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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티 아빠(44)'는 고등학교 1학년 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다. '이티 아빠'는 작년 10월 일제고사를 앞두고 아들의 담임교사로부터 일제고사 응시 여부를 묻는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우선 아들에게 물어봤다. 아들은 "일제고사는 (아이들) 줄세우기"라며 시험 대신 체험학습을 가겠다고 했다. 또 같은 날 일제고사를 보는 딸에게도 시험을 볼 것인지 물었다. 딸은 "그냥 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리고 지난 12월 아들의 담임인 최혜원 길동초 교사가 해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애들 졸업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티 아빠'는 지난 9, 10일 이틀 동안 경기도 가평 두밀수련원에서 열린 '치유와 소통을 위한 고양이 캠프'의 일일교사로도 참가했다. 날이 넘어가도록 잠들 줄 모르는 아이들 덕에 잠은 한 숨도 자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티 아빠'는 "선생님이랑 아이들이랑 이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좋다"고 말했다.

 

"징계 예상했지만 그렇다고 자를 줄이야... 이해 안 된다"

 

'이티 아빠'는 최혜원 교사를 지난 12월에야 처음 만났다. 서울시교육청이 최 교사를 비롯한 7명의 교사들을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했다는 이유로 파면·해임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는 그 전까지만 해도 학교 교육은 아이 엄마에게 맡겨놓는 아빠였다. 그러나 최 교사가 '좋은 교사'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아들이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 걱정이 항상 있었는데 올해 가장 학교에 의욕을 보였다. 최 선생님이 보낸 일제고사 응시 동의서를 받았을 땐 '징계를 받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깨어있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동의서에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메모를 적어보내기도 했다."

 

'이티 아빠'는 "그래서, 더욱 최 선생님이 해임된 것에 대한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정작 그날 6학년 2반에서 일제고사를 보지 않은 학생은 얼마 되지 않는다, 최 선생님은 시험 감독까지 했는데 해임 당했다"며 "아이와 함께 체험학습을 갔던 학부모로서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충격을 받은 '이티 아빠'는 그동안의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판례까지 살펴봤다. 그리고 더욱 분노했다.

 

"성추행범도 있었다. 한 교사는 강간 미수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는데 '억울하다'고 소청심사를 신청했더라. 그런데 단지 일제고사 응시 선택권을 알려줬다는 이유로 자르다니. 체험학습도 전에는 사후결재 받는 게 관례처럼 이어지지 않았냐. 형평성이 없다. 이해가 안 된다."   

 

"아이에게 평생 멍울이 될 사건... 어른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 같다"

 

'이티 아빠'는 최 교사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오히려 이번 징계를 통해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불신만 더 깊어졌다. 그는 "공 교육감은 이미 선거법 위반, 뇌물 수수 등 유력한 범죄 용의자다"며 "지금의 교육정책이나 교과서 수정 등 시끄러운 일들을 볼 때마다 지금 이게 교육이라 볼 수 있냐는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사실 아이들의 성적이 좋은 것을 원하지 않냐"고 물어봤다. '이티 아빠'는 "적어도 초등학교 때까진 다양한 교육을 받고 중학교 때부터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빨리 찾는 게 낫다"며 "지금 세상에 공부 1등하고 서울대 들어가면 성공하나"라고 반문했다.

 

이런 분노는 평범한 자영업자인 그를 '거리'로 이끌었다. '이티 아빠'는 같은 생각을 가진 학부모, 강동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매주 수요일마다 촛불문화제를 열고 교사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이티 아빠'는 이제 중학생이 되는 아들을 걱정했다. "어른한테 공손했던" 아들이 이 일이 일어난 다음부터 어른들을 경시하는 듯한 모습을 가끔씩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범죄자를 잡는다던 경찰이 자신의 선생님을 교실에서 끌어내려 하고, 자신의 선생님보다 높았던 교장 선생님은 정문을 잠그고 자신의 선생님을 못 만나게 하는 상황. 어른인 자신이 직접 그를 봤을 때도 '저런 이가 어른으로 대접받아야 하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이티 아빠'는 "그 모든 상황들로 인해 아이들은 어른들에 대한 신뢰가 깨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아마 다른 학부모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졸업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자신의 선생님이 쫓겨난 일은 분명 아이들에게 상처가 됐다. 그를 치유하려고 이런 캠프까지 열었지만 선생님들이 원래대로 복직되지 않는다면 이 일은 평생 멍울이 될 것 같다. 지금 아이들의 생각이 여물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 경험은 이후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가늠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전에 내가 움직여서 달라진 세상을 아이에게 주고 싶다."

 


태그:#일제고사, #고양이 캠프,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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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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