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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김광석, <은하수> 3집에서 클래식 선율을 들려준다
 기타리스트 김광석, <은하수> 3집에서 클래식 선율을 들려준다
ⓒ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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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김광석(54)의 창작연주앨범 3집 <은하수> 발매기념 콘서트가 7일 서울 서대문 문화일보 홀에서 열렸다. 지리산에서 칩거하다시피 한 생태가수 한치영 형과 함께 공연 관람을 마치고 나와 소주잔을 기울였다. 공연장의 기타 소리가 진한 여운으로 울린다.

김광석의 지지자이자 오랜 음악 친구인 형에게 물었다.

"김광석 선생이 걸어온 음악의 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음악계 안팎에서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 또는 국보급 기타 연주자라고도 하는 데 나는 그를 끊임없는 정진으로 음악세계를 완성해가는 '구도자'(求道者)라고 봅니다."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 혹은 외로운 구도자

조명이 비춰지자 흰 상하의 차림의 김광석이 무대에 들어선다. 걷는 걸음이 부자유스럽다. 지난여름 큰 병을 앓았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한 그는 20대 중반부터 스튜디오 세션맨(연주자)으로 활동했고, 조용필, 김현식 등 국내 유명 뮤지션의 앨범제작에 참여하는 등 국내 최고의 세션맨으로 각광을 받았다.

2집 앨범 <비밀>의 표지.
 2집 앨범 <비밀>의 표지.
ⓒ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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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연주한 곡이 10만 곡이 넘는다고 했다. 하루에 앨범 두 장 분량을 연주하는 강행군을 했던 그의 몸은 주기적으로 과부하가 걸렸다. 쓰러졌다 일어나고 또, 일어났다 쓰러지고, 거듭 일어섰다. 세션은 제품 생산의 공정이 아니다. 세션맨은 품을 파는 노역자가 아니다. 혼신의 연주 뒤엔 몸살이 찾아왔다.

연주가 시작됐다. 평상시 무표정한 그이지만 연주가 시작되면 예배를 집전하는 사제처럼 경건한 표정이다. 그의 분신인 기타는 40년 외길의 구도자를 만나는 순간 명기(名器)가 된다. 묵상하듯 눈을 감고 연주를 시작한 그의 손놀림은 여섯 줄 사위에서 강물처럼 흐르기도 하고, 은은한 별을 수놓기도 한다.

몽골에서 작곡했다는 '은하수'가 별빛 헤는 밤의 초원으로 인도한다. 손가락이 현을 짚으면서 산발한 영혼들을 안식시킨다. 초원의 별빛처럼 맑은 선율, 별은 세려면 마음의 풍파를 잠재워야 한다. 영혼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전광석화의 속도전은 필요 없다. 밤의 속살까지 보이는 밤하늘에 펼쳐진 대자연, 소원을 잃어버린 폐허의 영혼 위로 유성이 떨어진다.

"아버님께서는 의사나 법관이 안 되면 잘못되는지 알고 기타 연주를 못하게 했습니다. 공무원을 바라기도 했는데 물론 좋은 직업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고생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수라장 정권과 정치판을 겨냥) 높은 자리는 욕먹는 자리인데 뭐가 좋다고 욕먹으면서까지 해대는지 이해되질 않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그가 말했다. 부유와 권력, 안락은 안중에 없다. 부모의 반대에 부딪쳐 매 맞고, 쫓겨나면서도 선택한 기타리스트의 길, 외롭고 고달픈 길을 자청했으니 감수해야 한다. 무표정한 그가 속으로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외롭고 힘들지만 행복한 길'이라고, 다만 '웬만한 경지에 오를 법도 한데 기타를 대할 때마다 미숙한 솜씨에 전전긍긍하기 일쑤'라고 기타리스트의 길의 어려움을 겸손히 고백한다. 깨우침의 경지에 접어든 노스님이 화두를 던지듯 그의 음악에서 테크닉은 사라지고 담백한 현의 소리만 묻어난다.

