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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단체에서 감투를 쓰거나 완정을 차면 갑자기 자신의 인격을 신격으로 착각하고 안하무인으로 설쳐대는 속물들이 있다. 그들은 감투나 완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친구나 부모를 배반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같은 무리 중에서 자기보다 주목 받는 존재가 나타나면 중상과 모략을 일삼는 특성도 나타내 보인다. 장자는 그런 부류들을 '썩은 쥐를 움켜쥔 올빼미'라고 표현했다."

 

이외수의 독특한 그러면서도 풍자와 해학과 유머와 위트가 가득 들어있는 글 <하악하악> 속의 한 대목이다.

 

이외수, 그는 독특한 작가이다. 그의 상상력은 다른 작가들과 다른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의 소설이나 산문들의 글을 보면 핵심을 찌르는 언어유희가 종종 튀어나온다. 가끔은 초딩이나 중딩의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유치하지 않다. 그 언어 속에는 냄새나는 현실의 모순들을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게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썩은 쥐를 움켜쥔 올빼미'들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달라고 완장을 차도록 해주었더니 대다수의 국민은 안중에 없고 극소수를 위한 행태만 부리고 있다. 이것 또한 장자가 말했다는 '썩은 쥐를 움켜쥔 올빼미' 꼴이 아닐까 싶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만나면 말한다. 두 눈 감고, 두 귀 막고 살아야 숨을 쉴 수 있다고. 보고 들으면 열 받을 소식만 들려오는 세상살이에 대한 한탄이다. 그래도 우리는 웃어야 한다. 그 웃음을, 답답하면서도 통쾌한 웃음을 <하악하악>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정력에 좋다는 것들은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서 멸종 위기에 처하도록 만든다. 내년 여름에 대비해서 지금부터라도 모기가 졸라 정력에 좋다는 소문을 퍼트리자. 그런데 양심이 정력에 좋다는 소문은 도대체 언넘이 퍼뜨린 거냐."

 

한국인의 행태를 꼬집는 말이다. 어디서 들은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정력에 살고 정력에 죽는다고. 너무 정력을 좋아하다보니 이젠 '양심'이란 놈도 정력에 좋다하여 다 말아 먹은 우리의 서글픈 현실을 이외수는 가볍게 풍자하고 있다.

 

사실 이외수의 글은 소설보다도 산문에서 언어의 묘미를 더 느낄 수 있다.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의 표현은 짧지만 정곡을 찌른다. 쉽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깊이도 있다. 해학과 풍자와 유머가 잘 섞여있다.

 

우습거나 슬프거나 아픈 현실을 조롱한다. 그런데 그 조롱이 무겁지가 않다. 가볍게 터치하듯이 하는데 결코 가볍지가 않다. 인간에 대한 통찰과 세상과 사물에 대한 관심의 내공이 깊게 배어있음을 그의 글을 읽다보면 알 수 있다.

 

"비가 내리면 해가 뜨기를 바라고 해가 뜨면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잘못도 자기 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늘도 그의 비위를 맞출 수 없는 사람인데 인간인들 그의 비위를 맞출 수가 있겠는가. 가까이 하지 마라. 가까이 하면 덤터기를 쓰기 십상이다."

 

한때 '내 탓이오' 하는 운동 비슷한 게 벌어진 적이 있었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모두 내 탓이 아니고 네 탓만 하는 우리 사회를 반성케 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내 탓'이라는 말도 꺼낼 수 없는 현실이다.

 

새로이 힘을 얻은 이들은 현재의 모든 문제를 지난 것들의 문제라고 한다. 시험 좀 안 보고 현장 체험 좀 했다고 모든 게 교사 탓이라고 한다. 쇠고기 수입에 촛불 좀 들었다고 수입을 결정한 사람의 탓이 아니라 촛불 든 사람들 탓이라고 한다. 내 탓은 없고 모두 네 탓만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늘도 비위를 맞추기 힘들다고 하니 한 마디로 오호애재라이다.

 

<하악하악> 책의 겉표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팍팍한 인생, 하악하악. 팔팔하게 살아보세.'

 

그런데 요 하악하악이 대체 무슨 말인가. 일종의 음상상징어이다. 동물이나 인간의 거친 숨소리이다. 살아가면서 난처하거나 불리한 상황, 지치고 힘든 상황에 처할 때 내는 거친 숨소리가 하악하악이란다. 이 하악하악을 하다보면 정말 팍팍한 인생 팔팔하게 힘이 나기도 한단다. 그래서 이외수는 책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다.

 

'절망과 고독의 껍질 속에 갇혀 있는 번데기여, 포기하지 말라. 혼신의 힘을 다해서 껍질을 뚫어라. 그러면 무한창공, 눈부신 자유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리니' 하고 말이다. 혹 지금 많이 힘들고 지친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해봐라. -하악하악-

덧붙이는 글 |  이외수의 생존법 <하악하악> /이외수 / 해냄/ 12,800원


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 해냄(2008)


태그:#하악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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