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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아름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공사의 전과 후 분명 아름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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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반복되는 보도블럭 다시 깔기

연말입니다. 구세군 종소리가 들리고 올해 10대 뉴스와 베스트·워스트가 난무하며, 다가오는 새해 어쨌든 희망에 찬 소리들을 읊조리는 연말(아, 요즘에는 국회에서 생쇼하는 것도 연말행사가 되었군요).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위의 사례만으로 연말이 왔음을 느꼈다면 그 사람은 매우 둔한 편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연말을 느끼지 못할까봐 관(官)이 친절히 나서서 연말 분위기를 내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 하여 멀쩡한 보도블럭 파내어 다시 깔기.

아버지어머니 세대를 뛰어넘어 이젠 모든 사회 구성원의 유전자에 각인됐을 법한 보도블럭 공사는 우리 국민들에게 연말을 지시해 주는 관의 대표적인 '선물'입니다. 교체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멀쩡한 보도블럭을 파내어 다시 빤짝거리는 보도블럭으로 바꾸어 놓는 그들의 섬세함과 친절함.

올해도 역시 지자체들은 여러 군데 보도블럭을 파내어 다시 까는데, 인천의 경우 저희 회사 앞 연안부두로 향하는 산업도로 주변 보도블럭도 포함되었습니다. 관은 사람들이 중앙정부에서 지원한 재정을 다 쓰지 못하면 다음 해 지방교부금이 줄어들까봐 공사한다고 오해할까봐 친절하게도 현수막까지 붙여 그들의 진정성을 표현합니다.

그들만의 정당성
▲ 공사 모토 그들만의 정당성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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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美港 조성을 위한 Clean & Green Incheon Port 사업"

하나의 문자도 모자라 한자, 영어, 한글 3개의 문자를 이용한 관의 홍보전략. 글로벌 시대에 발맞추어 노력하는 그들의 열정이 눈물겨울 뿐입니다.

공허하게 사라지는 지방 재정

이제는 연례행사입니다
▲ 보도블럭 공사 이제는 연례행사입니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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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간사한 인간의 마음. 파헤쳐 놓은 보도블럭으로 출퇴근이 불편해지자 슬슬 불만이 일기 시작합니다. 시민들의 편의를 증진하고 인천항을 세계적 미항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그들의 충정을 십분 이해해 보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의 의도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문스럽기 때문입니다.

우선 백주년 기념탑에서부터 연안부두로 향하는 산업도로의 인도를 사용하는 행인이 많지 않습니다. 도로 주변에는 연안아파트를 제외하고서는 주거지가 거의 없으며,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류창고나 CY 담당자들은 도보 대신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출퇴근 시간조차도 저와 같은 뚜벅이를 마주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이 도로는 걷기에도 매우 부적절합니다. 인천항의 특성상 대형화물차량이 매우 빈번하게 지나다니는 터라 매우 위험하고 시끄럽고 더럽기 때문입니다.

저만 해도 3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위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여러 번 목도했는데, 차량 간의 접촉사고야 다행이지만 대형 차량이 보행자나 자전거를 칠 경우 이는 곧장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로 비화되곤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살짝 컨테이너 차량과 부딪혔는데도 반신불수가 되어버린 그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란.

이와 같은 맥락으로 출퇴근 시 마주치는, 연안아파트에서 나오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측은한 생각이 우선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아이들이 살기에 이 지역의 환경은 최악이기 때문입니다.

유해한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
▲ 연안 아파트 아이들 유해한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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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공사를 하면서 인천시민들의 일자리가 많아졌을까요? 약 3개월에 걸친 회사 앞 보도블럭 공사를 지켜보면서 놀랐던 점 중에 하나는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 중 많은 이들이 외국인 노동자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일이 힘들고 더럽고 어려웠기 때문인지 중앙아시아인과 조선족들이 꽤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현실에도 인천시는 위 도로를 정비한답시고 멀쩡한 보도블럭을 걷어내고 새 보도블럭을 깔았습니다. 그냥 다녀도 위험한 인도에 자전거 전용차선까지 만들어 놓아 사고의 확률을 높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천항을 세계적인 미항으로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홍보까지 합니다.

물론 관은 그 모든 것을 시민들을 위해 벌린 일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시민들을 위한 것일까요? 그것은 결국 예산을 좀 더 확보하기 위한 전시 행정, 혈세 낭비의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요? 차라리 그 돈으로 동인천역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노숙자들을 위해 복지기금을 늘리든가 아님 인천지역의 문화발전을 위해 기금을 조성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더 큰 보도블럭 공사를 막아라!

이와 같은 문제점에도 요즘 같아서는 회사 앞의 보도블럭 다시 깔기는 그냥 애들 장난 수준으로 웃고 넘깁니다.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보도블럭 공사'를 준비중이니까요. 이른바 4대강 정비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연말에나 하던 토목행사를 아예 연초부터 그것도 몇 년 동안 벌이겠다고 작심하고 나선 것입니다.

동네 공사를 국가적인 규모로 키우려다 보니 그 명목부터도 스케일을 달리 합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방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그리고 각 지방의 물 부족 대비, 홍수 방지 등을 위해 4대강 정비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서는 대운하랑 절대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는 센스까지.

그러나 삽질은 삽질이요, 보도블럭 공사는 어디까지나 보도블럭 공사일 뿐입니다. 멀쩡한 보도블럭도 뒤집어 놓는 이 정부가 과연 얼마나 위 공사를 위해 사전준비를 했을까요? 여당대표는 얼마 전 전국 방방곡곡을 공사장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고 하는데 결국 그의 발상은 동네 보도블럭 다시 깔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요?

아마도 정부는 대운하나 보도블럭 다시 깔기나 어차피 같은 공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파생되는 일자리 창출이라든가 지방경제 활성화가 얼마나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는 상관없이 토목으로 경기부양만 시키면 국가 경제가 어느 정도 돌아간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토건족들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4대강 정비 공사는 동네 보도블럭 공사와 달리 그 생채기가 매우 깊고 오래 갑니다. 보도블럭 공사야 그냥 한탕 '돈잔치'만 하면 그만이지만 4대강 정비, 더 나아가 대운하는 이 아름다운 강산에 치유할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깁니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문제가 될 것이지만 이후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갈 후손에게조차 어처구니없는 짐을 지우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디 그들의 삽질이 동네에만 국한되길 기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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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보도블럭 공사, #대운하, #4대강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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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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