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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까지 덮고 나서야 그 책이 가진 면모를 다 파악할 수 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앞뒤 표지만 훑어봐도 어떤 내용일지 추측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샨티에서 최근 출간되어 나온 <축하해>는 후자에 속한다. 가정폭력 등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소녀가 돈 때문에, 혹은 어른들의 거짓말 때문에 성매매라는 감옥에 갇혔다가 어렵사리 탈출해 새로운 삶을 찾는 이야기. 이 책에는 독자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만큼의 내용만이 담겨있다. 그 이상을 찾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MBC 라디오 <여성시대> 작가 박금선이 짓고,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가 기획한 <축하해>는 마치 성매매 근절 홍보 책자처럼 느껴지는 면도 있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반복되어 식상하게 전개되면 대중의 집중도가 떨어지기 마련. 글의 내용과 전개 그리고 결말, 교훈을 주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글이 서로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내용을 다 보지 않아도 추측이 가능하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하지만 일정부분 그런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별 볼 일 없다고 매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기에는 글들이 가지고 있는 내공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선 이 책의 표지나 속지의 디자인과 편집은 다분히 소녀 취향이다. 알록달록한 색지에 두서없이 써내려간 수기 형식의 편지, 일기 그리고 인터넷 채팅 대화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다양한 형식으로 상처뿐이었던 과거를 담아내고 있다. 담담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글의 기운이 마치 총천연색의 색지들과 더불어 빛나는 것처럼. 사춘기 소녀의 은밀한 고백이 담긴 일기장을 훔쳐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또한 이 책이 가진 특색이다. 조심스럽게 그녀들의 상처를, 그러나 차분한 희망을 엿보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성매매는 결국 '섹스기계'를 만드는 일이다. 인간의 주체할 수 없는 성욕에 의해 탄생된 일, 서비스를 행사하는 그녀들은 사람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누구나 다 그렇듯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지만 그들은 그런 기회조차 제대로 부여받지 못했다.

 

왜 그들은 '구멍'이나 '냄비'로 불려야 했을까. 그것도 대부분 강제로 끌려와 산더미 같은 빚을 짊어진 채로. 포주와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 그리고 야속한 사업주 때문에 그들의 청춘은 시뻘건 등이 켜진 그 좁은 골방에서 유폐되어갔다. 사회의 시선은 송곳처럼 그들의 온몸에 꽂혔을 테고, 그러니 그들은 수면 아래로 침잠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내면마저 쓸쓸한 고독의 시간. 그들은 타인과 단절되어 가면서 살아있는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무언가를 기르고 싶어. 외로워.

아니 아니, 식물은 말고. 움직이는 것. (중략)

나에게는 오랜 병이 있어, 다른 사람을 못 쳐다보는 병.

상대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는 병. (본문 161쪽)

 

그럼에도 어렵사리 그 테두리에서 벗어난 그녀들이 스스로를 위로하고 희망을 가지는 모습에서는 체험의 힘과 깊이가 느껴진다. 기나긴 고독과 육체의 소진을 이겨내고 기꺼이 넓은 세상의 삶을 선택하기까지 수없이 많은 고민과 방황이 있었을 터. 그런데도 표지의 여느 문구처럼 좌절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간 그녀들의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차원이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그건 방에 갇혀 수백 권의 책을 읽고, 수십 편의 글을 쓰는 것과는 다르다. 그 다름의 매력이 바로 이 책을 더 빛내준다.  

 

대안보다 중요한 건 그녀들의 목소리 듣는 일

 

철학이나 인문학의 뛰어난 이론과 설명, 수사법은 분명 매혹적이고 아름답다. 이 책에는 그런 점이 없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체험할 수 없었던, 고통의 멍에를 온 몸에 짊어지고 살았던 여인들의 상처와 희망이 또렷하게 스며들어 있다. 본능, 성욕으로 미화되는 성매매가 실은 여성들의 모든 육체와 내면을 지독할 정도로 처절하게 파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축하해>는 보여준다.

 

그러니 이 책이 줄 수 있는 힘과 깊이는 철학이나 인문서적과는 완전하게 다른 종류의 것이다. 논리적인 판단 근거를 말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 아니다. 다만 당신이 표피적으로 논하고 비판하고 설명하는 그 지옥 같은 체험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세상의 그 어떤 고매한 논리와 이성도 이들의 삶을 실제보다 더 진하게 보여줄 수는 없다. 그들이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축하해>가 일면 서툴고 어색한 점이 있음에도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장 밑바닥까지 침잠했다가 다시 수면 위로 헤엄쳐 나온 그들의 '지금, 여기에서의 희망'. 중요한 것은 과거로부터 작별한 그들의 매분매초, 지금 이 순간의 현재일 테니까.

 

성매매 업소는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와 불합리한 행위에 열을 올리고, 국가는 여성들의 인권보다는 무조건 싹쓸이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이런 극단적인 양상에는 정작 중요한 '사람'이 빠져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고 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쉬운 말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그저 그렇게 넘기는 말 속에 골방에 유폐되어 섹스기계로 전락한 성매매 여성들의 현실이 있다. 그게 바로 진실이다. 합법적이든, 다른 대안을 찾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그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이 서툰 매력을 지닌 <축하해>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   


축하해 - 2009년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 추천도서

박금선 지음,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 기획, 샨티(2008)


태그:#축하해, #성매매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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