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님께.
제가 박 회장님의 근황을 오랜만에 접한 건 지난해 11월, 보성의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식에서의 모습입니다. 팔순 노구에도 뜻 깊은 자리에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하신 모습, 참 좋아보였습니다.
누가 뭐래도 박 회장님을 기억하는 건 영일만 모래벌판에서 대역사를 일궈낸 오늘날 포스코 신화의 산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웠던 시절, 분단과 전쟁의 화마 속에서 뚝심과 집념 하나로 일궈 온 포스코를 통해 은근히 우리 민족의 힘찬 고동소리와 맥박이 느껴졌던 것은 저만의 감상이었을까요. 돌아보면 그 만큼 고단한 민족사였고, 그 속에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 또한 배고픔과 눈물의 시간이었습니다.
박 회장님, 어제(7일) 저녁 본의 아니게 무례한 점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예정에 없이 불쑥 개인 사무실을 찾아뵌 것이 애초 옳았던 것은 아니지요.
오죽했으면 야음이 깔린 시각에 그 낯선 곳을 찾아 들었겠습니까. 새벽 5시에 나서 광주에서 올라오신 이금주 회장(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자유족회)님은 올해 나이 꼭 90세십니다. 전남 완도에서, 경남 거창에서, 부산에서 참석하신 70객, 80객 노인들이 오직했으면 그 시각 회장님을 뵙겠다고 휘청거리는 발걸음을 옮겼겠습니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250명의 일제 전쟁 피해자들이 2006년부터 포스코를 상대로 위자료 재판을 진행중입니다.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대일청구권자금을 가져다 쓴 것도 모자라, 전범기업 신일본제철과 기술제휴를 맺음으로 인해 피해자들에게 이중의 정신적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에 대해 원고당 100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해 달라는 소송입니다.
"조상들의 피의 대가를 한 푼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 하나로 뭉친 임직원들은…."
바로 포스코 홈페이지에 있는 첫 문구입니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포스코 기둥 하나, 주춧돌 하나 하나에는 바로 일제 강점기 시절 징용 당해 검은 막장에서, 이역만리 전장에서 이름 없이 숨져간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 그리고 고통어린 삶이 녹아 있습니다.
포스코가 어떻게 해서 설립된 기업입니까? 일제 피해자들의 피와 땀을 빼 놓고서 결코 오늘의 포스코 역사를 말할 수 없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포스코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제공된 대일 청구권 유·무상 자금 중 단위 사업 기준으로 가장 많은 당시 1억1948만불을 사용한 기업입니다. 그 돈은 조상들의 피의 대가인 만큼, 마땅히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었지요.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언젠가 포스코는 이자까지 더 해 3조8천억원을 이미 정부에 다 갚았다고 밝히더군요. 그런데 그것만으로 도리를 다했다고 할 순 없겠지요. 정작 피해자들에 한 푼도 돌려준 적은 없지 않습니까?
아쉽게도 포스코는 민족기업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지금까지 일제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만큼은 눈을 감아왔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포스코는 일제 침략 전쟁에 참여한 대표적인 전범(戰犯)기업 신일본제철과도 거리낌 없이 손을 맞잡았습니다.
신일본제철은 징용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끌고 가 끝내 목숨까지 앗아가 놓고 아직까지 단 한마디 사과 한번 없는 기업입니다. 팔순의 어르신들이 몇 년째 재판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눈 하나 깜짝하고 있지 않습니다.
포스코는 그런 신일본제철의 대주주(2006년 신일본제철의 지분 3.32% 보유)로 참여하고 있지요? 대주주라는 입장에서 신일본제철이 우리 일제 피해자들한테 뒤늦게나마 도의적 태도를 다해 줄 것을 주문했지만 포스코는 이런 역할마저도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어디 그 뿐입니까. 포스코는 지난해 4월경 일본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대규모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광고비로만 1억 4천여만원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자선 콘서트까지 열면서, 조상들의 피의 대가로 세웠다는 민족기업 포스코는 우리 피해자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했는지요?
올해로 해방 64년. 그러나 조국은 해방됐는지 몰라도 일제 피해자들은 아직 해방을 맞지 않았습니다. 노구의 몸을 이끌고 현해탄을 넘어 십 수년째 재판을 해 왔지만, 재판만 하면 번번이 패소입니다. 올해 90세 되신 이금주 회장님은 지금까지 7가지 재판에 '기각'만 17번을 당했답니다. 바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때문입니다.
일본으로부터도 내팽개쳐지고, 대한민국 땅에서도 찬밥 취급 받은 국제미아 신세가 다름 아닌 일제 피해자들의 모습입니다.
