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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의 원반
 해골의 원반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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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세상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니,
치치멕의 왕자들이여
즐기세!
꽃들은 무덤으로 가지고 갈 셈인가?
단지 우리는 꽃들을 빌렸을 뿐인데.”

- 멕시코의 노래(Cantares mexicanos) 中

초기 문명이 그렇듯 그들의 언어 역시 상형문자였다. 그들은 스페인이 침략해 올 때까지도 아직 음성학적 체계를 완성하지 못해 문자로 음성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더욱이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의 이념적 근거를 세탁한다는 의미에서 그들의 많은 서적들을 불태워 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존재 의미를 기어이 남기고 말았다. 그들의 서정시는 꽃들의 노래, 슬픔의 노래, 사색의 노래로 분류돼 문자로는 전수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음성을 통해 고연한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삶과 죽음 등의 심오한 사상을 은유와 상징을 통해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이들은 누굴까? 바로 멕시코 문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스텍이다.  

분수대가 달린 기둥으로 외팔보를 떠받치고 있는 이 버섯 기둥은 박물관 입장하자마자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구조물이다. 하나의 기둥이 거대한 일자지붕인 캐노피를 떠받치고 있는데 위에서 쇠사슬로 끌어당기고 있다고 한다. 기둥에서는 뜰랄록신을 상징하는 물줄기가 지하에서 퍼 올려져 계속 흘러내리고 있다.
▲ 박물관 입구 버섯 기둥 분수대가 달린 기둥으로 외팔보를 떠받치고 있는 이 버섯 기둥은 박물관 입장하자마자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구조물이다. 하나의 기둥이 거대한 일자지붕인 캐노피를 떠받치고 있는데 위에서 쇠사슬로 끌어당기고 있다고 한다. 기둥에서는 뜰랄록신을 상징하는 물줄기가 지하에서 퍼 올려져 계속 흘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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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 꺼내자마자 달려드는 귀여운 녀석들. 자세히 보면 커플의심 한 쌍이 눈에 보인다.
▲ 박물관 견학 온 아이들 사진기 꺼내자마자 달려드는 귀여운 녀석들. 자세히 보면 커플의심 한 쌍이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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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시간 내에 다 볼 수 없다는 엄청난 유물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는 그 곳. 혹자는 차분하고 꼼꼼하게 감상해야 한다면 며칠을 투자해야 한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그 곳. 멕시코의 자랑이자 자존심이며 이곳을 보지 않으면 멕시코를 보지 않은 것과 같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수많은 여행기를 통해 화려하게 채색된 그 곳.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박물관.

하지만 역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했던가. 아니면 내 입맛이 까탈스러워 그 많은 음식이 성에 차지 않았던 걸까. 한 번 눈길을 던지면 마치 아스텍의 문명이 단번에 머리로 가슴으로 흡수될 것 같았던 환상은 오래지 않아 깨져 버렸다. 아마도 역사와 문화를 보는 안목이 낮은 것이리라.

세계 대도시에서 보던 여느 역사박물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단지 더 크고 화려하다는 생각밖에는…. 아마도 역사에 대해 지식의 깊이가 얕고 무관심한 나의 무지의 소치인 것만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 해도 단 두 시간여 만에 인류학 박물관을 쫘악 둘러보다니. 대충대충 걷고 설렁설렁 보고 건성건성 듣고…. 역시 난 박제된 문화로 역사를 보는 박물관보단 살가운 현지인들과의 만남이 더 끌린다. 더 쉽고, 더 재미있고, 더 해보고 싶은 것. 이렇게라도 위로하지 않으면 모두가 경탄하고 진지하게 연구하는 배움의 터에서 철없이 뒷짐지고 가끔 탄성만 자아내는 내가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박물관 바깥 쪽에 전시되어 있는 무덤들.
▲ TUMBAS DE QUIAHUIZTLAN 박물관 바깥 쪽에 전시되어 있는 무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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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스타일이 보이는 벽화
▲ BIRD MAN 마야스타일이 보이는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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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스텍 문화를 보러 왔는데 빈 머리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대관절 이 민족의 문화가 무엇이 그리도 대단한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다음 방문 장소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더 웅장하다는 테오티우아칸 정도라면 이곳에서 밑그림 정도는 그려야 하지 않겠는가.

아스텍을 보면서 난 그동안 의문을 가졌던 멕시코 국기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게 되었다. 그 비밀은 바로 아스텍과 관련이 있었다. 아스텍은 멕시코 북서쪽에 위치한 전설의 장소 아스뜰란(Aztlán)으로부터 그들의 수호신이자 태양 및 전쟁의 신인 우이찔로뽀츠뜰리(Huitzilopochtli)의 계시를 받고 A.D. 1100년 경에 민족의 대이동을 시작한다.

