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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영산석빙고에 이어 현풍석빙고를 찾았다. 언뜻 보니 출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뒤돌아가 보니 능선을 향하여 돌아앉아 남향하고 있다. 입구에는 옹벽을 쌓았다. 바깥바람을 막기 위한 조처였을 것이란 짐작이 간다. 출입구는 능선 쪽인 남쪽에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입구가 자물쇠로 잠겨 있어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외형적으로 보아 축조 방법이나 시설 등은 경주·안동·창녕 등 조선 후기의 석빙고에서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는 전형적인 양식이다. 그런데 연전에 답사했을 때보다 석빙고 전체가 깔끔하게 잘 단장되어 있었다.

 

 

안내 자료에 따르면 현풍의 석빙고는 빙실 길이 9m, 너비 5m, 높이 6m로 남북으로 길게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내부는 무지개형인 홍예(虹霓)를 틀어 구성한 석빙고의 바닥에는 돌을 깔았고, 여름에 얼음이 녹지 않도록 통풍과 배수가 고려되어 있다. 17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전하는 이 석빙고는, 아직도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당시 고을마다 얼음곳간을 둔 것이 아니었는데, 그리 크지도 않은 현풍현(玄風縣)에 석빙고를 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현풍 석빙고

 

이 석빙고의 축조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1년 11월 석빙고 주위의 보수 작업 때 '숭정기원후2경술11월'이라 쓰인 건성비가 발견됨으로써 1630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경주 석빙고(1733)와 안동 석빙고(1737∼40)·창녕(1742) 석빙고 보다 100여년 이상 앞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석빙고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석빙고는 아직도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신라나 고려 때 만든 빙고는 지금 남아 있지 않다. 경주 석빙고와 안동 석빙고, 영산 석빙고, 창녕 석빙고, 청도 석빙고, 현풍 석빙고는 모두 조선 시대 때 만들어진 것들이다.

 

 

석빙고의 원리는 무엇일까? 매번 석빙고를 만날 때마다 생각해 보는 의구심이다. 겨울 얼음 저장 이후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어도 얼음은 정말 녹지 않았을까. 물론 녹기는 했지만 미미한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찬 기운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석빙고의 원리는 무엇일까?

 

그 원리는 절묘한 천장 구조에 있다. 대개 석빙고의 화강암 천장은 1∼2m의 간격을 두고 4,5개의 아치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각각의 아치형 천장 사이는 움푹 들어간 빈 공간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이 바로 비밀의 핵심이다. 내부의 더운 공기를 가두어 밖으로 빼내는 일종의 에어포켓인 셈이다. 얼음을 저장하고 나면 내부 공기는 미세하지만 조금씩 더워진다. 여름에 얼음을 꺼내기 위해 수시로 문을 열어야 하니 더욱 그러하다. 더운 공기는 위로 뜨고. 이 더운 공기는 뜨는 순간 에어포켓에 갇혀 꼼짝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에어포켓 위쪽의 환기구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했으니 그 완벽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내부 온도는 초여름에도 0°도 안팎에 머물렀다.

 

 

그 비결은 이것만이 아니다. 얼음에 치명적인 습기와 물을 제거하기 위한 바닥 배수로, 빗물 침수를 막기 위한 석회와 진흙 방수층, 얼음과 벽 천장 사이에 채워 넣는 밀짚 왕겨 톱밥 등의 단열재, 햇빛을 흐트러뜨려 열전달을 방해하는 외부의 잔디를 덮었다.

 

그러나 이 완벽함도 겨울 날씨가 추워야만 석빙고는 제 구실을 했다.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으면 석빙고는 무용지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그래서 겨울 날씨가 포근할 때면 추위를 기원하는 기한제(祈寒祭)를 올리곤 했다.

 

예전에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위치로 보아 현풍이나 창녕, 영산 석빙고 주변은 하천이 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두꺼운 얼음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이들 석빙고는 한강을 끼고 있는 동빙고와 서빙고와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이다.

 

석빙고에 필요한 얼음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기록에 의하면 얼음의 채취와 보관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어떤 때는 겨울이 춥지 않아 채취가 불가능하였고, 때로는 보관상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결국 많은 얼음을 겨울에 채취하여 봄부터 사용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겨울에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실록에는 빙부(氷夫)가 동상에 걸리거나 물에 빠졌기 때문에 의원을 보내 치료케 하고 음식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석빙고에 보관된 얼음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을까. 얼음의 용도가 반드시 음식 저장 등의 실용적인 측면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얼음을 보관했다가 여름에 사용함으로 여름철에 극성 하는 양기를 억제하여 자연의 조화를 회복시켜 보겠다는 동양철학적인 발상도 큰 몫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석빙고는 왜 이렇게 냉각이 잘 되었을까. 그 비결은 석빙고 출입문 옆에 세로로 붙어 있는 날개벽 덕분이다. 겨울 찬바람은 이 날개벽에 부딪히면서 소용돌이로 변하고 그로 인해 더욱 빠르고 힘차게 내부 깊은 곳까지 밀려들어간다.