화제를 바꿔 엊그제 "독도는 일본의 부속도서가 아니다"라는 1951년 당시 일본 법령이 새로 발견돼 떠들썩했던 사실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법령을 찾아 낸 사람들은 조선일보도 담당 변호사도 정부기관도 아닌, 다름 아닌 일제 피해자와 뜻있는 재일 동포들이란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1965년 당시 일본측 한일회담 문서 공개 소송을 하는 과정에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쐐기를 박는 문제의 그 법령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 일제 피해자들이 진정한 애국자 아닙니까?
독도를 놓고 서로 '내 땅이네', '아니, 내 땅이네'하고 있는데 한낱 우스운 짓에 불과합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만 800여만명입니다. 그중 군 위안부 할머니만 20만명, 행방불명자만 30~40여만명에 이릅니다. 침략 전쟁의 산 증인들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생생히 살아있는데 감히 일본이 독도를 놓고 왈가왈부 할 수 있겠습니까?.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을 되찾아주는 것이 어쩌면 독도를 지키는 가장 유력한 무기인 것이지요.
박 회장님, 어제는 서울고등법원 포스코 재판 2차 조정이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원고들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240여명의 원고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법적 판단을 떠나 포스코가 일제 피해자의 눈물로 태어난 기업이니만큼 뒤늦게라도 일제 피해자들을 위해 사회적 책임 이행을 다해달라는 얘기입니다.
그동안 충분히 의사를 전달한 터라, 어제는 포스코가 어느 정도 진전된 안을 가지고 올 걸로 기대했었지요. 그런데 포스코측 관계자는 내심 환영 성명서까지 준비해 둔 원고들을 앞에 두고 "그동안 소송 내용에 대해서 이사회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아니 재판이 벌써 몇 년째입니까? 그런데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아직까지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얘기입니까?. 얼마나 무성의하게 느껴졌으면 보다 못한 담당 재판장이 '강제 조정'까지 언급했겠습니까?
일제피해자들은 지금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800만명 중에 막상 진상규명위원회에 신고를 접수한 숫자는 23만여명에 불과합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여명을 달리하셨고, 살아계신 분들일지라도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민족사의 굴곡을 바로잡고 민족기업으로 출발한 포스코의 설립정신과도 관련된 중차대한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포스코는 기껏 노인네들의 투정이나 괜한 시빗거리로 취급한 것인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제 일의 연유는 그렇습니다. 관계 담당자가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고 검토할 생각도 아예 없다고 하니, 참다못한 피해자들이 ‘그러면 우리가 직접 알리겠다’고 해서 발생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더군요. 박 회장님 사무실에 문서 한 장 전달하고 가겠다는 것까지 완강히 막아나서는 바람에, 90세 되는 중노인이 밤 10시가 되도록 문 밖에 나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4기 말기 암 환자로 이미 한계 여명을 통보받은 광주의 정재영 어르신은 저녁도 굶은 채 로비에서 약봉지를 입에 털어 넣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70대 노인 네 분은 "이대로는 발길을 돌릴 수 없다"며 끝내 복도에서 꼬박 날을 새고 말았습니다.
돈 몇 푼 때문이 아닙니다. 이금주 회장님은 재판 때문에 현해탄을 넘어 다닌 것만 꼭 70번입니다. 또 한분은 우키시마마루호 재판으로 13년을 보낸 분도 있습니다. 남편과 아버지의 무고한 죽음이 억울해서이지, 그동안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지금에 와서 돈 몇 푼 받자고 이 짓 하고 있겠습니까?
박 회장님, 포스코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100년 한일간의 역사가 바뀌게 됩니다. 일본정부와 신일본제철, 미쯔비시와 같은 전범기업들을 늦게나마 화해의 자리에 끌어내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먼저 그 선례를 남겨야 됩니다. 그리고 결자해지 차원에서 포스코가 그 단초를 열어줘야 합니다. 우리부터 제 동포를 외면하고 내치고서야, 어떻게 그들에게 인권과 평화의 대열에 동참을 호소할 수 있겠습니까?
박 회장님, 내년이면 일제에 강제병합 된 지 꼭 100년입니다. 일제 피해자들의 고통을 우리부터 보듬는 것이 바로 독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오욕의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의 열쇠는 지금 포스코가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얽힌 고리를 푸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진정 민족기업으로서 포스코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박 회장님, 언제 기회가 되면 남도를 다시 한 번 방문해 주시지요. 어머니 젖가슴 같은 황톳길을 찬찬히 돌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세월은 무엇이고, 역사는 무엇이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해방 이후 혹독한 공간을 헤쳐 온 저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지난해 11월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식 자리에서의 말씀, 박 회장님을 아는 많은 국민들에게는 아직도 각별한 의미로 남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국언 기자는 '일제피해자공제조합'이 발행하는 '일제피해자 신문' 편집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