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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 서울 신촌의 어느 술집. 송년회 중인 20대 남성 5명 사이에서 올해의 예비군 훈련이 화제로 떠오른다.

"오랜만에 총도 쏘고 뭐 놀다 오는 거지."

직장인 1년차인 김진혁(가명·27)씨는 동원 예비군 훈련이 반갑다. 김씨에게 유급 휴가로 처리되는 3일간의 동원 예비군 훈련은 바쁜 직장 업무를 놓고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직장인 2년 차인 이아무개(28)씨 역시 김씨와 같은 생각이다.

반면 대학 휴학생 박정식(가명·27)씨는 올해 예비군 훈련만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 졸업을 앞두고 부족한 영어 점수를 올리기 위해 휴학한 그가 학원비와 용돈을 충당하기 위해 선택했던 것은 일주일에 두 번 밤을 새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그러나 지난달 다녀온 동원 예비군 훈련 일정이 일하는 날과 겹치면서 박씨는 이틀 일당인 10만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하는 것 없이 보낸 2박3일간의 훈련 후 박정식씨가 받은 돈은 교통비 명목의 단돈 9000원. "예비군 훈련 무시 못하겠더라"며 "은근 생활비에 타격이 크다"고 말하는 박씨. 그가 예비군 훈련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다.

예비군 훈련 3일에 기업이 입는 손실은 30만원

예비군 마크가 새겨진 전투모.
 예비군 마크가 새겨진 전투모.
ⓒ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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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남성들의 병역의무는 크게 '현역'과 '예비군' 두 가지로 나뉜다. 흔히 '군대에 간다'고 하는 말은 현역 의무복무를 지칭하는 것이고 그 기간이 끝난 이후에는 예비군으로 편입되어 8년간 복무해야 한다.

전역 이후 1년차부터 4년차까지는 동원지정자의 경우 매년 28시간(2박3일), 미지정자의 경우에는 해마다 36시간(출퇴근 방식)의 훈련을 받게 된다. 5, 6년차는 개인차가 있지만 향방작계훈련과 향방기본훈련을 합해 연간 20시간 정도의 훈련을 받는다. 7, 8년차 예비군이 사실상 별도의 훈련을 받지 않음을 감안하더라도 의무복무를 마친 후 약 200시간가량 훈련을 받아야 하는 셈이다.

군대에 입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경제생활을 하면서 훈련을 받아야 하므로 훈련 대상자가 회사나 법인에서 일을 하는 경우, 예비군 훈련에 대한 부담은 아무래도 가벼운 편이다. 훈련을 받는 동안에도 법적으로 사실상의 급여 지급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1년차 이두호(25)씨는 "회사 직원 10명이 모두 예비군 훈련 대상자"라며 "훈련을 가느라 며칠 빠져도 월급은 같으니까 훈련 통지를 받으면 다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다녀온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예비군 훈련을 가볍게 받아들이지만, 사용자들은 그렇지 않다. 훈련 자체가 법적으로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연히 응해야 하는 의무 중 하나이다 보니 회사 측은 훈련 대상자들을 고깝지 않게 생각하는 편이다.

A 중소기업 조아무개 관리부장은 "내근하는 남자 직원 15명 중 10명 정도가 동원 예비군 대상자"라며 "굳이 계산하자면 1인당 하루 훈련에 10만원 정도씩 업무를 못 시키는 셈"이라고 말했다.

2007년 기준, 우리나라 1000대 기업 신입사원 연봉 평균은 2692만원(상여금· 식대·교통비 제외). 실제 근무일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하루 일당은 약 10만원 정도다.

자영업자·일용직에게 3일의 공백은 고스란히 '자기 손해'

자영업자나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는 예비군 훈련 때문에 좀 더 직접적인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된다.

최진기(가명·25)씨는 올해 4월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던 중 동원 예비군에 다녀왔다. "필요한 돈이 있어서 시작한 일인데 훈련 받는 3일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돈을 못 벌었다"는 최씨. 그가 3일 동안 놓친 일당은 약 18만원이다.

아파트 일일 장터를 쫓아다니며 먹을거리를 파는 박경욱(가명·29)씨는 지난 11월 마지막 동원 예비군 훈련을 마쳤다. 그의 사정도 최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게 잘되는 날은 잘되지만 안 되는 날은 정말 안 된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 그런데 한 달에 3일을 빠져 버리면 (우리로서는) 타격이 크다. 고스란히 내 손해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대학생에게도 예비군 훈련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있다. 2007년 군복무를 마치고 올해 처음 학생 예비군으로 하루 훈련을 받은 손병철(24)씨. 한 학기 16주 동안 약 340만원의 등록금을 내는 손씨가 예비군 훈련으로 하루 수업을 포기할 경우 평균적으로 약 4만2000원의 수업료를 포기해야 한다.

