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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로 곱게 분장한 별당의 새로운 모습
▲ 별당 아침햇살로 곱게 분장한 별당의 새로운 모습
ⓒ 손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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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보니 어슴푸레 먼 동이 터오고 있다. 매무새를 정리한 뒤 문을 열고 나가자 만산고택 주인 어르신께서 맞아 주신다.

“일찍 일어났네, 아침 준비되려면 조금 걸리니까 기다려.”
“네, 조금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고택의 한 쪽 벽면에는 시래기가 걸려 말라가고 있었다.
▲ 시래기 고택의 한 쪽 벽면에는 시래기가 걸려 말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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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날이 밝아 아침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은 만산 고택을 둘러보았다.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시래기들이 정겨움을 주고 어제 보았던 별당도 빛이 뿌려주는 가루로 곱게 화장을 하여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담장 너머에는 유독 고집스럽게 단풍잎을 놓아 주지 않는 나무 한 그루가 텃밭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유독 단풍잎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무
 유독 단풍잎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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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을 따라 한 바퀴를 도니 다시 사랑 마당으로 나오며 별당 반대쪽에 위치한 서당이 처마 끝에 걸린 빛줄기를 부서트리며 서 있다. 멋진 풍광에 청량한 아침 공기와 함께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적당한 운동을 해서인지 슬슬 시장기가 몰려 왔다. 종갓집의 아침밥은 어떨까? 되돌아 가는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고택이 자제들이 학문에 힘썼을 서당의 처마에 아침햇살이 부서진다.
▲ 서당 고택이 자제들이 학문에 힘썼을 서당의 처마에 아침햇살이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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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고등어와 고들빼기 김치, 잊을 수 없는 그 맛

아침식사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전날 얘기를 나눈 외국인 부부가 한 상을 받고 주인 어르신과 내가 한 상을 받았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각 반찬들이 정갈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고 있었다. 맛있는 육개장과 간고등어를 주메뉴로 하여 고들빼기 김치와 파김치가 잊을 수 없는 맛을 내었다. 참고로 이곳 아침 식사는 5000원을 받는다. 나는 주인 어르신과의 작은 인연으로 공으로 얻어 먹었지만 말이다.

풍성하고 맛있는 종갓집 아침식사 남긴 것이 없을 정도였다.
▲ 종갓집 아침식사 풍성하고 맛있는 종갓집 아침식사 남긴 것이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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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하면서 어르신께서 행선지를 물으신다. 말씀을 편히 하시면서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기 시작하셨다.

“니 인자 어데로 갈껀데?”
“마지막으로 청량산에 가 볼 생각입니다.”
“니 지금 가가 차 시간 맞추기도 힘들고 버스 타고 가봐야 산 탈 시간도 안 나온다. 쪼매 있어 봐라, 내가 차 태워줄 테니까 내 잠깐 일 좀 보고 한 시간쯤 있다가 내랑 같이 가자.”
“아! 정말 고맙습니다.”

등산로의 시작이다. 모델은 만산고택 주인 어르신.
▲ 입석 등산로의 시작이다. 모델은 만산고택 주인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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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주인 어르신과 함께 청량산 산행을 하게 되었다. 주인 어르신은 가는 내내 봉우리나 건물, 나무, 바위 등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해 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봉화 내의 산이나 유적, 설화 등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으실 정도라 친구들 사이에서는 강박사라고 불리신단다. 또 가는 길에 친구 분까지 소개시켜주셔서 지친 다리와 마른 목을 잠시 달래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어르신이 설명해 주신 것을 열심히 듣기는 하였으나 다시 사진을 보니 가물가물하다.
▲ 연화봉 어르신이 설명해 주신 것을 열심히 듣기는 하였으나 다시 사진을 보니 가물가물하다.
ⓒ 손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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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금강산, 봉화 청량산

청량산은 870m 높이의 장인봉을 최고봉으로 하는 그리 크지는 않은 산이다. 그러나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한다. 또한 김생, 원효 대사, 퇴계 이황, 신재 주세붕 등 많은 석학들이 청량산을 사랑했고 실제로 청량산에서 수도를 했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산은 바위산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등산로에는 실제로 흙길도 많이 있다. 청량하고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산세에 많은 유적들이 산재해 있어 느긋하게 구경하며 타기 좋은 산이다. 다만, 등산로 개발이 최소한만 되어 있어 등산에 능숙하지 못하면 산이 자못 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이것도 역시 가물가물, 아름다운 산세에 이름이 중요하랴...
▲ 탁필봉 이것도 역시 가물가물, 아름다운 산세에 이름이 중요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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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어르신께서 추천해주신 코스는 입석에서 시작한다. 내가 하늘다리를 꼭 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기에 입석에서 청량정사, 청량사, 뒷실 고개에서 하늘다리(자란봉, 선학봉)를 거쳐 정상(장인봉)을 찍고 장인봉 전망대에서 낙동강의 뒤태를 구경한 뒤 내려오는 코스였다.

