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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롯데월드 허가를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제2 롯데월드는 지난 94년,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 구상으로 추진됐으나, 국방부 등의 반대로 무산됐던 사업이다. 그런데 MB정부가 이를 사실상 허용했다. 이에 한나라당을 비롯한 일부 보수 인사들도 나서서 이 사업 추진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4-5차례에 걸쳐 이 사업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의견과 취재기사를 내보낸다. [편집자말]
언론보도를 보니 112층 높이의 제2 롯데월드가 정부 차원에서 허용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잠실 일대 집값이 들썩이고, 전반적인 주식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제2 롯데월드 관련주들이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롯데 그룹은 '처음처럼'으로 유명한 두산 주류를 인수하고 이어서 그룹의 숙원사업까지 해결하여, 경제 위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는 기업 이미지를 굳혀 나가고 있다.

롯데측 주장에 의하면 공사비만 2조원이 투입되며 공사 중에는 연인원 250만 명이 필요하고 완공 후에는 2만3천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하니 모두가 좋아할 일로 보인다.

롯데그룹의 전방위적 홍보 때문인지 보수 신문들이 이런 측면을 적절히 홍보해 줘서 개인적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까지 찬성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집값 상승의 수혜를 직접 입고 있는 잠실 일대에 아파트 거주자들의 찬성 목소리가 더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냉가슴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난 14년 간 일관되게 반대해온 공군이다. 아무 소리 못하는 것을 떠나서, 지난 14년간 서울공항의 비행안전 문제 때문에 반대해 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소신을 접고 태도를 바꿨다는 비웃음까지 받는 신세가 되었다.

공군은 왜 갑자기 15년 소신을 접었나

롯데 신격호 회장
 롯데 신격호 회장
ⓒ 롯데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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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롯데월드는 문민정부 때인 1994년부터 롯데그룹 총수인 신격호 회장의 구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이후로 정권이 계속 바뀌는 와중에도 공군을 위시한 국방부의 지속적인 반대로 숙원은 이뤄지지 못했다.

올해 한국 나이로 87세인 신격호 회장의 연배를 생각해볼 때 제2 롯데월드는 물 건너간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올 때쯤 희소식(?) 들려 왔다. 그것은 군 복무 경험이 없는 재벌그룹 CEO 출신의 대통령 당선이었다.

문민정부에서 국민의정부·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권은 공군의 의견을 받아들여 제2 롯데월드 건설을 불허했다.

안보 논리와 경제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한 경우였지만, 역대 정부는 모두 안보 논리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것은 서울공항이 갖는 군사전략적 중요성을 인정한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정권교체 와중에서도 일관되게 '불허' 쪽으로 유지되어 오던 112층짜리 제2 롯데월드 건설이 허용 쪽으로 뒤집힌 것은 전적으로 이명박 정부, 그것도 대통령 개인의 친재벌적인 독단적 판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2008년 9월호<월간조선>에 보도된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대화록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555m에 이르는 제2 롯데월드 건물이 완성되면, 외국 國賓(국빈)을 태운 대형 비행기가 서울공항을 이용할 때 위험할 수 있습니다."(이상희 장관)
"1년에 한두 번 오는 외국 국빈 때문에 건설에 반대하는 것은 적절치 못합니다. 외국 국빈들이 김포공항이나 인천공항을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이명박 대통령)
"…."(이상희 장관)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 보세요."(이명박 대통령)
"국방부에서 다각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이상희 장관)
"그런 식이니까, 14년 동안 결정이 안 난 것 아닙니까. 날짜를 정해 놓고, 그때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검토하세요."(이명박 대통령)

