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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마산어시장 생선가게 모습, 설날 대목을 앞둔 지금 많은 사람들로 분비고 있다.
▲ 마산어시장 휴일 마산어시장 생선가게 모습, 설날 대목을 앞둔 지금 많은 사람들로 분비고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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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 탓일까. 지난 10일 시장 분위기는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었다. 설 대목을 코앞에 두었지만 그다지 매기가 없다는 것이 시장 상인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시장바닥은 냉랭하기만 하다.

마산어시장, 경남의 최대 수산건어물 시장이다. 평소 입하된 생선이나 각종 해산물은 재고를 기다릴 겨를 없이 내놓기가 바쁘게 게 팔려나가는 곳이다. 그만큼 찾는 사람도 많고, 매장에 전시되는 물량도 많다. 그렇지만 올해는 여느 해처럼 물 좋은 생선들이 제때에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요즘 물 좋은 생선들이 제때에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손님이 뜸한데도 열심히 생선을 다듬고 있는 상인
▲ 생선가게 손님이 뜸한데도 열심히 생선을 다듬고 있는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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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대목에 맞춰 생선 가게는 많은 사람들로 분비고 있다.
▲ 손님들로 분주한 어전 설날대목에 맞춰 생선 가게는 많은 사람들로 분비고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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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인 말에 따르면 예년 이맘때쯤이면 미리 선점해 둔 물건이 모자라 멀리 삼천포나 남해, 여수까지 달려가 예비물량을 확보하려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는 그나마 확보해 둔 물건마저 설 대목 안에 다 팔릴까 걱정이란다. 시장에 손님들의 발길은 북적대지만 가격 흥정만 할 뿐 선뜻 사가는 사람은 드물단다.

"경기가 팍 죽었뿟습니더. 이러갔꼬 무슨 장사를 할낀지 걱정임더. 우리 같은 장사는 설날대목이 한밑천인데, 설날 앞세우고 보름 정도 큰 장사를 못하면 건물 임대료는커녕 당장에 묵고살기도 빠듯합니더. 방송에서는 경기를 부양한다고, 경제를 살린다고 야단을 떨고 있지만 시장분위기는 쪼끔도 살아나지 않았어예. 더구나 서민들 주머니가 얄팍해지다 본께로 경기 탓을 안 하던 제수용 고기도 잘 안 팔립니더."

어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보아도 팔려고 내놓은 물건은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도 정작 물건을 사들고 가는 사람들의 손은 가볍게 보였다. 그만큼 얼어붙은 경기가 서민들의 지갑을 더욱 걸머쥐고 있는 것이다. 시장 경기는 돈이 제때 돌아야 사는데 설날 대목 잡기 위한 상인들의 한숨 소리만 시장 가득하다.

상인들의 한숨 소리만 가득한 시장

아직 설날 제수거리를 마련할 시간이 남아서 그렇다고 생각해도 시장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시장 활어장 마당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싱싱한 횟감을 사가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광어나 우럭, 도다리를 비롯한 날 생선들을 흥정하는 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1㎏ 정도가 1만5천원, 거기다가 해삼 멍게까지 덤으로 썰어준다. 아마 마산어시장에서 경기를 타지 않고 꾸준하게 팔려나가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활어다. 그만큼 마산 사람들이 회를 좋아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전반적으로 매기가 빠듯하지만 그래도 횟집골목은 많은 사람들로 분빈다.
▲ 마산어시장 횟집골목 전반적으로 매기가 빠듯하지만 그래도 횟집골목은 많은 사람들로 분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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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 탓에 생선들이 잘 팔리지 않으나 여전히 횟집골목은 살아 있다.
▲ 마산어시장 횟집골목 경기침체 탓에 생선들이 잘 팔리지 않으나 여전히 횟집골목은 살아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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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어물 가게로 가봤다. 하지만 이곳 역시 생선가게처럼 냉랭하다. 말린 낙지나 명태, 홍합, 오징어 등속이 덩그러니 자리차지만 하고 있다. 하루 매기가 삼십만 원도 안 된단다. 그나마 지속적으로 팔리는 게 있다면 김과 미역을 비롯한 해산물이었다. 겨울철 밑반찬으로써 김이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마른 어포도 잘 팔리는 품목 중의 하나란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대목을 보려는 물건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어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내고 지난 40년 동안 한결같이 장사를 해 온 형제냉동상회 최홍(66, 마산시 오동동)씨가 고기를 다듬고 있다.
▲ 고기를 다듬고 있는 최홍씨 어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내고 지난 40년 동안 한결같이 장사를 해 온 형제냉동상회 최홍(66, 마산시 오동동)씨가 고기를 다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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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 어시장바닥에서 40년 동안 이 장사를 했지만 올해처럼 안 팔리는 때는 없었는기라요. 지난해 같으면 밤을 꼬박 새워가며 생선을 다듬어도 일손이 딸렸는데, 지금은 일손을 돕는 아주머니들도 다 손을 놓았지요. 내 혼자서 설렁설렁 손질해도 간간이 오는 손님을 다 감당해냅니다. 허허, 그렇지만 돈이 안 돼요.

