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오바마 미 행정부가 정식 출범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진보적 싱크탱크인 코리아연구원과 공동으로 국제정세 및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국들의 대외 정책방향을 살펴보고,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모색하고자 합니다. 네번째 글은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가 집필했습니다. 이 글의 원문 및 관련 자료는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www.knsi.org)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
오바마정권 출범과 일본 외교오는 1월 20일 오바마 차기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일본은 미국의 동북아정책 변화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 민주당은 노조 지지를 기반으로 해 일본과 통상마찰을 일으키기 쉬운 데다, 미일동맹과 미중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중시해 온 점에서 일본은 미국 민주당 집권을 꺼려왔다. 힐러리가 이끌어갈 강한 국무부는 외교정책을 중시하는 오바마정권의 성격을 대변하면서 동아시아정책의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취임 1기에는 아예 북한과 대화를 거부했던 부시 정권과 달리, 오바마 차기정권은 벌써부터 북한특사 임명을 통한 직접대화를 거론하고 있다.
미국외교를 주도해 온 네오콘진영에 제동이 걸리면서 미일관계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으며, 이것은 일본의 동북아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부시진영에서 동아시아정책을 주도했던 지일파 관료들이 대거 퇴진하고 오바마정권 내에서 중국전문가가 부상하는 상황에서, 미일동맹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양자 관계를 중시해온 부시 정권과 달리 미중관계와 미일동맹 사이의 균형 및 동아시아를 포괄하는 다자간 협력을 중시하는 오바마정권의 등장에 따라 일본의 동북아외교는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미일관계는 군사안보차원의 미일동맹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치경제협력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에서 기축에 해당하며, 이것이 크게 바뀌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차관보를 지냈고 미일동맹을 중시하는 하버드대학 교수출신 조지프 나이를 주일대사에 내정한 것도 이것을 말해준다. 미국과 일본 사이에 정치, 경제, 군사, 시민 차원의 연대는 매우 강하다. 미국은 어디까지나 미일동맹을 동아시아외교의 기축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관계 발전을 국익과 첨예하게 관련된 최우선 외교목표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동아시아지역에서 다자체제를 선호하는 오바마정권은 한국-미국-일본, 미국-일본-호주, 미국-일본-중국 등 다자간 전략대화 구축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관계의 중시와 일본의 역할 감소, 북한핵문제에서 미-북한 사이의 타협가능성은 일본의 입지 축소를 뜻하며, 일본 외교의 위기의식을 높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오바마 차기대통령과 취임전 상견례를 추진해 왔지만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일본 외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미국의 오바마 신정권에 미일관계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이라고 이야기될 정도이다.
미국의 대북한 정책의 변화는 일본과 한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대북특사를 임명하여 북한과 직접적인 대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미-북한 대화가 오가면서 한국과 일본이 상당 부분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 대북관계 개선의지가 약한데다 일본도 납치문제에 묶여 있어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외교접근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게 될 경우, 한국과 일본은 미-북한 접근을 예의주시하면서 상호간 정보교환과 협력방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들어 북한은 한국이나 일본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주장을 수차례 되풀이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 북한 핵폐기와 미-북한 국교수립을 추진할 경우, 납치문제 해결에 집착하는 일본외교는 6자회담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작년 11월 미국이 일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해제한 것은 일본 외교의 실패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 내각부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90% 이상이 납치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6자회담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국제무대에서 납치문제는 일본 외교의 선결과제로 반복되고 있다. 납치문제가 일본외교의 지상명제로 거론되고 있는 현실은 일본 외교의 한계를 말해준다. 납치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미일관계의 리트머스시험지로 작용하고 있으나. 미국의 반응은 일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2월 12일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6자회담은 부시정권의 대북정책 실패를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부시정부는 2.13합의의 조기 이행을 통한 외교적 성과를 모색하였지만, 일본과 한국은 부시 정권이 임기 중 북한 핵폐기에 대한 성과를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이 아니냐라는 견제심리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6자회담에서 미-북한 사이의 수면하 타협을 우려하였으며, 차기 오바마정권이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할 것에 대비하여 한·미·일 공동연대를 강조하는 자세로 일관하였다. 