이 계시에 의하면, 그들은 돌과 선인장 위에서 독수리가 뱀을 잡아 먹고 있는 곳에 도시를 건설해야 된다는 것이다. 아스텍족은 결국 1325년에 멕시코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 떼스꼬꼬(Texcoco)라 불리는 한 호숫가의 작은 섬에서 신의 계시와 일치하는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에 메히꼬-떼노츠띠뜰란(México-Tenochtitlan)이라는 도시를 건설한다. 그들의 전설에 의하자면 독수리가 아스텍족을 보고서는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태양의 돌
▲ 아스텍의 달력 태양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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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박물관의 숱한 유물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무게가 24톤 이상에 달하고 직경이 3.5m에 이르는 아스텍의 문명 중에 오늘날 최고로 손꼽히는 태양석(La Piedra del Sol)이다. 아스텍의 6번째 왕인 악사야까뜰(Axayácatl)이 대신전에 안치할 목적으로 1479년에 태양석의 조각을 명령하였다.

1521년에 아스텍 제국을 정복한 스페인 군대는 태양석이 상징하고 있는 아스텍인들의 믿음체계를 파괴하고 자신들의 믿음체계인 기독교를 이식시키기 위한 대사업의 일환으로, 이 태양석을 현재 멕시코시티의 대광장 부근에 묻어버렸다. 그 후 수세기가 흐른 1790년 시청 공사 도중 거대한 원형석이 발굴되었는데 당시 저명한 천문학자 안토니오 데 레온 이 가마(Antonio de León y Gama)가 이것이 바로 태양석임을 입증하였다.

그런데 이 태양석을 눈여겨보는 이유는 또 있다. 아스텍인들은 그들의 신들이 자신들의 몸을 희생하여 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고 있었다. 또한 이렇게 해서 창조된 우주가 지속적으로 그 생명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인간 역시 자신들을 희생하여 그 심장에서 나오는 피를 신들에게 바쳐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태양신의 생명을 절대적으로 유지시켜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사명감을 갖고 전쟁터로 나갔다. 이리하여 1년에 무려 2만명에 달하는 포로들을 희생제에 바쳤던 것이다.

FEATHERED SERPENT.
▲ 피라미드 FEATHERED SERP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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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영화 ‘아포칼립토(apocalypto)’가 생각난다. 마야문명의 멸망기를 상징적으로 다룬 이 영화에서 다른 부족이 주인공 부족을 전쟁 포로로 잡아다 피라미드 제단 위에서 산 채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뜯어내던 끔찍한 장면. 그리고 그 심장의 피를 자신들의 신에게 바치던 제사. 그걸 본 주민들은 열광하고 또 열광한다. 국가의 근간을 존속시키는 그들의 종교와 정치 때문에 광기어린 풍습에서 애꿎은 희생자들만 더욱 늘어간다. 더욱 잔인한 건 포로들은 자신의 장기가 뜯겨져 나가고도 단 몇 초 동안은 살아서 그걸 본다는 것이다. 날카로운 칼로 단번에 목이 베여 죽는 건 차라리 낫다고나 할까. 영화가 아니라 아스텍의 실제 역사였다니 더욱 몸서리쳐진다. 아스텍의 찬란한 유물 뒤엔 피의 잔치로 희생된 수많은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인류학 박물관은 그 규모에 걸맞게 다양한 볼거리들이 많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이미 다른 박물관에서도 본 것이 대부분인지라 아스텍과 마야 문명을 제외한다면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었다. 계획성 없는 불량 여행자의 몹쓸 관람기는 이것으로 끝내야 했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니 2008년의 현재의 멕시코 문화가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2000년 뒤 지금의 멕시코가 남긴 유산은 무엇이고 후대에 또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이젠 실내를 벗어나 태양석보다 더 태양에 대한 충성심이 보이는 유적지를 탐방하기로 했다. 듣자하니 멕시코에 이집트보다 더 웅장한 피라미드가 있다던데. 가자 그 곳으로!

남미에서 본 것 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 카떼드랄 옆에 있다.
▲ 팔라시오 나시오날 남미에서 본 것 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 카떼드랄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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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본 카떼드랄 중 가장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아쉽게도 성당 앞에 임시 건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 넓디넓다는 광장을 감상하진 못했다.
▲ 멕시코 시티 대성당 지금까지 본 카떼드랄 중 가장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아쉽게도 성당 앞에 임시 건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 넓디넓다는 광장을 감상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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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사에 나와 있는 역사적 사실은 모두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이해(학문사 / 정경원 외)’에서 참고인용 했습니다.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세계일주, #멕시코, #자전거여행, #아스텍,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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