그는 토탈리즘을 추구한다. 일렉트릭, 어쿠스틱, 비타(비파와 기타를 합친 악기로 7개의 현에서 3줄은 가야금, 4줄은 거문고) 등의 악기와 하드록, 블루스, 퓨전, 뉴에이지까지 장르를 넘나든다. 다양한 게스트와 연주에서 그의 자유스러움을 읽을 수 있다. 명인 하용부 선생은 그의 비타 연주에 맞춰 춤사위를 보여주었고, 공연 끝자락에서 들려준 트로트 '봄날은 간다'와 '애수의 소야곡' 그리고 민중 애국가 '아리랑'은 또 다른 맛이다. 황금 옷을 칭칭 감아도 천한 자들이 있고, 베잠방이를 걸쳐 입어도 격조 있는 이가 있다.

흥행에 참패한 구도자를 위하여

외롭되 외롭지 않은 구도자 김광석
 외롭되 외롭지 않은 구도자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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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박한 자본주의 행성에 불시착한 유성이다. 씹다 버릴 껌처럼 달콤하거나 아니면 배설의 잡동사니로 무장한 엔터테인먼트만이 살아남는 시장에서 그는 시장의 비위를 거스르는 음악을 들고 나왔다가 완패했다. 아파트를 팔아 제작한 첫 앨범 <더 컨페션>(95년, The Confession)과 4장의 CD에 43곡을 담은 두 번째 앨범 <비밀>(2003년)은 흥행에 참패했다.

젊은 시절, 국내 최고의 밴드였던 '히-파이브(He5)'의 멤버로 참여하면서 90년대 중반까지 국내 최고의 일렉트릭 기타리스트로 명성을 떨쳤던 그가 격정을 내려놓았다. 클래식 연주로 수놓은 세 번째 앨범 <은하수>에선 여행에서 돌아온 구도자의 득음(得音)을 들려준다. '아름다운 사람', '그리움', '비애', '집시', '가을' 등 수록된 14곡이 그렇다. 싱어송라이터 하림과 한국예술종합예술학교 예술전문사로 재학 중인 고명진과 함께 카페에서 녹음한 마지막 곡 '행복'은 가볍고 경쾌하다. 

세 번째 앨범 또한 참패할지도 모른다. 그의 실패는 불운이 아니라 운명 같은 건지도 모른다. 시장은 립 서비스를 원한다. 비위를 맞추지 않는 자에겐 시장의 한 귀퉁이도 내주지 않는다. 40년 외길을 걸어온 그가 시장과 담합해 발가벗고 춤출 수 있을까? 담백한 그의 성분으론 불가능에 가까워보인다. 다만, 이렇게 자백했다.

"속절없이 시간이라는 수레에 실려 가다보니 나도 감상적이 되는 모양이다. 기타 연주도 그렇게 되어버렸다. 이번 3집 음반은 음악의 기교나 깊이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단순하고 순수해지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의 다정다감한 친구 같고, 고향 같은 음악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면 하고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구도의 길을 외롭다. 예수의 길이 그러했다. 만민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경전을 왜곡하면서 혹세무민으로 성공을 거둔 물신(物神), 그 교세가 하늘을 찌르는 말세다. 멸망당하는 줄 모르고 광란의 찬양을 부르는 자들이 시장을 장악했다. 그들이 우롱한다. '구도자? 니 꼬락서니나 봐봐!'. 당시도 그랬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에게 '니가 구세주면 뛰어내려 와 봐!'라고 조롱했다. 그러니 뜻과 마음을 합한 지지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수밖에 없다.

외롭지만 반드시 외롭지만 않은 구도자 김광석에겐 지지자들이 있다.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는 즉, 영생의 소리에 합장하며 경배하는 이들이다. 전위예술가 무세중, 녹색병원장 양길승, 가수 김태곤, 오카리나 연주자 한태주 등이 공연을 관람했다. 경배의 작은 손들 위에 미약하나마 나의 작은 손을 보탠다.


태그:#김광석, #기타리스트, #앨범, #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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