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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풍자소설 같기도 하고 철학동화 같기도 하다.

 

읽고난 느낌이 아주 알짜배기 간식을 먹고난 뒷맛이랑 비슷하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거라 무심코 읽었는데 이런 대어라니! 무식하게도 난 여태 이 작가 마르셀 에메란 이름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다. 해서, 도대체 누군데 일케 소설을 맛깔나게 쓰는 거야, 찾아봤더니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라 퐁텐의 우화나 샤를 페로 동화의 맥을 잇고 있는 프랑스 작가로서 초자연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 골계와 반어와 역설의 탁월한 구사, 특히 그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비현실적 효과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세계의 현실성을 견실하게 유지한다는 점에서 아주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작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초록 망아지>, <하늘을 나는 장화>, <착한고양이 알퐁소> 등이고. 이 유명한 동화를 쓴 작가 이름을 몰랐다니, 이러고도 동화와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입네 했다는 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건 그렇고 하여간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표제작인 이 단편집에는 총 다섯 편이 소개되어 있다. 한 편 한 편이 다 괜찮지만 특히 <생존시간 카드>, 이 작품은 완전히 살 떨린다.

 

소설 서두에서 '설정'이 뭔지 아는 순간 입에 침이 고여왔다. 그리고 미친듯 일독한 후의 감전된 듯한 충격이라니…. 그래 바로 이런 소설, 더도 덜도 말고 나도 딱 이런 소설 한 편 써보고 싶다는 간만에 느껴본 욕심으로 회가 동해 본 작품이다.

 

아, 그리고 <칠십리 장화>에서 작가가 소품을 활용한 수법(?) 역시 괜찮은 노하우구나 싶다. 동화나 우화를 패러디한 작가가 어디 한둘이겠느냐마는 이런 식으로 살려낸 작품은 처음 본 거 같다.

 

작가는 페로의 동화 <엄지동자>에서 이야깃거리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별 것 아닌 것, 장화를 소설 속으로 끌어 들이는데,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스스로 상징을 부여하게 하고 그 상징을 현실 속에서 '사실적으로' 살려낸다. 이로 인해 동화적인 요소로 채워진 <칠십리 장화>가 동화의 범주에서 소설로 건너온 게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환상적인 요소가 어떻게 현실 속에 알맞추 들어앉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표제작인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도 환상적 요소가 위에 두 작품 못지 않다. 어리석고 고집 세고 뒤틀리고 탐욕스럽고 심술 궂은 인물이 등장하고, 때문에 인물과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보다 더 시니컬한 어른동화 같은 소설이랄까. 세상과 인간과 사회 조직에 대해 피곤한 느낌이 묻어나는데, 이상한 건 읽고난 뒤의 느낌이 무겁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어이없고 황당하고 비현실적이어서 기분 나쁘게 환상적이기까지 한 우리 사는 세상에서 잠시 눈을 돌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독 바란다. 지병이 될 거 같은 우울을 살짝 날려보낼 수 있을 거라는 걸 보장한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문학동네(2002)


#마르셀 에메#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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