 

간단히 말해서 석빙고의 원리는 더운 공기가 위로 상승하는 것을 이용하여 배출시키고 얼음이 녹지 않게 물을 빼고 현재 집을 지을 때처럼 단열처리를 하였다는 것이다. 석빙고 하나에도 공기대류의 원리와 열전달율을 상계하고, 단열효과를 크게 하였으며, 경사빗면의 원리와 태양열복사 등 아주 다양한 과학적 비밀이 숨어있는 것이다.

 

석빙고는 어떻게 해서 냉각이 잘 되었을까

 

석빙고의 부위별 구조는 여름철까지 냉기를 잘 보관할 수 있도록 자연 환기구의 적절한 배치, 유선형의 외부형태, 배수구의 이용, 흙과 돌의 열전도율의 차이를 이용한 축열 구조의 채택 등을 통해 더운 외기의 영향을 최소로 줄일 수 있는 내외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석빙고의 위치도 중요하다. 석빙고의 위치는 바깥기온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절묘한 천연적 지형에 설치하였음은 물론이다.

 

석빙고는 그 위치는 물론 조그마한 문이나 계단, 배수로 등을 세밀한 설계에 의해서 건조한 것이다. 더구나 얼음을 채취하여 보관할 때에도 어떤 재료를 사용해야 잘 녹지 않는지를 수많은 재료로 실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점을 감안할 때 단순하게 얼음을 짚으로 덮는 것으로 보이는 석빙고가 어떤 기계적인 장치에 비견하여 결코 떨어지는 과학적 기술이 아니다.

 

 

이와 같은 원리를 이용하여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는 S그룹과 함께 별도 장치 없이도 일정한 온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현대판 석빙고를 건설하였다. 산 속에 지하 냉장냉동 저장 시험 동굴을 목적으로 한 현대판 석빙고는 지상 냉장창고보다 연간 에너지 소비량을 34%, 냉각 설비 용량 크기를 6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미국의 캔사스시티에서는 석회석 광산에 60만 평 규모의 세계 최대 식품 저장 지하 공간을 조성, 미국 전체 농수산물의 10%를 보관하고 있으며, 호주는 1970년대부터 수천 톤 규모의 곡물을 6개월 간 저장할 수 있는 지하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고대의 석빙고 개념을 도입한 현대판 석빙고가 소기의 성과를 얻는다면 에너지 절약 면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과학적인 것을 꼽으라면 석빙고를 들 수 있다. 석빙고는 냉장고 역할을 하는 인공적인 구조물이다. 현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냉장고는 얼음이나 냉기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기계장치이지만, 빙고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겨울에 채집해 두었던 얼음을 봄, 여름, 가을까지 녹지 않게 효과적으로 보관하는 냉동 창고이다. 사실 얼음을 보관하는 시설은 돌로 만든 석빙고만이 아니라 목재로 만든 목(木)빙고도 있었다. 그러나 목빙고는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은 없고 구전으로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석빙고

 

답사를 하는 중에 석빙고에 놀러온 아이들을 만났다. 최경준(현풍초 5학년), 정현(현풍초 5학년), 배수현(7세) 어린이다. 그들에게 석빙고에 대해서 물었다. 어린 아이들이지만 석빙고에 해서 많은 걸 알고 있었다. 평소 학교에서 현장답사와 자연보호활동으로 자주 찾는다고 했다. 참 해맑은 아이들이었다.

 

  “석빙고는 얼음저장창고지요. 지금의 냉장고 같은 거요. 수업시간에 우리 고장문화재에 관해서 조사발표를 했는데, 그때 저는 현풍석빙고에 대해서 조사발표 했어요. 우리 고장에 이런 문화재가 있다는 게 무척 자랑스러워요.”

 

또랑또랑하게 얘기하는 아이들에게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지요?” 하면서 이내 멋진 포즈로 응해 주었다. 아이들 곁으로 12월의 햇살이 곱게 내리고 있었다. 다음 답사코스는 청도 석빙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일부분은 문화재청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태그:#현풍 석빙고, #문화재, #비결,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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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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