비행안전 문제를 거론하는 국방부 장관에게 대통령은 대놓고 면박을 준 것이다. 날짜를 정해놓고 해결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제2 롯데월드를 허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정해진 시간까지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정답을 정해놓은 실무진의 검토는 결국 롯데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활주로 각도를 3도 정도 틀면 제2 롯데월드 건설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여기서 기존의 공군 주장과 롯데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를 검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언론에 보도된 정도의 검증은 다시 할 수 있겠지만, 고도의 항공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일반 독자가 전문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전문가들 사이에 치열한 토론과 신중한 검토 끝에 이뤄져야 할 국가 안보 문제가 경제를 우선시하는 대통령의 불도저식 정책 집행으로 일도양단 간에 결론이 났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군 실무진이 내린, 활주로 각도를 3도 정도 변경하는 것으로 비행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누가 신뢰할 수 있냐는 것이다. 제2 롯데월드 건설은 공군이 지난 14년간 보수와 진보 정권을 이어가면서 일관되게 반대해 왔던 사안이다. 여기에 대통령이 공기를 정해놓고 현장을 압박하는 건설CEO처럼 정해진 결론을 내리라고 압박한 상황을 아는 국민이라면 누군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CEO 대통령이 확실하게 밀어주는 제2 롯데월드 건설

제2롯데월드 조감도
 제2롯데월드 조감도
ⓒ 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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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군통수권자의 눈치로부터 좀 비켜서 있는 예비역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예비역 군 장성들의 모임 '성우회'의 이정린 사무총장(전 국방차관)과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은 인터뷰에서 우려를 표하거나 반대 입장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보수정권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전직 군 고위 인사들이 이 정도의 의견을 나타내는 것은 서울공항의 비행 안전문제는 대통령의 독단적 판단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활주로를 3도 트는 것으로 비행안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공군 실무진의 결론은 제2 롯데월드 건설이 허용 쪽으로 방향을 정한 이후로 나온 공군 측의 태도로 인하여 더욱 의심을 받고 있다.

공군은 제2 롯데월드가 건설되면 대통령이 탑승하는 1호기를 김포공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안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서울공항에 있는 경공격기인 KA-1대대를 횡성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공군 측은 "중장기 계획의 일환"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제2 롯데월드와 관련돼 있다는 의구심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권 역시 이 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당장 민주당이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61학번 동기인 장경작 롯데총괄사장과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개인적 친분관계로 인하여 국가 안보상 중요한 문제를 밀어붙이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한나라당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들도 일방적 경제논리로 안보를 무시하는 결정에 비판적 목소리를 더하고 있다.

성남 시민들의 숙원, 잠실 주민들의 불편

국가 중대사인 안보 문제에 대한 검토도 이 지경이니 다른 사소한(?)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신경썼을 리 만무하다.

서울공항으로 인하여 고도 제한의 피해를 봤던 성남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다. 35년간 고도제한으로 재산상의 손해를 보는데 이를 먼저 풀어달라는 것이다. 재벌그룹 숙원은 풀어주면서 100만 성남 시민의 숙원을 풀어주지 못하냐는 것이다. 한나라당 소속 시장과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발끈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군사정권과 달리 민주화 시대의 군부대의 존재는 주변 지역 주민들과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군대니까 참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파트값이 폭등할 때는 수도권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인 서울 공항을 이전하여 택지 개발을 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실현되지 못한 것은 그만한 공항을 새로 세우기가 어렵다는 것에 있었다. 군사시설은 주변 지역에 일정한 규제를 가하게 되는데, 공군 비행장은 이 규제가 보통 육군 부대에 비하여 훨씬 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군사시설로 인한 재산권의 제약은 국가 안보를 위하여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인데, 이의 적용을 특정 재벌에게 예외를 두는 순간에 지역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는 모두 군대에 간다는 대원칙 하에 징병제의 정당성이 유지되는 것처럼, 군사시설로 인한 재산상의 손해도 공평부담의 원칙이 유지되어야 한다. 이것이 깨지는 순간에 수많은 이해관계의 다툼 속에 결국 국가 안보에 위해가 가해지는 것이다.

