서 (독도 문제와 관련)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다는 <요미우리> 보도가 결국 흐지부지 됐잖아요. 며칠 전 뉴스를 들으니 독도 교육 내용도 바뀔 수 있다고 하고... 체계적으로 정부가 이 문제 고민하고 있는 것 같지 않거든요. 반크만 이 문제 관심 기울이는 것 같고... 앞으로 지켜봐야죠."

 

"촛불 이후, 국민들은 무서워 사그라 들었다"

 

촛불을 추억하고 사색하는 자리, "촛불 정국에서 아쉬웠던 점은 뭐냐"고 물었다.

 

"지난 번에 명동 무한도전×2 행사때 갔더니 어떤 분이 '촛불 때 비폭력 외친 사람들이 문제였다'고 하더라고요. 국민들의 의지가 표출됐었는데 이를 스스로 막았던 게 문제였다는거죠. 물론 바람직하지는 않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어요. 바뀐 게 뭔가 싶기도 하고..."(정미경)

 

"촛불이 소진되면서 정부의 잔인한 밀어붙이기가 시작되고 강경 진압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국민들은 무서우니까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죠."(박범균)

 

"대통령께선 그래도 좀 기다려 달라. 국민들이 '그때 왜 이명박이 그랬는지' 알게 될 때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자신감도 느껴지는 것 같고?(기자)

 

정씨가 말을 딱 자른다.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전혀 모르고, 그의 CEO 신화만을 알고 있다면 기다릴 수 있겠지요. 국민들에게는 이미 선입견이 강하게 생겼는데, 선명성이 없다는 걸 아는데 그게 먹힐까요. 황당하죠."

 

어느새 서대문역 모퉁이를 돌고 있었다.

 

"도대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노릇이냐. 다시 촛불이 타오를 것이라 보냐"고 물었다. 두 사람 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12월 31일에 모이기로 했으니까요. 지켜보죠. 그리고 날씨가 추워서, 그리고 촛불 후유증을 달래기 위해서 지금 잠시 국민들이 참고 있다고 생각해요. 국민들의 공분을 이뤄 폭발하는 날이 곧 오겠죠. 믿어요."(정미경씨)

 

"넓게 봐야겠죠. 청년실업자들 눈이 높다, 이것저것 해봐야 한다, 일자리는 만들겠다, 서민들 참아라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그냥 참고만 있지는 않겠죠. 촛불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의 분노는 표출될 것이라고 봐요."(박범균)

 

정씨는 정부의 남북정책에도 불만이 많았다. "내 생각엔 햇볕정책이 분명히 국가경제에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뉴라이트와 한나라당은 아예 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공정택, 어청수, 강만수, 가장 좌절스럽다"

 

경찰청 앞을 지난 무렵, 올해 가장 좌절한 순간은 언제냐고 물었다.

 

정씨는 "공정택 교육감의 당선과 어청수 경찰청장과 강만수 장관 등 국민들이 요구했던 인사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일"이라고 했다. "자기 사람 챙기기에 도가 지나치다"는 것. 덧붙여 "이명박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한 일"이라고 했다.

 

"잘못할 수 있지요. 대통령이... 진정성 있게 사과하면 국민들이 용서하겠죠. 그런 대통령이라면 국민들이 오히려 잘한다고 박수 쳐줄 것입니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늘 차별을 유도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자기 기준을 딱 정해놓고,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은 내치고 나몰라라 하고 있지요. 저는 가끔 국민들을 맘대로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박씨가 "희망이 안 보인다"면서 "지금 (경제가) 괜찮다 괜찮다 하는 분들 언제까지 그런 말 할지 어디 봐야겠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신문 보셨죠. 지방에서 일 구하러 서울 올라온 대학 졸업생이 결국 돼지고기 몇 근 훔치다가 잡혔다잖아요. 생계형 범죄 계속 늘 거예요. 그래도 우리 사회는 '어려울 때 노력하며 애쓰는 사람이 더 많다'면서 개인이 게으른 거라고 치부할 거예요."

 

정씨는 "혹여 국민들이 패배주의와 지독한 냉소에 빠질까 봐 우려스럽다"고 했다.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처음엔 환율에 충격 받았다가 지금은 멍하니 그런가 부다 그러고 만다잖아요. 이런 냉소가 사회에 만연될까 봐 걱정되죠. 포기하는 국민들 늘어날까 봐. 내년 말엔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느덧 50분을 걸어 다시 덕수궁 앞으로 왔다.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30여 명. 두 사람은 촛불을 훅 끄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새 사람들이 늘어 이후에도 50여 명의 사람들이 차례차례 대한문 앞에 도착했다.

 

덕수궁 앞에는 출발할 때처럼 가스펠 송이 들려왔다. 교회에서 나온 성가대원들과 악단이 이따금씩 앞을 지나가기도 했다. 건너편 시청앞에 우뚝 세워둔 대형 크리스마스 장식에 달린 수천개의 전구들은 하얀색 불빛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인근을 한 바퀴 돌고 들어오는 작은 촛불들이 더 밝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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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촛불산책,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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