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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인조는 남한산성 서문으로 나와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 남한산성 서문 병자호란, 인조는 남한산성 서문으로 나와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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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마천동에서 등산로를 따라 남한산성을 오르면 서문이 나온다.

어릴 적부터 친구들과 이맘때면 칡을 캐러 다니기도 했고, 계곡을 따라 다니며 가재를 잡기도 했으며, 청소년기까지는 마음이 답답할 때면 단숨에 뛰어오르기도 했던 산이 내겐 남한산성이다.

당시, 가슴이 터져버릴 듯한 숨가쁜 걸음으로 달음박질을 하면 한 시간이면 충분했고,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오면 30분이면 족했으니 걸음걸이가 무척이나 쟀었나 보다.

차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성남시나 하남시 쪽으로 차를 타고 남한산성에 올랐다. 그리고 아주 가끔 걸어서 남한산성을 올랐는데, 그 마지막이 막내가 걸음마를 막 배울 무렵이었던 것 같다.

막내를 둘러매고 오른 산행길이 수월했을 리 없다. 그 이후로 남한산성을 걸어서 올라간다는 생각을 접었는데 올해 기축년이 밝아오면서 그 길을 다시 걸어가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읽었던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때문이었다.

인조가 남한산성 서문을 통해 삼전도에 내려와 투항을 했다. 1월 30일 투항했다고 전해지니 그 해 이맘때 남한산성 서문에는 청장 용골대의 문서가 어전에 보고되지는 않았을까 싶다.

"너희가 선비의 나라라더니 손님을 대하여 어찌 이리 무례하냐. 내가 군마를 이끌고 의주에 당도했을 때 너희 관아는 비어 있었고, 지방 수령이나 군장 중에서 나와서 맞는 자가 없었다…(중략)…너희 군신이 그 춥고 궁벽한 토굴 속으로 들어가 한사코 웅크리고 내다다보지 않으니 답답하다. (김훈 <남한산성> 중에서)"

산행 중 만난 돌무더기, 소원을 빌며 하나 둘 쌓아갔을 돌멩이들은 전시에 좋은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 돌무더기 산행 중 만난 돌무더기, 소원을 빌며 하나 둘 쌓아갔을 돌멩이들은 전시에 좋은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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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도 이 곳에는 이렇게 돌무더기가 쌓여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곳에 남아있지 않은 돌은 결사항전으로 적과 맞붙은 이들의 손에 쥐어졌을 것이고, 앙상한 겨울숲 사이로 여름날 나무 이파리보다도 더 많은 적들로 가득찬 남한산성의 현실에 그들은 절망했을 것이다.

그 절망의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추위와 배고픔과 분노와 두려움 그 모든 것들을 잊을 수 있는 죽음, 이 세상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의 이별이 아픔을 능히 감내할 수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허허로이 받아들이는 일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은 아닐까?

다른 산을 오르며 만나는 돌무더기에서는 '돌을 쌓으며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를 떠올리지만 유독 내게 남한산성의 돌무더기는 병자호란과 연결이 되면서 '비장의 무기' 정도로 각인이 된다. 그래서 이 돌무더기는 너무도 슬프게 다가온다. 내가 처음 남한산성을 올랐을 때부터 있었으니 거슬러 올라가고 올라가면 병자호란까지는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손바닥에 먹이를 놓자 박새가 막내의 손으로 날아들고 있다.
▲ 박새와 막내 손바닥에 먹이를 놓자 박새가 막내의 손으로 날아들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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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서울 근교에 제법 산다운 산이 있으니 많은 이들이 찾는 덕에 등산로를 정비해서 올라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니 빠른 걸음걸이가 아니었음에도 한 시간 남짓 남한산성 서문에 오를 수 있었다.

남한산성을 오르는 길, 아빠 품에 안겨 남한산성을 올랐던 막내가 성큼성큼 산을 오른다. 꼭 저만할 때 남한산성을 친구들과 오르내리며 칡도 캐고, 가재도 잡고, 계곡에서 멱도 감고 했는데 하는 생각을 하니 세월의 빠름이 실감난다.

산을 오르던 할아버지가 손에 땅콩을 놓고 휘파람을 부니 박새가 날아와 땅콩을 낚아챈다. 신기하다.

가만히 앉아 바라보던 막내의 손에 땅콩을 놓아주시는 할아버지, 막내가 가만 기다리는데 새들은 매일 와서 먹이를 주는 할아버지 손으로만 날아간다. 조금의 기다림, 드디어 막내의 손바닥을 기웃거리던 박새가 막내의 손으로 날아든다.

"와! 정말 온다, 새가 온다!"

손바닥에 앉은 박새, 새해 기분 좋은 경험이다.
▲ 박새와 막내 손바닥에 앉은 박새, 새해 기분 좋은 경험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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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새와 놀다가 산을 오르니 그리 힘들지 않게 산을 올랐다.

날씨도 그런대로 좋고, 내려오는 길은 옛 길을 따라 내려오니 수북하게 쌓인 낙엽들 밟는 소리도 좋다. 흔히 걷던 길이 아니라 아이들은 더 재미있는가 보다.

그렇게 세 시간여의 산행을 마치고 다시 평지로 내려왔다. 점심은 칼국수와 수제비로 유명한 근처 식당에서 해결했다. 값도 저렴하지만 맛도 일품이다. 산행 뒤의 점심이라 더 맛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올라간 남한산성은 아주 유명한 산이나 험한 산은 아니지만 의미있는 산이란다. 그리고 올라가는 길이 그리 힘들지 않았고, 올라가는 길에 새가 손에 앉아 먹이를 먹는 행운도 잡았고,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 보니 아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서울 시내를 한 눈에 내랴다 볼 수 있었고, 점심은 그리 비싸지 않은 음식이지만 정말 맛나게 먹었고…. 올 한해 이렇게만 풀렸으면 좋겠다."

새해 첫 산행, 남한산성에서 희망을 품었다.

너무 티나지도 않고 모나지도 않게, 너무 힘들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기를…. 이 어려운 시대에 너무 큰 꿈을 꾸는 것이 사치인 듯 하여. 오늘 산행만큼만 적당하게 힘들고 보람찬 한  해이길 희망했다. 어쩌면 이것도 이 시대에 너무 큰 꿈인지 모르겠다.


태그:#남한산성, #박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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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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