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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경험

 

새해 국정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지금은 대안 없이 비난만 하거나 방관자로 머물 때가 아니라 적극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올 한 해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 말 속에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곧 '비난, 방관자'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비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까지도 '방관자'인 것처럼 매도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고도의 연설(?)문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현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면 대역죄인이라는 협박으로 들려왔다.

 

지난해 말,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정리하면서 '참으로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것이 부끄럽습니다'라고 개인적인 심경을 고백한 적이 있다. 그 글을 읽은 어떤 용감한(?) 독자가 항의성 메일을 보내왔다.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면 당신의 국적은 대한민국이 아니란 말이요? 당신의 국적을 말해 줄 수 있겠소?"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정책을 막지 못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참담함을 느끼는 것은 이 나라의 국민이기를 포기한 행동일까? 아니 오히려 수치심을 느껴야하는 상황에서 그걸 느끼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몇 년간 도서출판계의 화두는 '긍정의 힘'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한결같은 내용이 '긍정'에 대한 것이었고, 명상집조차도 '긍정의 힘'에 대해서 극찬을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책들의 가르침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을 해도 '여전히 내 삶은 그대로'인데 문제가 있다.

 

이 부분 '여전히 내 삶은 그대로'라는 회의감이 드는 순간 난 긍정형 인간이 아니라 부정형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을 못한 것이다. '긍정'을 화두로 삼고 있는 책들이 독자에게 가차없이 휘두르는 폭력이다.

 

왜 세상은 생각처럼 되지 않을까?

 

위의 내용은 개인적으로 최근 경험한 것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 것이다. 분명 양비론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말도, 이 나라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부심을 갖자는 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말도 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왜 세상은 생각처럼 되지 않을까?"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지만 세상일이 생각처럼 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중략)… 우리의 삶도 편리함을 노래하며 홍수처럼 쏟아지는 첨단 제품 광고들과 달리 갈수록 더 바빠지면서 여유를 잃고 있다. …(중략)… 고정관념을 타파하자는 목소리가 곳곳에 가득해도 고정관념의 완고한 벽은 좀처럼 우리 주변에서 물러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문명 패러독스 서문 중에서)

 

<문명 패러독스>의 저자 송상호는 '이 세상에 지극히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 만일 당연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라며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의문부호를 달고 현대문명을 학자의 눈이 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례와 예화, 영화, 책들 속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찾아 기술하였다.

 

문명 패러독스의 구성

 

'왜 세상은 생각처럼 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문명 패러독스>에서 다룬 역설(逆說)의 주제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권위주의적 윤리'를 통해 문명의 가치가 의심되지 않음으로 집단적인 순종의 역사, 광기의 역사가 있었음을 지적하며 새로운 창조의 역사는 권위주의적 윤리에서 이탈하여 오래된 신념을 뒤엎은 의심의 역사가 있었음을 서술하고 있다.

 

깨닫는다는 것과 의심하는 것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의심은 새로운 창조와 깨달음의 전제 조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문명에서 추구하는 것의 허구를 아래의 주제들을 통해서 밝혀내고 있다. 저자는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습관과 생각에 틈이 생기고 독자들의 주체적인 생각이 책 속에 개입해 들어오길 바라면서 위의 주제와 함께 이런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빠를수록 느려지는 딜레마/ 위선자를 위한 변명(인간은 가면을 필요로 한다)/ 문명과 박테리아의 관계 / 서열문화 / 신을 창조한 인간 / 도시의 서로 다른 두 얼굴 / 행복한 미래는 존재하는가 / 인간만이 쓰레기를 남긴다 / 편리를 추구할수록 불편해지는 딜레마 / 천국과 극락의 존재 이유 / 고정관념을 위한 변명 / 미(美)의 권력/ 거대함의 축복과 저주 / 섹스와 문명 / 진화는 없다/

 

위의 주제들을 통해서 저자는 독자들의 사고방식의 틈을 어렵지 않게 파고든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해답을 주지 않는다. 이것이 약간 불편하긴 하지만 결국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만일 그가 이 책을 통해서 어떤 주제에 대해 독자들에게 '해답'을 주려고 했다면 그것 자체가 '패러독스'이전에 모순(矛盾 Contradiction)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송상호의 특이한 경력

 

저자 송상호의 삶의 내력은 특이하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 고등학교를 1년만 다녔던 그는 신발공장, 의자공장 등을 전전하다 열아홉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군대에 복무하던 시절에는 집 건물이 붕괴하며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내드리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렇게 평탄하지 않은 삶이었지만 책에 대한 송상호의 집착은 놀라워서 경계 없는 독서를 통해 그의 정신세계를 무한대로 확장시켜 갔다.

 

개신교 목사이기도 한 그는 1999년 부산을 떠나 고물장사, 막노동, 학습지교사,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의 정신을 실험할 터전을 마련하기 시작했으며 천신만고 끝에 2001년부터 경기도 안성에 '더아모(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을 열었다.  

 

왜 세상은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일까. 이 답답한 의문을 깨기 위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문명의 가치를 의심하는 일을 통해서 사고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아 일독을 권한다.


문명 패러독스 - 왜 세상은 생각처럼 되지 않을까?

송상호 지음, 인물과사상사(2008)


태그:#문명 패로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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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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