일본은 납치문제에서 진전이 없다는 이유로 중유 20만 톤 지원분을 호주, 싱가폴이 분담하는 방향으로 재조정하는 등, 북한과의 교섭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일본 정치가의 동북아 인식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 북한핵과 납치문제 등으로 일본 정치가와 국민 사이에 점차 내셔널리즘 의식이 높아져가고 있다. 침략과 식민지배를 통해 끼친 중국과 한국에 대한 가해자 의식 못지않게 피해자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경제적 비중에서 중국에 뒤처져가는 일본 국가의 역량,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일본인 납치 등은 일본 국민을 자극하며, 동북아지역에서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반일감정에 대응하여 일본 내에서는 혐한론, 혐중론이 쉽게 고개를 들기도 한다. 전후세대 정치인들이 정치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가 아이덴티티를 모색하거나 강한 국가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동북아 국가들에서 공통된 현상이지만, 일본 정치가의 경우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보통국가론을 주장하는 우파 정치인들은 중국에 대한 일본의 부채의식을 털어버리고 당당한 국가적 위상을 가지고 대응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과 체제가 다른 만큼, 교류가 확대되면 될수록 마찰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일본 내 전통적 친중파가 만들려고 하는 취약한 우호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얼굴을 붉히더라도 할 말은 하는 관계, 대화와 논의를 거듭하면서 대등해지는 일중관계로 발전시켜가야 한다고 본다. 중일간 이익대립과 갈등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하고, 이를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후 세대 우파정치인들의 공통점은 헌법 개정을 추진하며, 역사·영토·교육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후체제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일본, 강한 일본을 추구하는 공감대를 지니고 있으며, 일방적인 전후반성보다는 일본의 국익을 중시하는 국제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나온 일본의 전 항공막료장 다모가미 도시오(田母神俊雄)의 논문은 일본의 중국침략이 합법적인 조약에 따른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군의 일본군 공격은 현재의 일본자위대가 주일미군을 공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일동맹 하에서 일본의 방위부담을 점차 늘려가면서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격상하였다.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을 통과시켜 인도양에서 미국전함에 급유활동을 지속하는 등, 외교안보 측면에서 국제적 참가와 자위대 활동범위 확대를 점진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다. 소말리아에서 빈발하는 해양분쟁에 대응하기 위하여 일본정부는 새로 해적행위대처법을 만들어서 유사시 공격받기 전에 먼저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유엔평화유지활동법이나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은 원칙적으로 무기사용은 정당방위나 긴급피난 시에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 법률이 통과되면 분쟁지역에서 보다 적극적인 무기사용을 허용하게 되고, 자위대의 해외군사활동이 부분적으로 가능해진다.
일본 동북아외교의 한계는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 영토분쟁, 야스쿠니참배, 교과서왜곡이 일본외교의 고립상황으로 귀결된 것은 고이즈미 전 수상의 사례를 들지 않아도 된다. 일본은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을 통하여 독도지역이 포함된 중간수역을 만들어 한국과 영토분쟁 구실을 키워가고 있으며, 중국과도 잠정수역을 설정하여 갈등을 낳고 있다. 중국과는 2008년 5월 후진타오 주석의 방일시 천연가스 유전 공동개발에 가까스로 합의하였다.
지난 1월 5일 일본은 해양에너지 광물자원개발계획의 초안을 발표하였다.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 지역 내 광물조사와 채취가 목적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에너지 등 자원분포 상황과 매장량을 2009년부터 10년간 조사하고, 완료 후에 본격적으로 채취한다는 방침이다. 3월 말까지 해양기본계획이 확정되고 조사지역에 독도가 포함될 경우, 한일갈등은 다시 재현될 수 있다. 일본은 어업권보호에서 해저자원개발로 정책목표를 이전하고 있으며, 굳이 독도부근 해양자원 조사를 강행한다면 한일간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일본 정치가의 국제전략은 우파성향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명확한 외교전략과 정책체계를 구비한 것은 아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수상은 아베정권기 외상시절에 자유와 번영의 호(弧)를 주창한 바 있다. 일본 외무성도 참여하여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외무차관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외교구상이었다. 이것은 발트 3국에서 시작하여 동유럽과 우크라이나, 터키, 카스피해 3국을 거쳐서 중앙아시아, 인도, 동남아로 이어지는 신흥민주주의를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러시아가 그루지아를 침공했을 때에 일본정부는 아무런 메시지도 보내지 못했다. 일본 외교비전의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었다.
2009년은 일본정치에서 커다란 분수령이 될 것이다. 금년 9월 임기만료로 실시되는 총선거에서 자민당 패배가 점쳐지고 있다. 이미 지지율 하락과 총선거 연기로 자민당 내 분열과 이탈조짐마저 나오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2009.1.11)에 따르면 아소내각의 지지율은 겨우 20.4%에 불과한 반면, 지지하지 않는 비율은 무려 72.3%에 달하고 있다. 수상후보감으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가 39%를 얻은 반면, 아소 수상은 27%로 뒤처졌다. 그러나 민주당으로 정권교체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가의 동북아인식은 별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내에 우파성향을 띠거나 납치문제를 중시하는 의원이 다수 포진하고 있으며, 실제로 2007년 해저자원개발법 제정을 주도한 쪽도 민주당 의원들이었다.
