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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이 됐다. 한 번뿐인 대학 새내기 시절도 동시에 막을 내렸다.

 

작년 3월 입학식장에 앉아 먼 거리에 앉아있을 입학 동기 탤런트 정일우의 모습을 열심히 찾았던 게 엊그제 같다. 언제까지나 새내기인 채로 동기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벌써 수시모집에 합격한 예비 신입생들이 '09학번 온라인 모임'을 만들었다. 이제 선배가 되어 09학번 후배를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겨울방학이 끝나면 그들에게 '누나' '언니' 소리를 듣게 된다. 새삼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난생 처음 외박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작년 3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방탕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각종 환영회와 술자리의 연속이었다. 두 달 정도 지나자 대학 생활에 회의도 느꼈다.

 

그러던 때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은 바로 촛불집회였다. 처음 집회에 나간 5월에는 광우병 문제를 아우르는 쟁점에 대해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에도 나가지 않았던 나를 움직인 것은 분노였다. 대통령이 바뀌고 나서 건강보험 민영화니 대운하 사업이니 하는 소리가 귀를 괴롭히던 차에, 위험한 쇠고기를 국민과 합의도 없이 수입하려고 하니 참을 수 없었다.

 

촛불집회에 참가하면서 난생 처음 외박을 했다. 밤새 서울 한복판을 누비다 보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름 민주주의의 혜택을 받으며 곱게 자란 세대이기 때문인지, 서울 도심에서 처음 마주한 검은 제복의 물결은 충격적이었다. 물대포를 맞고 감기몸살로 앓아누운 친구를 보며, 경찰을 피해 도망쳐 숨어있는데 경찰이 군홧발로 문을 걷어차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과연 공권력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침마다 배달되는 두 종류의 신문에서 상반된 논지로 각각 시위 군중과 정부를 공격하는 것을 보았다. '신문기사라고 오로지 사실만을 전하는 것은 아니구나'하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정치적이지 않은) 순수한 시민이에요! 촛불집회의 의도를 더럽히지 말아주세요!"라고 외치는 시위 군중을 보며, '시위가 곧 정치행위일 텐데 왜 저렇게 탈정치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걸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폭풍과도 같은 감정과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속에서 몇 달을 보냈다.

 

촛불집회가 사그라질 즈음에는 그 빛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단순히 촛불 때문이었다기보다는 그동안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에도 고용주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부끄럽게도 이랜드 사태는 농성 400여 일이 되던 때에, 기륭전자 사태는 농성 1000여 일이 되던 때에 알았다.

 

비정규직 농성장이나 집회에는 '운동권'들이나 참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는 선배를 따라 기륭전자 농성장에 처음으로 가봤다. '농성할 시간에 다른 직장을 구하면 되지 않느냐'는 순진한 생각은 사건의 단면만 본 나의 착각이었다.

 

그들은 법률에 명시되어 있는 노동삼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나는 언제든 갈아 치울 수 있는 부품 취급을 당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그들의 속내를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후, 내 삶에서 전혀 관련 없던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눈에 비친 대학은 '대기업 사원 양성소'

 

'귀밑 5㎝'의 엄격한 두발규정을 고수하는 제도권 교육기관에서 공부했다. 21세기 들어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데 긴 머리는 거치적거리고 머리는 대학에 들어가서 길러도 문제없다'는 고지식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랬던 고등학생은 이제 대학입시의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바깥으로 눈을 돌릴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학교라는 좁은 울타리 밖으로 눈을 돌린 단발머리 신입생은, 그동안 몰랐던 여러 가지를 대학생이 되면서 한꺼번에 알게 됐다. 그렇게 20년 동안 지녀왔던 가치관을 뿌리까지 뒤흔들었던 사건이 계속 됐다.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만을 잔뜩 끌어안은 채 2009년을 맞았다.

 

당연시했던 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것과, 내가 몰랐던 사회와 삶에 대해 알게 된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은 한 해이지 않느냐고 애써 자위해 본다. 그래도 아직 생각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모르는 것도 많아 답답하다.

 

나는 대학생 중에서도 소수자(?)들이 모인 곳이라는 철학과 안에서도 종종 별종 취급을 받는다.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이슈에 너무 민감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나는 대학생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대학 진학률이 80%나 되는 지금 상황에서, 옛날처럼 대학생이 특권적 지식인이라 대우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대학생은 언젠가 사회에서 활약할 사람들이다. 자신이 머지잖아 속할 곳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슬프게도 내 눈에 비친 대학은 그저 '대기업 사원 양성소'에 지나지 않는다. 졸업을 하려면 강제로 들어야만 하는 어떤 강의에서는 대기업의 사훈이나 세계 유수의 CEO들의 글로벌 경영 마인드 따위를 가르친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대학교에 진학하는 사람도 드문 것 같다.

 

철학과에 재학 중이라고 하면 가장 자주 듣는 말이 "거기 졸업해서 뭐 먹고 살 건데?"이다. 불황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요즘, 저런 이야기를 수시로 들어야만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을 그저 취업의 관문으로만 여기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란 건 씁쓸하다. 응용 학문과 비교하면 가시적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는 기초 학문을 쓸모없게 여기는 풍토 또한 저 물음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행동하는 지성인이 되고 싶다

 

한 강의에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 가슴에 깊이 남아있다.

 

"자네들이 지금 그 자리에 혼자 힘으로 올라왔다고 생각하지 마. 혼자 공부 잘해서 대학에 들어왔다고도 생각하지 마. 수능 봐서 등급제 적용해서 대학교 들어왔지? 자네들은 그 등급을 받으려고 다른 학생들을 짓밟고 올라온 거야. 등급제라는 게 그런 거잖아. 마찬가지로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란 말이야."

 

나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게까지 나누어주고 싶다. 모든 배움은 책상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람에게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출처가 정확치 않은 'MB식 실용주의'와는 다르다.

 

"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공허하다"는 말을 올해 들어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비록 지금의 나에게 '지성'이라고 불릴 만한 확고한 가치관이 존재하는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좀 더 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다.

 

새내기로 보낸 지난 2008년, 정신없이 지나갔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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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입생,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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