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오르니 겨울 햇살은 유난히 따뜻하고, 차디찬 산바람 속에 솜털 같이 따사한 해풍이 느껴진다. 겨울 하늘은 티 하나 없는 옥빛. '산벗'들의 발자국 소리 경쾌하고 솜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올라가는 금정산행로 군데군데 봄빛에 물이 오른 버들개지 만났다.
정녕 봄은 바다 건너서 오고, 맨 먼저 바다를 건너온 봄이 도착하는 부산 항구. 이 항구에 도착한 봄이 밤 사이 금정산을 올라와서 제일 먼저 봄을 전령했을까. 옷 하나 걸치지 않는 바위들이 햇살 아래 따뜻해 보인다. 소근소근 속삭이는 물소리처럼 봄이 속삭이는 소리가 햇살 속에서 들리는 듯.
금정산은 부산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부산의 진산. 태백산의 동으로 뻗은 줄기가 끄트머리에 와서 다시 한번 기운차게 솟은 금정산(金井山)의 금(바위, 화강감)이고, 정(물)이다. 금정산은 이름처럼 바위와 물이 많은 산이다. 바위가 병풍처럼 산을 에어싸고 있는 형국이다. 졸졸졸 얼음이 녹아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바위에 앉아 소근소근 햇살이 속삭이는 금정산 올라오니 내 마음의 깊은 곳에서도 소근소근 얼어붙은 마음이 풀리는 봄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금정산은 민중의 산이다. 부산 시민의 마음이요, 바람의 서원이며 바위의 서원이기도 하다. 바위마다 깃든 부산 사람들의 염원과 소원은 곧 부산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며 역사이다. 화엄 천년 고찰 범어사가 있고, 많은 암자 그리고 불교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원효봉, 의상봉, 파리봉, 미륵봉, 계명봉 등이다. 금정산의 원효대와 의상대 그리고 북문광장에서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설파한 '화엄벌', 금성산성을 지키는 승병 양성을 위한 연병장 등을 통해서도, 금정산은 부산 민중들의 얼이 깃든 정신의 산이다.
금정의 8경으로 불리우는 것은, 첫째, 범어사의 소나무(魚山老松)와 둘째, 운치 있는 대성암자의 물소리(大聖隱水)와 셋째, 금강암의 불타는 듯한 아름다운 단풍(金剛晩楓)과 넷째,청련암의 대숲에 내리는 청량한 빗소리(靑蓮夜雨), 다섯째, 내원암의 저물녘 종소리(內院暮鐘)와 여섯째가 금정산 계명봉의 가을 달빛(鷄鳴秋月)과 일곱째, 의상대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바다(義湘望海)와 여덟번째, 고당봉에 걸린 한 올의 흰 구름(姑堂歸雲)을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1천년 유구한 세월동안 푸르름을 자랑해오고 있는 바위 틈서리에 내린 '이름 없는 솔바위'를 하나 더 추가해, 금정의 9경이라고 칭해 본다.
금정산은 산행로가 많다. '산벗' 일행들은 금강공원 입구에서 만나, 산성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렸다. 그리고 금정산성 동문에서 서문을 거처 남문으로 이어지는 산행코스를 택했다. 이 산행코스를 금성동 코스라 이른다. 지하철을 이용할 시는 범어사역에 하차해서 순환버스를 이용해도 괜찮다. 순환버스가 범어사 입구까지 올라온다. 범어사 입구에서 산행을 출발해서, 금정산성의 북문을 지나 고당봉으로 오르는 코스도 전망이 좋다.
금정산의 주봉은 고당봉. 고당봉은 동국 해변에 의상대사와 함께 대왕이 친히 금정산에서 칠일칠야를 일심으로 독경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금정산의 상징, 금샘이 있는 자리도 곧 고당봉이다.
금정산 바위들은 소설가 김동리의 <복바위>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모두 복바위 같다. 소원성취를 시켜주는 원바위, 생각하는 염력바위, 그리고 부산 시내를 내려다보며 전생을 기다리는 기다림의 바위들이 장승처럼 서 있다.
잠시 길을 멈추고 나는 천년바위 앞에 우뚝 선다. 숱한 바위들은 바위끼리 서로 부둥켜 안고 혹은 바위와 입맞춤하는 듯 다정하게 웃는 복(福)바위들이 소근소근 햇살처럼 속삭이는 소리 듣는다. "바위야 복바위야, 거북이처럼 생긴 복바위야, 내 새해 소원 좀 들어주렴 !" 하고 마음 속으로 소근소근 말을 건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