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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새해아침 지리산 천황봉쪽에서 밝아오는 새해아침을 맞아 새해의 기원을 빌고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릴틈도 없이 바로 목욕탕 짓는 일을 시작하였다.
▲ 2009년 새해아침 지리산 천황봉쪽에서 밝아오는 새해아침을 맞아 새해의 기원을 빌고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릴틈도 없이 바로 목욕탕 짓는 일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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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랑헌의 해 뜨는 방향은 여름에는 동쪽 만복대(1433m)에서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서 동남쪽인 노고단(1507m) 쪽으로 옮겨가고, 동지가 지나면 다시 만복대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오늘은 2009년 새해 아침이다. 2007년 1월1일 아침에 뇌경색이 발병한 뒤 2년이 지났다. 일어서지도 못하고 누워서 콧구멍으로 식사를 하던 때에 비해, 지금은 두발로 든든히 버티고 서서 밝아오는 여명을 맞이할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작년 새해 첫날은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그때도 시랑헌에서 공구창고를 짓고 있었으나 눈 때문에 작업을 할 수 없어 통창을 통해 설경을 즐기면서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계획 했다. 올해는 목욕탕과 화장실을 짓는 일을 벌여놓고,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 위한 작업일정 또한 빠듯하니, 차분히 여가를 즐길 경황이 없다.

겨울철 작업복장 새벽부터 일하기 위해서는 완전무장을 해야한다.
▲ 겨울철 작업복장 새벽부터 일하기 위해서는 완전무장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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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골조 상자 목욕탕 벽체가 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제자리를 찾아 간다.
▲ 목욕탕 골조 상자 목욕탕 벽체가 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제자리를 찾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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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엉터리, 나무상자 옮기다가 처마 부숴버렸다

날이 밝기도 전에 목욕탕 골격이 될 나무 상자가 제자리를 찾아간다. 무겁고 큰 물건을 굴착기로 들어옮기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다. 아래터에 설치한 작업실천막에서 조립한 상자를 굴착기로 들고 내오면서 창고 천막 지퍼를 고장냈고, 시랑헌을 돌아 배관과 기초단이 만들어진 곳으로 옮기면서 시랑헌 처마를 들이받아 부숴버렸다. 나의 엉터리 작업순서에 대한 아내의 불편한 심기가 눈꼬리에 그대로 들어난다.

겨울철 새벽 냉기는 뇌졸증 환자에게는 절대로 경계할 대상이다. 히말라야 트레킹과 동계 고산등반을 위해 준비해둔 복면마스크를 쓰고 나서니 테러요원이 따로없다.  나도 어색하고, 나를 바라보는 아내도 박장대소한다. 그러나 다시 떨어지면 끝이라는 생각에 불편을 감수하며 작업장으로 향한다.

배관과 기초단을 먼저 만들고 상자를 작은 부품으로 나눠 옮겨서 조립했더라면 작업실 천막도 시랑헌 처마도 무사했을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240x150x200㎝ 상자로 만들어 옮기려다 보니 상자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워 장정 3~4명이 움직일 수도 없었다. 무겁고 큰상자가 굴착기 고리에 매달려 흔들거고 닿고, 부딪치는 곳마다 깨지고 부서진다. 자주 이렇게 시행착오를 계속하다간 가장의 지위가 위태로울 것 같다..

상자는 아래 부분이 막히고 윗부분이 터져있으나 아래쪽 받침대 때문에 위아래를 바꿔 사용할 수 없다. 상수도관과 하수도관의 위치를 찾아 직쏘(다리미질 하듯이 자르는 톱, 곡선으로 자를 수도 있다)를 사용하여 원형으로 따내고, 그 위에 상자를 제 위치에 놓아야 하니 일이 힘들고 더디다. 공짜로 얻은 상자의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절대로 효용성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공짜를 권할 만하지 않다. 다음에 또 누가 재활용 목재를 가져가라면 깊이 재고해 볼 일이다.

버릴 목재를 재활용하면 가슴이 뿌듯한 맛은 있으나, 다듬는 노력을 고려하면 경제적으로 큰 도움도 안 된다. 또 설계나 시공상 많은 제한조건이 따르고 능률이 떨어진다. 그러나 나무 한 조각도 버리고 싶지 않은 목수 후보생에게 재활용 목재의 공짜 유혹은 뿌리치기 힘든 것이다.

