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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드라마 KBS1 일일연속극 <너는 내 운명>이 드디어 지난 9일, 178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작년 5월 5일 첫 회 방영을 시작으로 약 9개월 동안의 긴 여정을 마무리 지은 셈이다. 종영한 <너는 내 운명>이 남긴 발자취는 화려하다. 매회 30~40% 대의 시청률로 13주 연속 주간 시청률 1위라는 기염을 토하면서 KBS 일일드라마 불패신화를 이어갔다. <별난남자 별난여자> <열아홉 순정> <하늘만큼 땅만큼> <미우나 고우나> 등으로 이어지는 KBS 일일드라마의 독주시대에 또 한 차례 방점을 찍은 것이다.

 

 <너는 내 운명>은 입양과 장기기증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고 평범한 가정의 일상을 소개하여 이 시대의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찾는다는 의도로 기획됐다. 혈연중심주의의 영향 속에 영아수출국이란 부끄러운 또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죽은 친딸의 각막을 이식받은 생면부지 타인을 자식으로 입양해 친자식과 다름없는 사랑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대진(장용 분)·영숙(정애리 분) 부부의 모습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로 하여금 훈훈한 감동을 느끼게 만들었다.

 

 또한 극중 앞을 볼 수 없었던 시각장애인 새벽(윤아 분)이 타인의 각막을 이식받아 새 삶을 되찾고, 백혈병이 걸렸던 시어머니 민정(양금석 분)이 새벽의 골수를 이식받아 되살아나는 모습을 그려 장기기증으로 인해 꺼져가던 생명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너는 내 운명>의 이런 화려한 성공(?) 뒤에는 예의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병폐들이 득실거렸다. 방영 내내 '막장드라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너는 내 운명>은 소위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대표격이었다. 개연성 없는 설정, 작위적인 갈등과 사건의 연속, 상식의 한계를 넘어선 캐릭터들의 향연 등으로 시청자의 공감을 사는데 실패했다. 극중 새벽의 시어머니 민정의 새벽에 대한 시집살이와 극 후반부의 백혈병 설정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비판을 받았던 부분이다.

 

 민정의 새벽에 대한 시집살이는 단순한 수준을 넘어 며느리에 대한 증오에 가까웠다. 뜬금없이 배추 100포기를 사와 새벽에게 하루 만에 절이라고 주문하는가 하면, 아들·며느리의 혼인신고 서류를 대신 제출하겠다고 한 뒤 찢어버리는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호세가 새벽과 결혼한 뒤에도 새벽에게 끊임없이 이혼을 종용하는가 하면, 교통사고를 당한 뒤에 거짓으로 실어증에 걸린 행세를 한다. 모든 것은 아들 부부의 이혼을 위해서였다.

 

 결국 이런 민정의 태도를 참지 못한 호세가 새벽과 함께 미국으로 떠날 것을 결심한 순간, 느닷없이 민정이 백혈병이 걸리고 만다. 이전까지 아무런 예고도 없다 덜컥 백혈병에 걸리고 만 민정, 이것만으로도 시청자는 짜증이 나는데 여기서 민정의 태도는 어이를 상실케 하기에 충분했다. 민정은 자신의 백혈병을 빌미로 호세에게 새벽과 헤어지라고 종용했고, 호세는 눈물을 머금고 새벽에게 이별을 고한다. 가히 막장의 연속이다.

 

 그런데 <너는 내 운명>의 막장 스토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극 후반에 등장한 새벽의 친모 미옥(유혜리 분) 역시 민정과 똑같은 백혈병에 걸리고 만다. 시어머니와 친모 둘 모두 동시에 백혈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거기에 새벽과 친모 미옥의 골수도 일치하게 만들어 새벽이 과연 누구에게 골수를 기증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미옥과 민정 사이에서 고민하던 새벽은 결국 민정에게 골수를 이식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민정은 살아났고, 미옥은 끝내 눈을 감았다.

 

 민정의 새벽에 대한 증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새벽이 자신에게 골수를 이식해 병에서 나았음에도 민정은 새벽이 자신을 살렸다는 사실에 불같이 화를 낸다. 이쯤 되면 거의 광기에 가깝다. 그러다 민정은 새벽이 미옥 대신 자신을 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지금까지의 증오와 미움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화해 무드로 돌아선다. 이처럼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병폐인 불륜, 출생의 비밀, 불치병 가운데 불륜을 제외한 다른 두 가지가 적절하게 섞여 막장드라마가 된 <너는 내 운명>의 상식 밖의 이야기 전개는 대중과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아야 했다.

 

 <너는 내 운명>의 또 다른 문제점은 바로 잘못된 의학정보의 전달이다. 친형제지간 사이에도 골수가 일치해 기증할 수 있는 확률은 25%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혈연지간이 아닌 타인의 경우 그 확률은 급격하게 줄어 겨우 2만5000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극중에선 그 희박한 확률이 너무나도 손쉽게 들어맞는다. 민정과 새벽의 화해를 위해 백혈병이란 장치를 이용한 이 황당한 설정에 시청자뿐 만이 아니라 '한국백혈병환우회'에서도 '소설같은 이야기'라며 비판했다.

 

한 가지 더, 극 초반 새벽은 자신에게 각막을 이식해준 나영의 가족에게 감사인사를 하러 찾아간다. 그런데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 27조 비밀의 유지 조항’을 보면 범죄수사나 재판관련 외에는 장기기증자나 이식대상자 등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행위를 일체 금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도 새벽은 자신에게 각막을 이식해준 사람을 알고 있다. 이 부분 역시 상식에서 벗어난 설정으로 비난받았다.

 

 주연배우들의 연기력 논란도 극이 진행되는 동안 끊이지 않았다. KBS 일일드라마는 주연에 신인배우를 과감하게 기용하기로 유명하다. <별난남자 별난여자>의 고주원·김아중, <열아홉 순정>의 구혜선·서지석, <하늘만큼 땅만큼>의 박해진·한효주, <미우나 고우나>의 김지석·유인영 등 KBS 일일드라마는 명실상부 신인연기자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너는 내 운명>의 박재정·윤아 역시 첫 주연을 맡은 신인연기자들이었다. 모델로 활동했던 박재정과 인기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멤버인 윤아의 연기 도전은 그러나 순탄치 않았다.

 

호세 역의 박재정은 누리꾼들로부터 '발호세(연기를 발로 한다, 즉 매우 못한다는 뜻)'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고, 그의 어색한 연기 장면을 모은 UCC 동영상이 인터넷상에서 큰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박재정에 가려 눈에 띠게 부각되진 않았지만 새벽 역의 윤아 역시 연기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부정확한 발음, 어색한 몸동작, 불안정한 표정 연기 등, 극에서 가장 비중이 큰 남녀 주연배우의 미숙한 연기는 시청자의 극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회에 이르러 민정은 새벽에 대한 앙금을 풀고, 새벽은 죽은 미옥이 남긴 유산으로 무료각막이식사업을 추진하는 재단을 세우고, 대진과 영숙은 결혼식을 올리는 등 당초 기획의도대로 드라마를 매듭지었다. 그러나 시청자가 기억하는 <너는 내 운명>은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고 입양과 장기기증에 관한 편견을 지우려 노력한 드라마가 아닌, 개연성 없는 억지설정과 작위적인 사건의 남발, 잘못된 정보 전달과 주연배우들의 연기력 논란 등으로 점철된 막장드라마일 것이다.

 


태그:#너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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