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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거니 가깝게 올망졸망한 섬들이 정답다.
▲ 완도 앞바다 멀거니 가깝게 올망졸망한 섬들이 정답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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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왜?
  “그냥 그러고 싶어.”
  “그래, 니가 무슨 로빈슨 크루소냐?”
  “…….”

단지 사춘기 적 풀 때 묻은 감상적인 넋두리가 아니다. 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 길손이 태어난 고장은 그다지 산간벽촌오지도 아닌데, 70년대 초입 구마고속도로(지금의 중부고속도로)가 개통되기까지는 교통사정이 여의치 못했다. 그나마 시발(時發)로 달리는 버스를 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땐 어지간하면 십리 길을 그냥 걸었다. 이 때문에 하얀 흙먼지를 폴폴 날리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그림의 떡이었다.

청해진 카페리에다 활어차량을 싣고 있다.
▲ 보길도행 청해진 카페리 청해진 카페리에다 활어차량을 싣고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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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도 나는 책을 읽으며 신기한 게 많았다. 그때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기다란 기차와 바다 위를 떠가는 큼지막한 배였다. 그렇지만, 중학교 1학년 때 마산으로 전학을 갔기에 바다도 배도 기차도 실컷 봤다. 그냥 신기했다.

마치 뱀처럼 긴 꼬리를 흐늘거리며 달려가는 기차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큰 집채보다 더 큰 쇳덩어리가 바닷물 위에 둥둥 떠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부력의 원리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함지박 같은 파도를 지겹도록 지켜봤다. 그렇게 바다가 좋았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그런데 필생의 소원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이루어졌다. 첫 발령을 거제도 섬으로 받은 것이다. 그때가 1983년 3월, 섬마을 총각 선생님이었다. 뭐랄까 막상 바닷가에 사니까 모든 게 불편했다.

우선 비릿한 바다 냄새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갯바람에 피부가 끈적거리는 것은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매끼 식사 때마다 비린 생선을 먹어야 하는 것은 견뎌낼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그때까지 메뚜기가 풀밭을 좋아하듯 푸성귀만 먹었던 입성이 하루 아침에 생선과 젓갈로 변한 식사를 먹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적응하기 힘들게다.

“어렸을 때 무작정 바다를 좋아했는데, 막상 바다 곁으로 와서 사니까 힘든 게 한둘이 아녜요. 음식부터 낯설어요. 채소만 주로 먹다가 날 생선을 먹으려니까 어찌나 비린지.”
  “꾹 참고 서너 달만 견뎌봐. 고기 안 먹고는 못 배길 테니까.”
  “…….”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두경 주사님이 안쓰러워하며 내게 하신 말씀이었다. 어쨌든 그 말꼬리는 더 길게 가지 못했다. 채 한 달만에 나는 무엇이든 척척 먹어대는 대식가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거제도에서 4년 세월을 보냈다. 두고두고 얘기할 만한 행복한 추억들이 많았다.

‘섬에 가고 싶다.’
  ‘어디 무인도라도 훌쩍 들어갔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섬은 어딜까?’

그래서 나는 섬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만난 섬이 거제도, 욕지도, 사량도, 매물도, 울릉도, 백령도, 거문도, 완도, 진도, 제주도, 보길도 등이다. 대략 굵은 섬들만 헤아렸지만, 고만고만한 섬들은 부지기수로 찾아갔었다.

그중에서도 울릉도와 매물도는 유다르다. 울릉도는 아내랑 1박 2일 코스로 들어갔다가 무려 나흘이나 발목이 잡혔던 곳이고, 매물도는 내가 태어나서 가장 멀고 긴 항해에 나섰던 섬이다. 그날뿐만 아니라 그 다음날도 나는 초죽음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배 멀미가 심했던 탓이다.

겨울 울릉도행은 여럿 날 발목 잡히기 십상

청해진 카페리에는 승용차만 55대 실을 수 있고, 대형차량은 17대나 싣는다.
▲ 청해진 카페리 청해진 카페리에는 승용차만 55대 실을 수 있고, 대형차량은 17대나 싣는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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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난 다시 섬을 그리워한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간절히 원했던 갈망이 채워지지 않은 채 도드라졌나보다. 이번 섬 나들이는 보길도다. 한껏 기대를 갖고 땅끝마을에서 하룻밤을 지새운 일행들과 서둘러 땅끝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보길도행 카페리는 우리가 탄 대형버스를 실고 갈 자리가 없다고 했다.

“다음 배는 언제 출항하는데요?”
  “열시. 그렇지만 오늘은 운항사정이 생겨서 그 시간에 배가 뜨는지 모르겠네. 매표소에 가서 물어 보소. 아니면 곧장 완도 화흥포항으로 가보소. 그러면 열시 배는 타겠네. 거기 소안농협에서 운행하는 카페리는 버스 열대도 더 실어. 아마 승용차만 실으면 55대까지 한꺼번에 싣고 간다지? 어서 가. 떠나는 배 발 동동거리며 섰지 말고!” 
  “여기서 완도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
  “완도까지는 한 시간이면 족하다만, 화흥포항까지는 시간 반은 좋게 가야 할 거요.”
  “…….”

보길도행 배를 타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우리 일행을 보고 승선관리자가 닦달했다. 맨몸으로 탄다면 가겠지만 대절버스를 두고 갈 수는 없는 일. 부랴부랴 차를 돌려 완도로 향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완도 초입을 알리는 표지판이 반갑다. 버스는 굽이굽이 외진 길을 따라 한참을 달린다.

순간, 저만치 앞에 화흥포항이 보인다. 마치 길손을 기다렸다는 듯이 거대한 카페리가 턱 버티고 있다. 아뿔싸! 그런데 여기서도 이미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열네댓 대의 활어운반 차량들로 관광버스를 싣고 갈 자리는 없단다. 낭패다.

보길도 가는 길, 물살을 가르며 내쳐 달리는 카페리가 믿음직스러워

뱃길을 50여 분 달려 마침내 노화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 노화도 선착장 뱃길을 50여 분 달려 마침내 노화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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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객선터미널에 문의하였더니 일행만 타고 가면 보길도에서 섬을 일주할 버스를 예약해 주겠단다. 이 무슨 변고냐 싶었지만, 그렇게라도 보길도에 들어갈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한껏 기대를 갖고 찾아가는 보길도, 까닭 없이 일이 배배 꼬인다.

배에 승선하고 보니 선실이 운동장만하다. 보길도까지는 오십분 거리. 맥이 풀린 일행들은 더러 드러눕기도 하고, 뱃전에 나가 출항을 기다리기도 했다. 마침내 뚜뚜 신호음을 울리면 보길도행 배가 움직였다. 물살을 가르며 내쳐 달리는 카페리가 믿음직스러웠다.

길손은 마침내 노화도에 도착 섬마을 버스를 전세 내 보길도로 향한다.
▲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노화도 버스 길손은 마침내 노화도에 도착 섬마을 버스를 전세 내 보길도로 향한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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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망졸망한 섬들과 친숙해졌나 싶었는데, 어느덧 노화도다. 여기서부터 보길도 답사는 시작된다.

덧붙이는 글 | 길손의 보길도 고산 윤선도 유적지 답사는 3회에 걸쳐 싣습니다.



태그:#보길도, #노화도, #청해진카페리호,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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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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