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14일 양상훈 워싱턴 지국장 칼럼 '난민촌 대한민국'에서 세계유일 광우병 소동에 '경제 도사'(미네르바)까지 출현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 원인은 뿌리 없이 흔들리는 난민촌 같은 한국사회 때문이라고 했다. 이 칼럼이 지적한 대로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쏠림 현상, 확 달아올랐다가 금방 잊어버리는 냄비 현상, 지역과 같은 원시적인 기준으로 편을 갈라 싸우는 패거리 현상"이 난민촌에서 흔히 일어나는 것들이라면 난민촌 대한민국이라 부를 만하다.
그렇다면 그런 현상과 이명박 정권의 정체성에 대해 얘기해 보자. 한국의 정당 수명은 평균 2년도 채 안 되거니와 이곳 저곳 몰려다니는 정치패거리들이 보수 정치를 펼치고 있다. 따라서 냄비현상이 정당역사에서도 그렇지만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행태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과 같이 편을 갈라서 싸우는 일이 없었다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한나라당이 한국에서 인구가 많은(현 거주자나 타지에서 출신지 기준) 경상도를 기반으로 하는 탓에 10년 만에 권력도 되찾았다. 칼럼이 주장하는 대로 난민촌 같은 한국사회의 정체성 때문에 수구보수정치가 가능하고 지금처럼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켰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럼 소위 광우병 소동에 대해 얘기해 보자. 미국에서 수입해 오던 쇠고기를 수입 중단한 것은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 때문이었다. 당시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한 것은 정부였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부 당국자 특히 농림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청 같은 곳에서 전문가들이 판단해서 수입을 중단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한미FTA는 사전 4대 선결과제 중 하나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약속했다. 원죄는 노무현 정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협상의 책임은 이명박 정권에 있다. 이명박 정권은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 위한 협상을 앞두고 부시의 별장에서 마치 선물하듯 졸속으로 미국측 요구를 수용했다. 농림부 협상담당자들은 그 이전 협상 때 주장하던 태도에서 180도 입장을 바꾸었다.
그것이 국민들을 분노하게 한 것이다. 애초 광우병 위험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은 농림부 즉 정부 당국자였고 입장을 바꾼 것도 정부였다. 제2 롯데월드 건설이 전투기 비행 상 어렵다는 것을 15년 동안 주장해 오던 국방부가 청와대 지시로 180도 입장을 선회한 것과 같다. 활주로의 이착륙 각도를 3도만 틀면 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15년 동안 몰랐던 군인들이 국방을 책임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생할 때 광우병이 위험하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려준 것은 정부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른 채 촛불을 들고 나온 여중생이거나 MBC <PD수첩>이 아니다. 따라서 그 수입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광우병 위험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 했다. 그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졸속으로 협상을 전개했다. 30개월 이상의 살코기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쓰레기로 처분하거나 사료로 사용하는 부위(광우병 우려가 높은 SRM 물질)까지 수입하기로 합의했다. 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이 결정한 "미국은 광우병이 발생하나 통제 가능한 나라"라는 결정을 근거로 쇠고기 수입을 밀어붙였다. 이웃 일본은 그런 OIE 결정보다는 일본 자체 내의 결정에 입각해 20개월 이상의 미국 쇠고기는 수입하지 않고 있다.
이에 분노한 국민들을 아무것도 모르고 부화뇌동한 것으로 몰아가는 것은 매우 비굴한 공격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제정신이 아니어서 국민들에게 두 번씩이나 머리 숙여 사과하고 추가협상까지 했는가? 촛불이 폭력적으로 탄압당하고 촛불지도부가 구속되었다고 이런 식으로 비열한 공격을 퍼붓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촛불이 완전히 꺼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진실은 역사 속에서 살아서 꿈틀거린다.
미네르바를 "경제도사"로 묘사하며 신파극으로 몰아가고 있다. '747경제'가 파산하면서 주식과 펀드가 반 토막 나고 아파트 값이 폭락하고 경기가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얼어붙는 마당에 미네르바가 던지는 주장들은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 주장 글이 인터넷이 지니는 단점인 익명성과 투박한 표현 그리고 비전문가가 가지고 있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고위 경제정책 담당자나 학자들이 금융, 경제위기 상황에 대한 예측이 전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점점 더 위험의 터널로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따라서 전적인 책임은 정부당국자와 명성 있는 대학이나 학위를 가지고 권력 주변에서 돈과 권력과 사회적 지위를 누린 자들이 책임 질 일이다. 그리고 금배지를 달고 정치를 한다고 떠들어대는 국회의원들이 져야 할 일이다. 나아가 마치 여론을 형성하고 주도하는 선구자인양 교만하게 떠들어 온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보수자본언론들이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천박한 선전지 수준의 여론몰이에 편승해 법률적 잣대를 들이대 구속까지 저지르는 정치검찰이 져야 할 책임이다. 이 '난민촌 대한민국' 칼럼은 본말이 전도되었고 스스로 정체성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나아가 조선일보의 오만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