손씨는 "등록금은 어차피 낸 것이니 금전적으로 손해 본다는 느낌은 별로 없지만 별 의미 없는 내용의 훈련 때문에 쓰는 시간은 아깝다"고 말했다.

2008년 예비군 훈련에 투입된 경제적 가치는?

예비군 한 명이 매년 훈련을 위해 희생하는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 간단한 곱셈으로 추산해 보자.

예비군 훈련 대신 생업에 종사했을 때 벌 수 있는 돈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노동부가 고시한 2008년도 최저임금 기준에 따르면 하루 8시간을 3일 동안 근무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최저임금은 9만480원이다.

국방부가 발행한 '2006 국방백서'에 따르면 2006년말 기준 예비군의 규모는 304만 명. 이 중 동원예비군의 수는 약 153만 명이다. 거칠게 계산하면 올해 동원 예비군들이 훈련을 받기 위해 포기한 비용은 최소 약 1384억원.

여기에 국가예산을 합산한 사회적 비용은 훨씬 크다. 2008년 예비군 예산은 3227억원. 그 중 2675억원이 예비군들을 지휘하는 동대장 인건비로 소요된다. 합산해보면 2008년 예비군 훈련에 투입된 경제적 가치는 최소 4000억원이 넘는 셈이다. 물론 이 수치는 약 150만명의 향방 예비군은 고려하지 않은 내역이다.

그럼 과연 예비군 훈련은 4000억원의 '돈 값'을 할까? 예비군 3년차 고승원(25)씨는 "예비군 훈련 가면 10분 교육하고 50분 쉰다"며 "총 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3일이라는 시간이 정말 아깝다"고 덧붙였다.

4000원짜리다.
▲ 예비군 점심 4000원짜리다.
ⓒ 김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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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하며 훈련받는 동원 미지정 훈련 대상자는 또 다른 고충을 털어놓았다. 예비군 2년차 이민성(23)씨는 "교통비와 식대로 6000원을 받긴 하지만 훈련장 오가는 관광버스 비용 5000원에 밥값 4000원까지 더하면 결국 내 돈을 써야 한다"며 "2000원도 되지 않을 저급의 식사를 4000원이나 받고 파는데 정말 돈이 아까웠다"고 말했다. 이어 "왜 귀중한 시간을 예비군 훈련장에서 내 돈까지 써가며 버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논현동 고시원 참사로 부각된 '예비군 불참 벌금'

예비군 훈련의 사회적 비용 중 '불참에 따른 벌금'도 빼놓을 수 없다. 2005년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4년 예비군 훈련에 불참해 고발당한 사람은 약 3만2114명. 2001년 이후 매년 3만 명 이상이 예비군 훈련 불참을 이유로 고발당해 대부분 벌금형을 부과 받고 있다. 

타당한 이유 없이 예비군 훈련에 불참했을 경우 향군법 및 병역법에 따라 처벌되는데 동원훈련은 6개월 이하의 징역, 200만원 이하의 벌금, 일반훈련은 1년 이하의 징역,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예비군 불참에 따른 벌금은 지난 11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 고시원 참사를 일으켰던 정아무개(30)씨를 계기로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씨는 범행 당시 2007년도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부과된 벌금 150만 원을 내지 못해 지명수배된 상태였다.

정씨는 검찰 조사에서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경찰 조사를 받으면 감옥에 가게 될 거고, 이렇게 되면 고시원 사람이 짐을 치우려고 내 방에 들어와서 이전부터 준비한 범행 도구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국방부 "내년 예비군 훈련 교통비 1000원 인상"

국방부 공보과 관계자는 예비군 훈련 여건 개선에 대해 "내년부터는 동원훈련여비가 기존 km당 92.55원에서 95.33원으로 개선되며 일반 훈련 교통비도 기존 2000원에서 3000원으로 인상된다"며 "훈련 참여자들에게 지급액을 점차적으로 인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훈련 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에 대해 관계자는 "예산에 비해 워낙 많은 인원이 훈련을 받다 보니까 만족스러운 훈련을 하기 어렵다"며 "예산도 좀 더 확충하고 교육내용 또한 더욱 보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생활고 때문에 예비군 훈련을 불참하는 사람들에 대한 구제 방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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