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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물고기국

 

.. “어이쿠, 이게 무슨 냄새야!” 나와 김동무는 구수한 물고기국냄새가 풍기자 얼른 일어나 남비뚜껑을 열어보니 손가락만한 버들치를 고추장에 넣어서 끓인 국이였다 .. <북극갈매기>(리태학, 연변인민출판사, 1988) 96쪽

 

어린 날, 동네 늪에서 미꾸라지를 잡아서 집에서 기르곤 했습니다. 인천 제2항구와 산업도로와 고속도로가 엇갈리는 모퉁이 한쪽에는 제법 넓은 밭하고 늪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 자리에 그만한 땅이 풀숲으로 가득한 채 남아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린 우리한테는 뻘놀이와 바다낚시와 함께 늪놀이를 즐길 수 있었기에 날이면 날마다 찾아가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러나 애써 잡아서 집에 마련된 물고기집에 넣어 기르다 보면 한두 마리씩 줄곤 했습니다. ‘왜 줄어들지?’ 하고 생각해도 알쏭달쏭할 뿐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야 알았는데, 아버지가 그 미꾸라지를 슬쩍해서 ‘미꾸라지국’을 해 드셨더군요.

 

 ┌ 추어탕

 ├ 鰍魚湯

 │

 ├ 미꾸라지국

 └ 미꾸라지찌개

 

비가 제법 내려 물웅덩이가 생기면 크고작은 소금쟁이가 웅덩이에서 요리 움직이고 조리 움직이곤 했습니다. 동네 늪에서 물방개를 잡으며 놀기도 하고 ‘방학생활’에 나온 ‘관찰하기’ 숙제에 나오는 히드라도 늪가에서 찾을 수 있는가 싶어 물속에 들어가 한참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플라나리아를 잡아서 칼로 자르면 어느새 둘로 자라나서 참 놀랍다고 느끼던 나날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뭇 목숨붙이를 만나고 알고 사귀려고 하던 즈음, 어른들은 미꾸라지국을 해서 먹고, 망둥이를 말려서 자시고 하니, 슬프고 씁쓸하고 허전했습니다. 그 뒤로는 늪가에서 미꾸라지 잡는 일이며 바닷가나 뻘에서 망둥이낚시를 하던 일이며 그만두었습니다. 한 해 두 해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고 출판사에서 일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다른 이들은 으레 ‘추어탕’을 맛나게 먹어댔지만, 저는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미꾸라지를 갈거나 잘라서 마련한 밥거리를 보면, 늘 어릴 적 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 물고기 : 물에서 사는 목숨붙이

 │

 ├ 생선(生鮮) : 말리거나 절이지 아니한, 물에서 잡아낸 그대로의 물고기

 ├ 어탕(魚湯)

 │  (1) 생선을 넣어 끓인 국

 │  (2) 제사 때에 올리는 탕의 하나. 생선 건더기가 많고 국물은 적다

 ├ 생선찌개(生鮮-) : 생선을 주재료로 넣고 끓인 찌개

 └ 생선국(生鮮-) = 어탕

 

이제는 옛날과 다르지만, 제 어릴 적 인천에서는 고등어보다 게와 갈치와 조기 값이 눅었습니다. 황해에서 잡아 서울로 올려보내는 싱싱한 물고기가 인천을 거쳐서 들어가니 그럴는지 모르는데, 싱싱하고 좋은 녀석은 곧바로 서울 물고기저자로 가고, 다치거나 못나거나 작은 녀석은 인천에 남아서 인천 저잣거리에서 싼값에 팔렸습니다. 게를 넣은 찌개든, 갈치를 굽거나 조기를 지지든, 어렵잖이 먹고 즐겼습니다. 요즈음은 게값이 금값 같고 꽤 크고 통통한 갈치나 조기를 구경하기란 목돈 들여야 할 일입니다.

 

생각해 보면, 좀 떨어지고 못난 물고기였어도 지난날 바다는 오늘날 바다보다 깨끗합니다. 어릴 적에는 거의 날마다 안개를 보고 무지개와 뭉게구름은 손쉽게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안개며 무지개며 뭉게구름이며 거의 구경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은 늘어났으니, 우리 삶이 넉넉하거나 푸지거나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돈을 얻으면서 땅을 버리고 하늘을 버리고 바다를 버리고 있지 않은가 궁금합니다.

 

 ┌ 물고기 + (무엇)

 └ 물고기국 / 물고기찌개 / 물고기튀김 / 물고기구이 / …

 

그나저나, 남녘땅 방송이 중국 연길시 텔레비전에 나온 지 꽤 오래되었는데, 지금도 연길시 한겨레들은 ‘물고기국’을 끓여서 함께 먹고 있으려나요. 이제는 남녘땅 사람들마냥 생선국, 생선찌개, 생선구이 들만 먹고 있지는 않으려나요.