그렇지만 믿는 데는 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변함없이 찾아주는 단골이 있기 때문이지요. 아, 경기가 아무리 어렵더라고 해도 조상 모시는 제수용품을 마련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당장에는 손님이 찾아오지 않지만 내가 먹을 것이라 생각하며 생선 하나 다듬는데도 깨끗이 정성을 다하고 있어요.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세상을 믿고 살아야지요."

하루 종일 추운 날씨에 생물을 만지느라 예순여섯 연세의 최홍씨 손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분은 웃는 얼굴이다.
▲ 형제냉동상회 최홍씨 하루 종일 추운 날씨에 생물을 만지느라 예순여섯 연세의 최홍씨 손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분은 웃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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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내고 지난 40년 동안 한결같이 장사를 해 온 형제냉동상회 최홍(66·마산시 오동동)씨의 지론이다. 때마침 녹녹하게 마른 코다리 사려던 아내가 만원어치를 주문한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큼지막한 걸로 네 마리나 골라준다.

"다른 가게 같으면 잔챙이로 네 마리 파는데, 아저씨 덤으로 주신 거 아녜요?"하며 아내는 고마운 듯 사뭇 반겼다.

그런데 우리 부부에게만 그렇게 후한 게 아니었다. 막 제수거리를 사려온 아주머니에게도 토렴하듯 조기를 한 마리 더 얹어주었다. 그러면서도 최씨는 연방 환한 웃음을 띠었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세상을 믿고 살아야지요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온종일 추운 날씨에 생물을 만지느라 예순여섯 연세의 최홍씨 손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분은 웃는 얼굴이다. 한참을 곁에 섰는데도 전혀 변함이 없는 모습이다. 어느 손님한테나 반갑게 맞이하고, 또 필요한 것 이상으로 생선 한 마리 더 얹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게 바로 재래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훈훈한 인심이 아닐까. 요즘 세상에 저런 분이 또 있을까? 아무리 시장경기가 냉랭하게 얼어붙었다 해도 최홍씨만큼만 자기 하는 일에 신실함을 가진다면 그까짓 경기부양정책이 뭐에 필요하단 말인가. 세상을 탓하기보다, 끝 모르게 추락하는 경제사정을 한하기보다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경제를 살려내는 비책이 아닐까.

갓 잡아온 어패류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어패류 좌판 갓 잡아온 어패류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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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하게 살이 오른 어패류들
▲ 어패류시장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어패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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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이번에는 어패류 시장에 들렀다. 이곳도 활어시장만큼이나 복작댄다. 그중에서도 한 가게, 호래기횟감을 파는 곳은 유난히 많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다. 기웃 고개를 들이밀었다. 가게 앞에 연탄불에는 호래기가 자글자글 익고 있었다. 두런두런 모여든 사람들은 맛보기로 내놓은 호래기 구이를 시식하고 있다.

"싱싱한 호래기예요. 안 사도 좋아요. 시장 나오신 김에 맛보고 가세요. 달짝지근한 게 죽여요. 한번 맛보고 가세요. 그냥 가시면 후회해요. 그래도 맛있다고 생각하시면 오천원, 만원어치만 사 가세요. 팍팍 담아 드릴게요. 아저씨 안 사실래요?"

마산의 명물은 복어, 아구, 미더덕, 전어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싱싱한 호래기도 그에 비견할 만하다.
▲ 호래기 시장 마산의 명물은 복어, 아구, 미더덕, 전어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싱싱한 호래기도 그에 비견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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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쯤 됐을까? 앳된 얼굴의 아가씨가 연방 손님을 불러 세운다.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들, 정작 호래기를 사려는 것보다 추운 날씨에도 호객(?) 행위를 하는 아가씨에 더 관심이 많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하나둘 연탄불 호래기 구이를 맛본다. 그냥 한 마리만 먹는 게 아니다. 몇 번을 거듭 맛보고는 서둘러 호래기를 사간다. 조금 전에 보았던 최홍씨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게 재래시장을 찾는 정겨운 모습이 아닐까. 때문에 마산어시장은 시민들로부터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도 시장 분위기를 살려내는 사람들이 있다

다들 살기가 힘 든다고 한다.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때문에 경제를 탓하고, 경기를 한탄한다. 모두다 서로 책임만 전가하고 있으니 살아날 경기도 뒤미쳐 날아나고 있다. 그러나, 그런데도 시장 분위기를 살려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시장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힘이다. 조그만 것 하나도 아니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다가선다면 어눌한 시장경기일망정 화들짝 되살아난다. 희망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태그:#마산어시장, #건어물, #활어시장, #경기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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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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