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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파가 한풀 꺾인 날, 자전거를 타고 인천대 길을 따라 달릴 때였다. 옛모습 그대로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한 둥근 지붕과 그 양옆에 우뚝 솟은 건물이 눈에 띄는 인천체고를 지나치다, 낡고 사이사이 철창이 부서져 오가는 이들의 샛길이 되어주는 교문 앞에 멈춰섰다.

 

 

마치 만화영화 태권브이에 나오는 비밀기지처럼 생긴 학교 건물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지만 낯설지 않았다. 6년 동안 시내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매일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번씩은 꼭 보고 지나쳤기 때문이다. 교문에서 학교까지는 지루한 오르막이 이어져 있었고, 그길 옆에는 드넓은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교문 기둥 위에는 금세라도 먹이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펼쳐 달려들 기세의 사자상과 원반을 한손에 쥔 벌거벗은 건장한 남자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듬직한 근육질의 남자상은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멈춰서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괜실히 한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티없이 파란 겨울 하늘과 잘 어울린 두 청동상은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멋스러웠다.

 

 

 

말없는 청동상과 인사하고 인천체고 교문을 나와 도화오거리를 걷다 한겨울에 핀 노란 개나리도 볼 수 있었다. 이상기후로 겨울같지 않은 따뜻한 날씨에 개나리가 희롱당해 그런지, 꽃눈을 일찌감치 터트린 개나리는 그 연한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래되고 무식한 콘크리트 담벼락을 넘어 줄기를 뻗친 개나리는 오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꽃 좀 사세요!"하고 외치는 꽃파는 가난한 아가씨처럼 길가에서 하염없이.

 

겨울의 변덕 때문에 놀라 꽃망울을 터트린 개나리를 보고 있자니, 새해 벽두부터 요란하고 소란스러운 세상에 그리고 빼앗긴 광장에도 봄이 다시 찾아올까 걱정스러웠다. 개나리처럼 때를 잊고 철없이 꽃을 피우게 되지는 않을런지. 수많은 꽃들이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매서운 겨울 감옥에 갇혀 꽃조차 피우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샛노란 개나리 때문에 근심 걱정만 늘어났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개나리, #봄, #겨울, #인천체고, #청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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