 

ㄴ. 새해 첫날

 

.. 1월 1일, 곧 새해 첫날을 기하여, (아아, 좋은 새해가 되시기를!) 뉴우베리 씨가 중대한 책을 미장 제본하여 속속 간행한다는 사실을 이에 삼가 예고하는 바입니다 ..  <책ㆍ어린이ㆍ어른>(폴 아자르/석용원 옮김, 새문사, 1980) 49쪽

 

“새해 첫날을 기(期)하여”는 “새해 첫날을 맞이하여”로 다듬습니다. ‘중대(重大)한’은 ‘훌륭한’으로 손보고, “미장(美裝) 제본(製本)하여”는 “아름답게 꾸며”나 “아름답게 매서”로 손보며, ‘속속(續續)’은 ‘부지런히’나 ‘잇달아’로 손봅니다. “간행(刊行)한다는 사실(事實)을”은 “펴내려 한다는 이야기를”로 손질하고, ‘예고(豫告)하는’은 ‘미리 알리는’이나 ‘알려드리는’으로 손질해 줍니다.

 

 ┌ 설

 │  (1) 새해 첫날을 명절로 이르는 말

 │     <설엔 큰집에 절하러 가요>

 │  (2) 새해 처음, 첫머리

 │     <설 즈음에는 일손이 없어서 집에서 쉬려고>

 ├ 설날 : 우리 나라 명절 가운데 하나. 정월 맨 첫날이다

 │     <설날엔 떡국도 먹고 제기도 차고 놀아야지 /

 │      설날엔 일이 많아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모여 함께 일하고 함께 놀아요>

 ├ 새해 : 새로 여는 해. 이제는 가고 새롭게 다가오는 해.

 │        어느 해 첫머리에 그 해를 가리킬 때 쓰는 말

 │     <새해도 되었는데 무슨 계획이 있니?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신정(新正)

 │  (1) 양력 1월 1일

 │  (2) ‘양력설’을 구정(舊正)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 구정(舊正)

 │  (1) ‘음력설’을 신정(新正)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  (2) 음력 정월

 └ 세시(歲時)

     (1) = 설

     (2) 한 해의 절기나 달, 계절에 따른 때

 

우리한테는 ‘설’이 있습니다. 설을 가리켜 ‘새해 첫날’이라고도 합니다. 줄여서 ‘새해’라고도 합니다. 우리한테는 ‘신정’도 ‘구정’도 없었습니다. 이런 말을 쓸 까닭이 없었지만, 쓰일 일 또한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날’을 ‘근로자날’이라고 억지로 바꾸는 정치권력자들은, 우리 겨레 명절인 ‘설’을 설이 아닌 ‘신정-구정’으로 바꾸었고, 한때는 ‘민속의 날’이라는 터무니없는 새이름으로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노동자한테는 마땅히 ‘노동절’, 곧 ‘노동자날’인 5월 1일이지만, 새해 달력을 펼치면 어김없이 ‘근로자의 날’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 한가위 ← 秋夕

 └ 잔치 ← party / 宴會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명절을 우리 명절답게 못 즐기거나 못 누립니다. 먹고살기가 바빠도 명절은 명절인데, ‘한가위’가 사라지고 ‘추석(秋夕)’이 됩니다. 살붙이와 동무를 불러모아 태어난 날을 기리는 ‘잔치(생일잔치)’를 하지는 못하고 ‘파티(party)’만 합니다. ‘책거리’나 ‘책씻이’는 자취를 감추고 ‘쫑파티(終party)’를 합니다. 그나마 아기들한테는 ‘돌잔치’를 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는 ‘예순잔치(예순한 살 잔치)’ 아닌 ‘환갑연(還甲宴)’이나 ‘회갑연(回甲宴)’을 하고 있어요.

 

 ┌ 설 / 설날 ☞ 음력으로 1월 1일 = 음력설

 └ 새해 첫날 ☞ 양력으로 1월 1일 = 양력설

 

그나마 ‘음력설’과 ‘양력설’이라고 말하는 분을 더러 만납니다. ‘구정’이나 ‘신정’이라 하지 않으니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들은 달력은 양력에 따라서 쓰고, 명절은 음력에 따라서 지낼 테니, ‘음력설-양력설’이라는 새말을 빚어내어 쓰면 한결 나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음력설은 말 그대로 ‘설’이라 하고, 양력설은 ‘새해 첫날’이라고 이야기해 볼 수 있습니다. 몇몇 달력에는 1월 1일을 ‘신정’이 아닌 ‘새해 첫날’로 적어 놓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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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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