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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아고 가는 길 = 남극 가는 길
 

연금술사로 유명한 ‘파울로 코엘료’가 한번 때려준 ‘산타아고 가는 길’이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수백 킬로의 길을 배낭 하나 달랑 매고 길게는 몇 달에 걸쳐서 가는 수행의 길이라고 한다. 한때는 나도 가볼까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연결되는 세계 각지의 또 다른 이벤트 참여로 살짝 흥미를 잃은 상태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 좋기는 하지만 사람에 따라 ‘남극 가는 길도 만만찮은 수행과 고난의 길이다’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한국의 정 반대에 있는 세상을 만나기 위해 지구의 땅끝 마을까지 찾아가는 여정,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얼굴들과 풍경, 풍물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잊고 지내고 있으며 어찌보면 관심을 놓아 버린 세계 각지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의 모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까운 나라부터 그 멀고 먼 세상 끝 마을까지 자리잡고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면 괜한 미안함과 자부심 그리고 고마움을 느낀다.

 

나도 예전에 수년간 해외 생활을 해봤고, 일년에 평균 열 번 이상 해외를 나가지만, 여행이건 유학인건, 사업이건 일단 한국을 벗어나면서부터는 일부 계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은 더 이상 고국의 보살핌과 안전 보장은 커다란 사치로 다가온다.

 

자국민의 안전과 관리는 뒷전인 재외공관들의 현실상 각자 알아서 살아 남아야 하는 서글픔을 느낀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을 만나보니 자국 대사관에서 위급 시 한국 탈출 계획서를 공문으로 보냈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어떤지? 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이나 있는 건지? 하여튼 짜증난다.

 

 

머나먼 남극

 

남극을 가는 방법은 칠레 푼타아레나스에서 깔끔하게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아니면 우리 같이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배를 타고 속 뒤집어지면서 가던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대회를 치르다 보니 안전 사고와 코스 설정 관계로 남극 여객선을 타고 11일간의 여정으로 남극으로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가 승선한 이름도 긴 러시아 국적의 'Professor Molchanov and Professor Multanovskiy'호가 외부 철판에 작은(?) 구멍이 발견되어 수리를 하느라 모두의 애간장을 태우는 사고가 발생됐다. 극지에서의 작은 실수나 사고는 순식간의 모두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형 참사로 변한다. 결국 외부 철판은 용접을 하고 내부는 콘크리트로 보강을 하는 대 수선을 마친 후 감독관의 출항 승인을 받고 모두의 환호성 속에 일정보다 하루 늦게 남극으로 떠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 송경태, 부산 MBC 최병한, 박태규 기자, 김효정 그리고 유지성. 우리 5명의 꼬레안은 인천공항 출발 후 프랑스 ‘파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우수아이아’를 거쳐 5일 만에 드디어 남극을 향해 또 다른 여행을 떠났다.

 

모두 남미 대륙의 끝인 비글 해협의 멋들어진 노을을 벗 삼아 앞으로 펼쳐질 눈밭의 레이스에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나는 눈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지옥행 열차를 탄 기분이다. 남들은 처음 가보니 모른다. 너무 아는 것도 죄라고 앞으로 고생할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속이 느끼해지는 게 뱃멀미가 자꾸 친구하자고 유혹한다.

 

 

11월 25일 저녁 8시경 우수아이아를 떠난 우리의 여객선은 5시간 이상의 항해 끝에 남미 대륙의 끝인 비글 해협을 벗어나, 태평양과 대서양이 만나 미쳐서 날뛰는 드레이크(Drake) 해협에 들어섰다.

 

이곳은 작년에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모두 장렬하게 전사한 곳으로 거의 90% 정도의 승객이 뱃멀미로 고생하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파도가 얼마나 거센지 수시로 배가 공중부양을 하고 앞,뒤,좌,우 안 가리고 산더미처럼 높은 파도가 몰아친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작년에 비해서 너무나도 잔잔한(?) 파도가 아닌 물결이 찰랑거린다. ‘살았다!’라는 기쁨의 소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온다.

 

배 안에서 지내는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고 남는 시간을 활용하고자 올해는 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왔다. 컴퓨터에는 어학 공부를 위해서 100기가바이트 이상의 동영상(?) 영화를 잔뜩 준비했고, 그동안 밀린 일도 잔뜩 있어 일을 시작하지만 모니터를 보고 10분만 지나면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일이 반복된다.

 

일생 처음으로 눈 앞에서 본 고래

 

 

 

갑자기 여행 총괄 가이드 ‘델핀’의 안내 방송이 ‘따따따’ 기관총처럼 쏟아진다. 비몽사몽간에 있던 상황이라 처음에는 사고가 난 줄 알았다. 밖에서는 사람들 뛰어 다니지 계속해서 프랑스 억양의 영어가 흘러나오지, 이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간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밖에 고래가 나타났다는 안내 방송이다. ‘아! 그래서 고래 보겠다고 이 난리구나’. 갑자기 정신이 든다. 나도 카메라 들고 뛰쳐 나갔다. ‘어디야, 어디?’ 망원경 들고 카메라 들고 사람들이 고래 찾기에 열심이다. 이건 뭐 숨바꼭질도 아니고 저 넓은 바다에서 고래가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어…. 그 순간 멀리서 작은 분수가 올라온다. 정말 고래다.

 

배가 우측으로 방향을 틀더니 고래 쪽으로 다가갔다. 얼마 후 엔진을 멈추고 고래와의 만남을 시도했다. 잠시 후 고래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 놀랍게도 고래 여러 마리가 우리를 찾아왔다. 배 주위를 계속해서 유영하며 자신의 몸매를 뽐내기 시작한다. 일생 처음으로 눈 앞에서 본 고래는 정말 크고 신기했다. 배에 있는 안내원도 고래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하며 우린 축복 받은 사람들이라며 연신 축하한다고 말한다.

 

11월 27일 오후, 드디어 드레이크 해엽을 통과하고 내일 아침이면 남극 본토에 상륙하여 첫 번째 코스를 달린다는 대회 브리핑이 시작된다. 드레이크 해엽을 통과했다는 안도감과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내일부터 시작되는 레이스의 긴장감이 서서히 밀려온다. 까다로운 장비 검사를 마지막으로 내일의 레이스를 준비한다.

 

덧붙이는 글 | 사막의아들 유지성 / www.runxrun.com 

사막, 트레일 레이스 및 오지 레이스 전문가. 칼럼니스트,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사막, 남극 레이스, 히말라야, 아마존 정글 마라톤, Rock and Ice 울트라 등의 한국 에이전트이며, 국내 유일의 어드벤처 레이스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태그:#남극, #고래, #사막, #남미,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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