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하면 검색엔진이나 위성사진을 공짜로 보게 할 수 있는 구글어스로 유명한데, 비록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쓸만한 그래픽 프로그램인 <스케치업>이라는 프로그램까지 무료로 제공하니 '착한'기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케치업이라는 프로그램을 안 지는 불과 한달도 되지 않았다. 목공취미카페인 <우드워커>에 들어가 시골에 작은 거처를 마련한 친구가 필요로 할 것 같은 나무 난로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스케치업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그래픽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쓸 줄 모르는 프로그램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그 프로그램을 쓸 수 있게 만든 사람은 엉뚱하게도 바로 그 친구 때문이었다.
"정자 만드는데 주춧돌을 얼마 간격으로 놓으면 되니?"라고 묻는 그 친구 말 뒤에 숨은 뜻을 모를 리 없건만 3미터라고 말해놓고 보니 일반적인 정자의 크기는 대개 폭이 4미터가 넘었다. 언제 지을지는 모르지만 이미 주춧돌은 1.5미터 간격으로 밭 전(田)자의 교차점 9개에 놓여졌으니 폭 3미터에 맞는 정자 개념도 하나쯤은 건네주어야만 할 것 같다.
내친 김에 스케치업으로 한번 만들어 줘? 구글 홈페이지에 있는 동영상 튜토리얼을 보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개념도 하나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예상과 실제 사이는 항상 거리가 있는 법이다. 마침 성탄절에 인사동 나갈 길이 있어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얇은 학습서를 구입하니 그야말로 '핵심'교재라 생략이 너무 많다. 이틀 뒤 다시 두툼한 '종합'교재를 하나 사서 이틀정도 따라 해보니 대충 이해가 간다.(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교재는 얇은 것이 효과적이고 질리지 않게 한다는 나름대로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방안에서 할아버지 혼자 뭐 재미난 거 하나 궁금해하며 기웃거리는 손주에게 자기 사진 하나씩 프린트해주며 완성한 정자 개념도. 애니메이션으로 상하좌우 원근 돌려가며 보여줄 수도 있으니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 프로그램이다. 예전에 대목공부 같이하던 동료께 보여주니 합판의 성질상 서까래를 좀 더 보강하고 바닥재질에 대한 조언도 해준다.
그러나 아직도 프로그램 상에서 추녀처럼 xy축에서 회전시키고 z축상에서 회전시킨 각재나 판재를 자르면 한쪽이 잘려나간 텅 빈 종이상자처럼 되는 것은 교재를 하나 하나 풀어나가지 않은 나의 성급함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개념도를 들고 보던 친구는 좀 더 열심히 술을 사주는 것만 같으니 어째 서천 앞 바다에서 나는 싱싱한 회와 술에 혹해 올 여름 되기도 전에 엮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저의 홈피와 우드워커(목공카페)에 실었더니 서까래와 보를 보강해야 한다는 많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저 간단히 만드는 정자의 개념도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