화장실과 목욕탕 골조 기초단 위에 올려진 화장실과 목욕탕 상자
▲ 화장실과 목욕탕 골조 기초단 위에 올려진 화장실과 목욕탕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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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단 위에 옮겨놓은 상자를 고정시킬 차례이다. 2개의 커다란 상자를 맞춰놨으니 수평이 맞지도 않고 이음새 부분이 매끄럽지도 않다. 수평기와 수직추를 가지고 상자의 귀퉁이를 여러 번 고이고 수정한 후에야 겨우 수평을 잡을 수 있었다.

2X6인치 각재를 둘로 나누고 180㎝씩 잘라 서까래 9개를 만들고 7도 경사를 주어 지붕을 만들고 서까래를 설치하고 서까래 위에 삼나무 루바로 인테리어를 마감했다. 목욕탕 안에서 지붕을 처다보는 맛이 그만이다.

지붕 루바 위에 합판으로 고정하고 나니 지붕 위를 자유자재로 걸어다니면서 작업이 가능하다. 이제 방수시트와 아스팔트 싱글을 깔면 지붕이 마감된다. 나머지 지붕작업은 오후로 미룬다.

다음은 목욕탕 우측에 60x60㎝ 창문을 설치하는 것이다. 2x4 인치 각재를 사용하여 창들을 만들 계획이니 벽면을 64㎝ 정사각형 모양으로 따내야한다. 전기체인톱을 들고 벽을 향해 톨날을 들이댔으나 정확한 정사각형으로 벽을 따낼 수 있를지 모르겠다. 정성을 들이니 잘라지는 금의 오차가 0.5㎝ 이내로 좁혀들어, 이 정도면 실리콘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든다.

유리창을 설치하고 나니 대단히 만족스럽다. 아내과 나는 손바닥을 부딪치며 자축하고 오전 일을 마감하였다.

야생마 사내, 지붕 공사에선 순한 양

오후에는 교회를 다녀온 전동렬씨와 박씨 아저씨가 우리 작업팀에 합세했다. 나와 전동렬씨는 방수시트를 천정에 깔고 그 위에 아스팔트 싱글을 덮어 지붕을 완성하는 일을 맡았다.

전동렬씨는 아스팔트싱글 시공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 야생마 같던 전동렬씨도 모르는 일 앞에서는 순한 양같이 나의 지시에 잘 따른다. 절반 정도 시공이 되어가자 요령을 터득한 전동렬씨는 본색대로 콩치고 팥치고 다한다. 나는 다시 보조로 전락되었다. 그래도 지붕공사 동안에는 전동렬씨로부터 기분 좋게 스승 대접을 받았다.

우리가 지붕공사를 하는 동안 아내와 박씨 아저씨는 목욕탕 안에 편백나무 루바로 둘러대는 인테리어 공사를 하였다.

용꼬리보다 닭머리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목욕탕 내부공사의 팀장이 되더니 아내는 전동공구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 슬라이딩쏘를 거침없이 다루고 타카를 사용하여 루바의 겹치는 부분에 표나지 않도록 섬세한 못질을 능수능란하게 하면서 작업을 한다.

지붕일을 마감하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 마감 상태를 보니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아있어 내가 한것보다 더 매끄러운 느낌이다. 아내는 얼마나 신이 났는지 이마에 송글송글한 땀방울이 맺혔다. 너무 서두르고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안전에 소홀해지기 쉽다. 슬라이딩쏘의 안전 조작법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휴식 시간을 가졌다.

아스팔트싱글작업 전동렬씨와 지붕에 아스팔트싱글을 깔다가 5분간 휴식하고 있다.
▲ 아스팔트싱글작업 전동렬씨와 지붕에 아스팔트싱글을 깔다가 5분간 휴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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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의 작업팀 박씨아저씨와 전동렬씨가 도와주러 오면서 우리 작업팀은 2조가 되었다.
▲ 2조의 작업팀 박씨아저씨와 전동렬씨가 도와주러 오면서 우리 작업팀은 2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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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이 끝났으니, 삶은 피조개에 소주 한잔... 캬~

앞으로 우리에게 허용된 작업시간은 2~3시간 정도. 야간 작업은 위험하고 또 일의 질이 아무래도 거칠어진다. 내일 새벽에 대전으로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오늘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정하는 게 수순이다. 화장실 공사는 뒤로 미루기로 했다. 아내와 박씨 아저씨는 목욕탕 내부 인테리어를 위한 루바작업을 일단락하기로 하고, 나와 전동렬씨는 외부 벽면의 사이딩 작업을 끝내기로 하였다.

