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는 사랑의 신이다.
그의 탄생에 관해서는 다양한 설이 전해진다.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그가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와 전쟁의 신인 아레스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열정적인 사랑을 심어주는 신이다. 에로물이니 에로영화니 에로틱하다는 말들이 모두 이 에로스에서 나왔다고 설명을 하면 너무 지나친 친절일까?
그의 모습은 원래 미소년이었으나 르네상스 시대로 내려오면서 점점 작아져서는 끝내 아기의 모습으로까지 줄어들고 말았다. 그는 어린아이로 날개가 돋아있으며 손에는 은으로 만들어진 작은 활을 든 채 어깨에는 금빛화살과 납 화살을 담은 전통을 매고 있는 앙증맞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는 항상 어머니이자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곁에 머물러 있었으며 사랑의 대상을 찾아 두리번거려댔다. 그리고는 그가 찾아낸 대상들을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사랑의 구렁으로 빠뜨리곤 했다.
그가 금빛 화살을 가슴에 꽂으면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납으로 만들어진 화살을 가슴에 꽂으면 어떠한 사랑도 외면하게 된다. 그의 작은 활을 조롱하던 아폴론이 금빛화살 한 대에 그만 자신의 경솔했던 행동을 절절히 후회하기도 했다. 위대한 태양의 신인 아폴론이 이 작다 못해 앙증맞기까지 한 어린 신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는 모습은 우리에게 사랑이란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는 많은 신과 인간들을 사랑에 빠뜨리곤 했다. 때문에 사랑의 고통을 아는 신들과 인간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인 아프로디테조차도 그에게 각별한 경외심을 가지고 대했으며 두려워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사랑에 빠진 때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프시케와의 사랑이었다.
프시케는 영혼을 뜻하는 말이다. 그녀는 왕의 딸로 두 언니가 있었다. 세 자매는 모두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 중에서도 프시케는 인간 이상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두 언니는 짝을 찾아 시집을 갈 수 있었으나 그녀는 짝을 구할 수가 없었다. 너무 아름다워 사람들이 그녀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녀와 결혼하려들지를 않았다.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는 신탁을 구했고 신탁에서는 그녀를 신부로 단장하여 깊은 계곡의 암벽에 버리면 무서운 괴물이 나타나 그녀를 데려갈 것이라는 답이 내려졌다. 그녀의 부모는 절망에 빠졌지만 신탁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그녀를 곱게 단장시킨 후 신탁이 내린 대로 그녀를 깊은 계곡에 남겨 두고 왔다.
홀로 남겨진 프시케가 슬피 울고 있을 때,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그녀를 안아 깊은 골짜기로 데려다 놓았다. 그녀가 내려 진 곳은 부드러운 바람이 일고 있는 아늑한 풀밭 위였다. 그녀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깨어났을 때, 그곳은 황금과 상아로 지어진 아름다운 궁전이었다. 그녀가 호화로운 궁전을 거닐고 있을 때, 신비로운 음성이 그녀를 어딘가로 안내했다.
밤이 되자 그녀는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누워있는 것을 느꼈고 그가 바로 신탁이 말한 남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았다. 다만 음성으로만 자신을 대할 것이며 만약 그녀가 그의 얼굴을 보는 일이 생긴다면 영영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경고만 했다. 그녀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가족이 그리워졌다. 부모님과 언니들이 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졸라 자신의 고향에 다녀올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설득하며 그녀를 달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국 남편의 허락을 받아냈다. 그녀는 다시금 제피로스의 도움으로 계곡을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된 언니들은 금새 질투에 휩싸였고 그녀를 부추겨 남편의 얼굴을 보도록 유혹해댔다. 남편의 얼굴이 가장 못생긴 괴물이라는 둥, 악마의 형상을 한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둥, 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결국 언니들의 말에 좇아 남편의 얼굴을 보기로 작정했다.
돌아와서 남편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그녀는 준비해둔 등불을 들어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부드러운 침대에 곤하게 잠들어 있는 그는 그녀가 이때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미소년이었다. 그는 사랑의 신 에로스였던 것이다. 깊은 감동으로 등불이 흔들리는 순간, 뜨거운 기름방울이 그만 그의 달콤한 잠을 깨웠다. 잠에서 깬 그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사랑이 머물 수 없다오."한 마디를 남기고 그는 그녀의 곁을 떠나가 버렸다. 그녀는 아차 하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그리고 순간, 그녀의 앞에는 호화로운 궁전도 아름다운 저택도 사라지고 없었다. 짙은 어둠과 차가운 이슬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계곡을 벗어나며 울고불고 했지만 이미 현실은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난 뒤였다. 그녀는 남편인 에로스를 찾아 방방곡곡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렇게 불행하게 된 것은 모두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시기한 아프로디테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신탁을 내려 그녀를 갖다 버리도록 만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에로스는 자신의 황금화살을 가지고 놀다 그만 자신의 피부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계곡에 버려진 프시케를 보았고 그녀에게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에로스에게 버림받은 프시케는 아프로디테에게 붙잡혔고 그녀는 온갖 힘든 일들로 프시케를 괴롭혀댔다. 낟알을 고르는 일, 야생 양의 털을 깎는 일, 심지어는 하계에 내려가 페르세포네로부터 젊음을 얻을 수 있는 물을 구해오는 일까지 맡아서 해야 했다.
하계에서 젊음의 물을 얻어 돌아올 때에는 절대로 그 물병을 열어보아서는 안 되었는데 그녀는 그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열어보고 말았다. 순간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마법에 걸리고 만 것이다.
한편 에로스는 깊은 상심에 빠져 먹고 마시는 일조차 잊고 있었다. 프시케에 대한 그리움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마법에 빠져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그녀를 본 에로스는 그녀에게로 곧장 날아갔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자신의 화살을 쏘았다. 이어 올림포스로 날아간 에로스는 제우스에게 간청을 했다. 인간인 그녀와 결혼하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던 것이다. 제우스는 기꺼이 허락했고 그러자 아프로디테도 프시케를 용서했다.
프시케의 원뜻은 나비라는 말이다. 나비는 또한 영혼을 상징한다.
이 이야기는 육체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에로스는 영혼을 상징하는 프시케와 결합해야만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우는 이야기이다. 또한 프시케가 믿음을 저버리고 그 믿음을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야만 했다. 영혼의 정화를 말한다. 인간의 영혼이 정화되기 위해서는 프시케가 겪었던 것과 같은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사랑의 신인 에로스의 도움으로 인간인 프시케가 신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완전한 사랑만이 인간을 신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의 승화인 것이다. 사랑은 가장 강렬한 욕망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