입석에서 올라가는 길은 평이했다. 그저 설렁설렁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주인 어르신 설명을 들으며 올라갔다. 주인 어르신께서 마치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듯이 봉우리 이름을 알려 주셨으나 그러려니 할 뿐 사실 외우거나 할 수는 없었다.

이것은 그래도 비교적 정확히 기억나는 사진이다.
▲ 자소봉 이것은 그래도 비교적 정확히 기억나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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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숨이 차오기 시작했다. 어르신께서는 아직도 처음과 같은 페이스로 걷고 계신데 말이다. 숨차오름과 약간의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을 때, 어르신이 뒤를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힘들자? 저그 들가서 좀 쉬자, 저그가 내 친구가 하는데다.”

패랭이 모자와 짚신이 인상적이다.
▲ 산꾼의 집 입구 패랭이 모자와 짚신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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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의 집'에서 만난 한국 달마도 명장 1호 이대실 선생님

청량정사 옆에 자리 잡은 산꾼의 집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한국 달마도 명장 1호 이대실 선생께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약차를 한 잔씩 나누어 주며 수학하시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약차 한 잔을 마시고 지친 다리와 가쁜 숨을 진정시켜며 두 분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 분께서는 서로를 ‘강박사, 이도사’라고 호칭하시며 그 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셨다.

청량산에서 수학한 퇴계 이황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논의하여 1832년에 건립한 건축물이다. 이후 후학들의 수학 장소가 되었으며, 구한말에는 청량의진이 조직되어 의병투쟁의 근원지가 되기도 하였다. 바로 옆에 산꾼의 집이 있다.
▲ 청량정사 청량산에서 수학한 퇴계 이황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논의하여 1832년에 건립한 건축물이다. 이후 후학들의 수학 장소가 되었으며, 구한말에는 청량의진이 조직되어 의병투쟁의 근원지가 되기도 하였다. 바로 옆에 산꾼의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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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대실 선생님께서는 지난 북경 올림픽에서 달마도 전시회도 여셨다고 한다.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어가니 선생님께서 반갑게 대꾸해 주신다. 나를 젊은 친구라고 부르시며, 관상 보아하니 크게 될 친구라고 덕담을 아끼지 않으신다. 그러면서 허허 웃으시는 얼굴이 마치 정말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이야기 끝에 일어서려 하니 조그마한 초코바를 몇 개 쥐어 주시며 “내려올 때도 꼭 들르게 젊은 친구”하신다. 그 표정이 너무 살가워 고마웠다.

우리나라 달마도 명장 1호 이대실 선생님이 기거하시는 산꾼의 집, 무료로 약초차를 마시고 지친 발을 쉬어갈 수 있는 초막이다.
▲ 산꾼의 집 우리나라 달마도 명장 1호 이대실 선생님이 기거하시는 산꾼의 집, 무료로 약초차를 마시고 지친 발을 쉬어갈 수 있는 초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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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는 길이라 조금은 쓸쓸했던 봉화 가는 길. 새로운 사람과의 인연이 생기는 것에 정말이지 봉화에 잘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생전 모르던 사람을 아주 작은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차까지 태워 주시고 함께 등산하며 가이드를 자처해 주신 만산고택 주인 어르신, 친구 분이 데려왔다는 이유로 역시 생면부지의 젊은 아이에게 마음 속 깊이 진심으로 살갑게 대해 주신 초막 이대실 선생님. 사람만이 희망이라 하였지만, 어디 그러한 것이 희망뿐이랴. 내가 걸어본 봉화 가는 길에서는 역시 사람이 기쁨이었다.

지나던 길손들의 소원이 하나 둘 씩 모여 작은 돌탑을 만들어낸다. 무슨 거창한 소원보다는 가족의 건강 같은 소박한 소원이리라. 그 마음이 기껍다.
▲ 돌탑쌓기 지나던 길손들의 소원이 하나 둘 씩 모여 작은 돌탑을 만들어낸다. 무슨 거창한 소원보다는 가족의 건강 같은 소박한 소원이리라. 그 마음이 기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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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봉화, #청량산, #산꾼의 집, #청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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