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한국 보수주의자들이다. 궁금한 것은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을 알고자 하여 이나미씨는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를 썼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자유주의는 쿠무인가를 보고 싶어한다.
이나미는 보수적 정치가들이 외치는 '자유'는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자유이르모 '보수주의'라는 다른 이름을 불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이나미가 규정한 보수주의는 무엇일까"
"보수주의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욕망'이다. 보수주의는, 어느 문인에 의해 아주 적절히 지적된 바와 같이, '이념'이 아니라 '욕망'이다. 즉 사회를 굳건히 떠받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필수적인 신념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욕망'이다." (11쪽)
보수주의가 신념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과 안락함을 잃고 싶지 않은 욕망이 내용의 전부라고 일갈한다. '신념'이 아욕망이라 할 때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보수주의를 갖고 있다. '욕망'으로만 산다면 사회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극복'해야 한다. '자유주의'를 '보수주의'와 동일시하는 한국 사회 보수적 정치가들 논리는 여기서 무너진다.
이나미는 '자유주의'를 이나미는 <브리태니커> 정의한 "봉건제와 절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 평등의 인간상과 합리주의를 계승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재산과 교양을 지표로 하여 빈곤한 계급을 정치과정에서 제외시키고 자산가 계급에 봉사한다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를 동의한다.
그럼 우리나라는 언제쯤 '자유주의가' 들어왔을까? 이나미는 <독립신문>에 주목한다. 유교가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조선시대는 '자유주의적' 성격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독립신문> 대중을 상대로 '자유주의'를 전파했다고 이나미는 주장한다.
"독립신문은 주로 그 동안 유교에 의해 경시되었던 이익 개념과 상업에 대해 재평가하며, 개인의 생명권, 재산권, 자유권과 경젣적 독립을 강조했다."(14쪽)
문제는 <브리태니커>가 말한 자유주의 개념처럼 빈곤한 계급을 정치과정에서 제외시키고, 자산가 계급에 봉사하는 사상이 녹아 있고, 자유주의 개념이 성립되었을 때 서구는 제국주의가 싹트면서 제국주의를 미화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나미는 자유주의를 다시 기억해야하지만 '자유주의'가졌던 특징을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독립신문>은 '자유'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독립신문> 1899년 1월 10일자 '인권자유'에서 "자유라는 것은 우리 마음에 있는 욕심대로 하는 것이 아니요 욕심을 능히 어거하야 좋은 일이면 나의 마음대로 하고 그른 일이면 하지 아니하는 것이 실상 자유의 본질"이라 했다.
<독립신문>이 자유를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유교' 강조하는 '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자유주의 핵심이 이익과 행복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주의인데 아직들은 '자유'를 '옳음' 곧 '의'를 포함하지 않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립신문> '유교' 지배 이데올리기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지만 자유주의 핵심 개념인 '독립'을 "자기 힘과 재주가 있으면 벌어먹고 세상에 자주독립한 백성이 되어 빈부 귀천 간에 사람마다 자기 십상에 자유권을 가지고 있으며"로 규정하고 "양반은 이제 더 이상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걷을 권리가 없다"고 양반을 비판하였다.
이는 <독립신문>이 유교에 경시되었던 이익 개념과 상업에 대한 재평가, 개인의 생명권, 재산권, 자유권을 강조하여 우리나라에 자유주의적 내용들을 도입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의 자유와 독립, 재산권을 강조하는 '자유주의'가 어떻게 '제국주의'와 짝하게 되었을까?
"'인간의 권리'에서 '인간(men)'은 전 인류가 아닌 백인, 그중에서도 남성을 의미했으며 '개인의 자유'에서 '개인'은 우수한 개인을 의미했다. 인간은 자연을, 남성은 여성을, 백인은 흑인을 지배할 권리를 가지며 따라서 인간, 개인은 백인 남성을 의미했다. 이렇게 자유주의와 제국주의는 양립했으며, 시기적으로도 동시대의 산물이었다." (77쪽)
결국 자유주의는 '인간'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성과 백인 우월주의와 적자생존이라는 서구제국주의를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우리가 강하면 약한 나라를 지배할 수 있고, 우리가 약하면 강대국에 지배받을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될 수 있어 일본제국주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동조하는 세력도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다.
나아가 이나미는 한국의 자유주의는 서구 자유주의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민권의 신장이 아닌 민권을 제한하는데 노력했다고 주장한다. 백성과 신민, 인민과 국민 등 여러 가지 민 개념을 그들의 의도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고 한다.
개화파인 윤치호는 "민중은 무식하고 어리석으며 품위 있고 질서 있는 운동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고 했으며 <독립신문>은 "평민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한 정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며"라고 했다.
"개화파는 유교의 전통적인 민 개념을 공유하면서 민을 철지히 불신했다. 그들이 민권을 주장한 이유는 자신들의 개인적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자유주의 사상은 우민관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144쪽)
이렇듯 한국 자유주의는 서구제국주의가 자유주의와 손을 잡았듯이 박영효는 친일인사가 되었고, 민권을 소리높여 주장했던 독립협회는 동학농민전쟁 진압을 위해서 외국군대의 조선 땅 진주를 주장했다.
자유주의를 마냥 외친다고 무조건 좋아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라도 '자유주의'를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자유주의 본질을 안 다면 자유주의가 아닌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것이 이나미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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