위기와 협력: 한일관계미국의 정권교체에 따른 동아시아정책의 변화,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은 일단 한중일 3국간 갈등의 개연성을 봉합하고 있다.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임박하여 한중일 3국은 동아시아 금융안정을 위한 공동협력체제를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약 800억 달러 규모의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중과 한-일 사이에 각각 300억 달러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하였다. 북한 핵폐기 검증에 대한 한중일 3국의 일치된 유감표명도 긍정적인 것이었다. 작년 12월 후쿠오카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은 기존의 아세안+3체제가 아닌 한중일 3개국 수뇌가 참석하는 동북아 정상회담을 정례화했다는 데서 그 의의가 크다.
한중일 3개국 내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는 심각하다. 중국은 이미 실업자가 2천만 명을 넘어섰고, 경제성장률을 대폭 하향 조정하였다. 일본경제도 작년 3분기이후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하반기 연속 두 달 동안 무역적자를 기록했으며, 4분기 국내총생산은 34년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을 보였다. 일본은 재정악화와 경기침체로 상호간 무역의존도가 높은 중국, 한국과 경제협력이 불가피하며, 상대적으로 높은 중국의 경제성장이 가져올 대중수출 증가와 경기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국내외적 위기 요인은 한일간 갈등을 잠시 수면하에 억제하거나 또는 적극적인 협력체제가 생겨날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빅터 차(Victor Cha)가 <적대적 제휴>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냉전기 한국 내 미군철수에 대항한 한일양국의 유사동맹(quasi-alliance)은 21세기에도 금융위기라는 새로운 공동의 가상 적 출현과 한일협력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엊그제 1월 12일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아소 수상 간 한일정상회담은 본격적인 셔틀외교 개시로 복원된 한일관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일관계의 안정적인 발전, 금융과 경제 분야에서의 실질협력, 북핵과 납치문제해결을 위한 공동협력, 지역과 국제무대에서의 협력방안 등이 논의되었다. 특히 일본과 한국의 재계 주요 인사가 대거 참석하여 비즈니스 정상회의가 열렸다는 점에서 양국재계의 회동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2008년 한 해 동안 한일양국의 수뇌는 무려 6차례나 만난 데 이어, 2009년 벽두부터 셔틀외교를 통하여 다시 만나는 친밀한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양 정상은 과거사나 영토 문제를 의제로 삼지 않았고, 일본도 경제협력 면에서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다. 무엇보다도 작년 한일간에 300억 달러 스와프협정 체결에 이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항목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한일무역역조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는 부품소재 산업에서 일본기업의 한국진출, 금년 4월경 일본투자구매단의 한국방문, 양국의 중소기업간 교류와 협력, 이공계 학부유학생 파견 등은, 기술분야에서 한일협력을 추진하여 무역불균형을 해소해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밖에 한일 양국 간 인적 교류확대, 우주와 원자력 등 과학기술분야 협력에 합의하였다. 북한핵문제에 대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대처하기로 한 것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일단 주시하면서 공동 대응하는 쪽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 공동지원을 통한 글로벌 전략에서 한일양국이 협력하는 내용 등도 포함되었다. 한일FTA 실무협의 검토, 양국정치가 교류, 한일신시대공동연구 프로젝트 추진 등에도 합의하였다.
맺음말한일정상회담의 개최로 한일관계는 과거 갈등관계에서 벗어나 일단 회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 오바마정권의 출범을 앞두고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는 한일양국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협력 방안, 북한 핵문제 대응 공조, 글로벌 전략의 가능성을 탐색한 자리였다. 한국은 양국 간 경제협력에 중점을 둔 반면, 일본은 북한핵과 납치문제에 대한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였다.
동아시아에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공유하는 한일 우방간 상호협력이 동북아평화와 번영에 기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한일 양국 간 협력무드는 바람직하지만, 금년에 독도영유권 문제, 내년 한일합방 100년을 앞두고 역사와 영토갈등은 항상 내재되어 있다. 총선거 이후 일본의 차기정권과 한일관계의 재정립은 중요하며, 이는 향후 이명박 정부의 한일관계를 좌우할 것이다.
일본정치가 안정되고 한국정치가 리더십을 회복하면서, 한일 양국은 양국관계를 증진시킬 21세기 한일비전과 실행프로그램에 합의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영토, 역사, 교육이 한일간 갈등요소로 확대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양국은 21세기 한일비전이 한일협력에서뿐만 아니라 한중일 3개국 동북아지역협력체제 형성에서 토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