서울 신천동 제2롯데월드 부지.
 서울 신천동 제2롯데월드 부지.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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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문제일수도 있지만, 웬만한 중소도시 인구를 상회하는 유동인구를 유발할 제2 롯데월드로 인한 교통문제는 어느 정도 검토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제2 롯데월드가 위치할 잠실역 사거리는 지금도 기존 롯데월드와 롯데백화점, 그리고 레이크팰리스를 필두로 잠실 재건축 단지들이 쭉 이어져 있는 곳으로 주말과 출퇴근 시간이면 상습적으로 정체가 이뤄지는 곳이다. 특히 잠실역 사거리는 강남역 사거리로 이어지는 테헤란로와 연결되어 있어 교통혼잡 유발 효과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잠실역 사거리는 서울의 위성도시인 성남·하남·구리 등지에서 서울 강남과 연결되는 부도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이 곳의 교통 체증은 서울시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 동부 지역 주민으로까지 영향력이 확대된다. 현재도 올림픽대로와 잠실역 사거리의 연결로 체증으로 주변 교통 상황이 말이 아닌 경우가 많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하여 롯데그룹 측은 교통난 해소를 위한 도로 개선에도 투자를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도로의 폭이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의 개선책이 폭발적인 교통증가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제2 롯데월드보다 높은 자부심... 소신 있는 공군 보고 싶다

나는 군 생활 3년을 공군에서 복무하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롯데 측의 경제 논리보다는 공군 측의 안보 논리에 1차적 애정이 가는 입장이지만, 무조건 제2 롯데월드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일방적으로 군부의 입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검토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가 안보의 문제마저도 건설사 CEO 습성대로 처리하는 대통령의 정책 결정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서울공항은 예전부터 그 곳에 있어왔고 여러모로 보나 그 곳에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 국가 안보에 최적이지만, 제2 롯데월드는 꼭 잠실역 사거리에 112층으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1998년에 협의된 대로 36층 높이로 지어도 되고, 정히 112층을 짓고 싶다면 다른 장소를 물색해도 될 일이다.

더구나 100층 높이의 초고층 랜드마크는 제2 롯데월드가 아니어도 용산, 송도 신도시, 상암 지구 등 곳곳에서 계획되고 있다. 지금은 경제 살리기 일환이 될지도 모르지만, 세월이 흘러 판교 신도시처럼 공급 과잉의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다. 재벌그룹 회장의 개인 욕심 때문이 아니라면, 공급 과잉이 될지도 모를 마천루를 국가 안보에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진행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제2롯데월드 건설로 피해를 입게 될 서울공항의 정문
 제2롯데월드 건설로 피해를 입게 될 서울공항의 정문
ⓒ 전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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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장교가 되기 위하여 진주에 있는 공군 교육사령부에서 훈련을 받을 때 가장 중요하게 교육받았던 점이 명예와 신념이었다. 훈련 와중에 사소한 거짓말에도 큰 처벌을 받아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14년 만에, 바뀐 정권 앞에서 제2 롯데월드 건설이 괜찮다는 입장을 밝힌 공군의 태도는 누가 봐도 비겁하다.

공군 현역들 사이에서 사석에서 뒷담화를 까거나 현직에 물러난 예비역이 인터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경제 논리가 치열하게 전개하면서 우리 사회를 위하여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이 타당한지 치열한 공론의 장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세력보다 전문성을 갖춘 공군이 제대로 된 이야기를 전해 주어야 한다.

군복을 벗을지언정 한 번쯤은 국가안보를 위하여 소신을 밝히는 군인의 참 모습을 보고 싶다. 신념과 명예는 장교 후보생 교육 시킬 때 말로만 지키라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소한 것에도 신명과 명예를 지키는 훈련을 받으며 장교 후보생들은 자부심을 키워나갔다. 그 자부심이 112층으로 뻗은 제2 롯데월드 앞에서 꺾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태그:#제2롯데월드, #서울공항,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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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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