그런 다음 편백나무 욕조를 목욕탕 안에 넣고 하수도 연결까지를 오늘의 공정으로 잡았다. 벽면 사이딩 작업도 전동렬씨가 한번도 안 해본 일이다. 전동렬씨가 요령을 터득할 때까지만 스승이 될 뿐 그 뒤에는 다시 주객이 전도될 것을 알기 때문에 엄격한 스승보다는 자상한 스승이 되기로 작정했다.

전동렬씨는 이웃의 일을 도와 준다는 긍지를 가진데다  새로운 기술과 공구를 사용해볼 기회를 얻은지라 진지하면서 정성스레 작업을 한다. 벽체 사이딩 작업 때에도 전동렬씨는 비교적 조용하고 다소곳한 학생이었다.

서로 돕고 열심히 일을 하다보니 오후 5시 경에는 목욕탕 내부의 편백루바 마감과 외부 벽체 앞면과 뒷면의 사이딩 작업이 끝났다. 이제 편백욕조를 목욕탕에 옮기고 하수구에 연결하면 오늘의 예정 작업은 모두 끝나게 된다. 다시 힘이 장사인 전동렬씨가 전면에 나선다.

모두 그의 지시에 따라 좁은 공간에 욕조를 설치하고 하수구를 연결한다. 욕조의 폭이 90㎝이고 목욕탕의 내부의 길이가 120㎝이니 욕조를 집어넣고 나니 남은 폭이 30㎝ 정도이다. 이 폭을 이용하여  욕조의 배수물을 하수구에 연결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박씨아저씨가 겨우 일을 끝냈다.

오늘 일이 끝났으니 서로 칭찬과 위로의 자리이다. 아내가 전동렬씨가 구례장에서 사온 피조개를 살짝 삶아 내오니 베고픈 상황이라 침이 절로 넘어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애들 주먹만한 피조개를 한 입에 씹으면서 소주 한 잔을 걸치는 맛은 별미 중 별미였다. 언젠가 나도 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기꺼히 달려가야겠다. 시골의 품앗이가 이런것인가 싶다.

피조개 전동렬씨가 구례장에가서 사온 피조개. 건강에 좋다고 전동렬씨가 자랑하던 얘들 주먹만한 조개이다.
▲ 피조개 전동렬씨가 구례장에가서 사온 피조개. 건강에 좋다고 전동렬씨가 자랑하던 얘들 주먹만한 조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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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작업을 마치고 거칠고 보잘 것 없는 음식이지만 고된작업 뒷끝에는 모든것이 꿀맛이다. 행복이 별건가?
▲ 고된작업을 마치고 거칠고 보잘 것 없는 음식이지만 고된작업 뒷끝에는 모든것이 꿀맛이다. 행복이 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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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일 저녁이다. 시랑헌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지리산 온천 목욕탕이 있다. 그러나 아직은 미완성이라도 오늘 처음 자리잡은 소박한 편백욕조에서 목욕하는 멋을 부리고 싶은 생각이다. 부동정에서 나오는 차가운 물을 받고 전기로 물을 데우는 전열기, 일명 돼지코를 욕조에 연결하였다.

지붕이 만들어졌다고 하나 마감이 덜된 틈새로 북풍한설이 몰아쳐 물을 다시 식혀버리니 두 시간이 지나도 욕조의 물은 미적지근하다.

3시간 가까히 기다려서 겨우 그렇게도 바랬던 편백나무 욕조에 들어 앉았다. 그러나 외풍이 너무 차가워 차분히 즐길만한 분위기가 못된다. 3시간을 기다렸건만 30 분만에 목욕탕을 나섰다. 다시 보니 하수구로 빠져나갈 물이 마당으로 넘쳐흐르고 있다. 시공이 잘못된 것이다.

아직 목욕탕 잔일도 많이 남았고 화장실도 변기 설치부터 해야할 일이 많다. 지금까지 나와아내는 목욕탕과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3차례 시랑헌에 왔고 나머지 잔일을 끝내려면 몇번이나 더 와야할지도 모른다. 마당으로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동안 쌓인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인터넷에서 500ℓ 용량 전기온수기를 구입하고 배관시공을 시공업자들에게 맡기더라도 200만원이면 족하니 그렇게 하자"는 나의 주장과 "본 집이라면 몰라도 한달에 한 두번 오는 시랑헌에 더 이상 돈을 쓸 수 없다"는 아내의 의견이 상충되어 제법 험한 분위기와 함께, 2009년 1월 1일 밤은 깊어간다.

덧붙이는 글 | 서툴고 시행착오의 연속이지만 처음부터 배우겠다는 각오로 즐겁게 목욕탕을 만들어 갑니다만 너무 모르는 미지의 세계인지라 때론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태그:#편백나무,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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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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