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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는 사람은 초조, 사는 사람은 느긋

설 대목을 보름 남짓 앞둔 8일 충남 논산 가축시장에는 살소(고기용으로 작업할 소) 출하가 급증했다. 새벽 5시에 가축시장 문이 열리자마자 소차에 싣고온 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쏟져 나왔다.

이날 논산 우시장에 출하된 소는 살소가 대략 270마리, 송아지가 100마리 가량 됐다.  논산 축협 양승한 중개인에 의하면 이날 출하 물량은 평소보다 40% 정도 많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송아지 출하량은 평소보다 약간 줄어들었다고.

이날 소 출하량을 보고 중개인들도 의외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설 대목도 아닌데 출하량이 이렇게 급증한 것은 아무래도 사료값이 올라 농가에서 소를 가능하면 빨리 내다 팔고 싶어서였을 것이라는 게 양승한 중개사의 분석이다.

 큰소를 흥정하고 있다
 큰소를 흥정하고 있다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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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하물량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소를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느긋하다. 여기저기서 중계사가 흥정을 붙여보지만 팔려고 나온 사람은 초조한 반면 사는 사람은 좋은 소만 골라서 흥정을 하려 한다. 따라서 이날 소값은 전장에 비해 내린 가격으로 흥정이 이루어졌다.

621kg짜리 황소(비거세)를 생체 kg단가로 5700원에 판 설동기(67·부여군)씨는 매우 서운한듯 입맛을 쩝쩝 다신다. 그래 봤자 24개월 넘게 기른 소가 353만원에 불과하다. 2년 전 송아지값 시세가 200만원에서 250만원 가량 되었으니 그동안 사료값, 인건비 등 비용을 합하면 대략 마리당 100만원 가까이 손해다.

설동기(67)씨 소를 팔고 나도 기쁘지가 않다
▲ 설동기(67)씨 소를 팔고 나도 기쁘지가 않다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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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세소에 비해 그래도 가격이 괜찮은 암소는 이날 생체 kg당 7700원에서 8000원에 거래되었다. 이 가격은 지난 장 시세보다 300~400원 가량 내린 가격이다. 그러니까 대략 마리당 18만원에서 24만원 가량 낮아졌다. 이 정도의 가격형성도 작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결정될 당시에 비해 상당히 회복된 가격이라고 한다.

"우리 축산농가들은 촛불집회 덕을 많이 본 거유"

 무게를 달기 위해 나가는 소
 무게를 달기 위해 나가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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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매가 끝난 소를 상차하고 있다
 매매가 끝난 소를 상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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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축산농가들은 작년 촛불집회 덕을 많이 본 거유. 촛불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전국민들한테 알리고, 대신 한우의 안전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시유. 촛불이 아니었으면 미국산 쇠고기 추가협상이 있었겠시유? 또 촛불 때문에 그나마 원산지 표시 단속이 강화되었으니 촛불한테 고맙지유." 

김상신(63·충남 천안)씨의 말이다. 그러면서 "그때 조금만 더 밀어붙였으면…"하는 아쉬움을 내비친다. 그 말을 받아 "더 밀어붙였으면 뭐예요?" 했더니 "거 있잖아유"하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운다.

송아지 코너에 가봤더니 송아지 역시 매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암송아지가 160만원, 숫송아지가 180만원 가량에 매매되고 있었다.

 송아지를 흥정하고 있다.
 송아지를 흥정하고 있다.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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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사육전망이 좋을 때는 암송아지 가격이 숫송아지에 비해 훨씬 비싼데 지금은 한우사육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암송아지 가격이 숫송아지에 비해 싸다. 상황이 안 좋으니, 사육두수를 늘리기보단 빨리 사육해 자금 회전을 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선 암소보다 숫소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송아지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송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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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한 지 한 시간 반 가량이 되자 팔린 소는 거의 다 빠져 나갔고 팔리지 않은 소들만 남아있다. 간간이 흥정은 오가지만 사는 사람 위주의 흥정이다. 한쪽에서 중개사와 축주 사이에 일방적인 흥정 아닌 흥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부여군 세도면에서 첫배를 난 암소 2마리를 가지고 나온 윤창선(77)씨는 두마리에 600만원은 받아야 한다면서 중개사의 돈을 뿌리치고 있다. 이에 중개사는 "영감님 이 소 도로 가져갈거유? 사료값 자꾸 올라가는디 도로 가져가 봤자유. 도로 싣고 가려면 또 운반비 들어야 하고, 가져가 봤자 이놈들 먹지도 않을 테고 웬만 하면 팔고 가세유"라고 한다.

"그래도 송아지 때 들인 값은 받아야 하는 것 아니여"

윤창선(77)씨 송아지값도 안 쳐 주는 큰소값에 침묵하는 축산농민
▲ 윤창선(77)씨 송아지값도 안 쳐 주는 큰소값에 침묵하는 축산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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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할말을 잃어 버린 축산농민
 그저 할말을 잃어 버린 축산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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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선 할아버지는 대단히 억울한듯 먼 산만 바라보면서 입을 꾹 다문다. 아무리 팔려고 가지고 왔지만, 그래도 송아지 때 들인 값은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표정이다. 할아버지가 가지고 나온 암소는 첫배를 난 소로 조금 더 먹여서 새끼를 한배 더 내고 비육시켜서 팔거나 아니면 바로 비육시켜서 팔면 이보다 훨씬 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사료값을 더 감당하기도 어렵고, 기력이 달려서 팔려고 나왔는데 2년 넘게 먹인 이 소를 송아지 때 값만도 안 주니 억울할 수밖에.

윤창선씨가 가지고 나온 소 송아지 값도 안 쳐 주는 큰소 2마리
▲ 윤창선씨가 가지고 나온 소 송아지 값도 안 쳐 주는 큰소 2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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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지로 건네주는 돈을 외면하는 축산농민
 억지로 건네주는 돈을 외면하는 축산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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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버티다 버티다 끝내 590만원에 마지못해 팔면서도 아쉽고 억울해서 가지고 온 소에 눈길을 준다. 돈을 받아 세면서도 자꾸만 소를 쳐다본다. 마지막으로 돈을 안주머니에 넣으면서는 거의 울먹이듯 한다.

 돈을 받고 나서도 억울해서 소를 자꾸 쳐다보는 할아버지
 돈을 받고 나서도 억울해서 소를 자꾸 쳐다보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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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을 세면서도 억울하다
 돈을 세면서도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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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돈을 주머니에 넣으면서도 억울하다
 마지막으로 돈을 주머니에 넣으면서도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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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아지자 파장이다. 오늘 팔리지 않은 소들만 하얀 입김을 뿜으면서 큰 소리로 울어댄다. 소들도 오늘의 현실이 슬퍼서일까? 어쩌면 오늘 여기 사람들은 저 소와 함께 속으로 울고 있는지 모른다.

 소도 사람도 하얀 입김을 내뿜는 추운 아침이다
 소도 사람도 하얀 입김을 내뿜는 추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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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산농민은 이른 아침부터 시름이 많다
 축산농민은 이른 아침부터 시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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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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