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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쿠바 혁명이 50주기를 맞이했다. 50년 동안 혁명의 주역은 하나 둘씩 떠났거나 떠나가고 있다. 쿠바 인민을 50년 동안 통치했던 피델 카스트로도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다.

 

먼저 떠난 이들 중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혁명가가 있으니 '체 게바라'다. 체는 카스트로와 함께 1959년 1월 1일 바티스타 정권을 끝내며 아바나에 입성했지만 1965년 4월 쿠바를 떠나 볼리비아로 향했다. 볼리비아에선 또 다른 독재정권 바리엔토스 정권이 인민을 핍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혁명가로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 1967년 10월 9일 미국이 가담한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잡혀 삶을 마감했다.

 

영원한 혁명가 '체'를 잊을 수 없어, 많은 이들은 '체'를 혁명의 우상으로 가슴에 담았고, 그를 기념하는 책들이 나왔다. 그 중 하나가 페르난도 D. 가르시아와 오스카 솔라가 지은 <CNE, 한 혁명가의 초상>이다.

 

<CNE, 한 혁명가의 초상>는 게바라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긴 여정을 사진 400여점으로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정치가로 활동하던 시절까지 체가 남긴 흔적들 따라간다. 또 그동안 공개 되지 않았던 사진들과 체 게바라 자신이 남긴 글 외에도 혁명 동지였던 피델카스트로가 쓴 글들이 실려있다.

 

알고 있듯이 체는 가난한 자로 태어나지 않았다. 선조 중에는 스페인 총독 출신도 있었고, 아버지는 지리학자이면서 탐험가 출신이었다. 어머니는 무신론자였다. 주류 가문에서 태어난 그가 가난한 민중들을 위해 평생을 받쳤다는 것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하늘은 그에게 '천식'을 주었다. 천식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대담한 행동과 돌파력을 가지게 하였고, 고등학교 시절 그는 천식환자들에게는 절대 금지인 럭비를 하는 등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피해가기보다는 맞서 싸우는 쪽을 택했다.

 

천식과 맞서 싸웠던 체는 4500km의 여행을 마치며 단순히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 민중을 위한 삶을 살겠노라 다짐하면서 게릴라 투쟁에 몸담게 되고, 쿠바혁명을 승리로 이끈 혁명가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젊은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떠난다. 자신과 다른 세상을 만나고, 자기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여행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나게 한다. 그는 다섯 나라를 지나는 8개월 동안 가난한자들을 만났다. 나환자를 만났다. 여행 도중 그는 많은 기록을 했지만 그 땐, 할아버지 로베르토 게바리처럼 '탐험가'로서의 시각이 더 컸다. 하지만 그가 여행을 끝냈을 때는 달랐다.

 

"나는 민중의 편에 설 것이며, 교의의 해부자이자 교조의 정신분석가인 나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바리케이트와 참호를 공격하고, 붉은 피로 내 무기를 적시하리는 것을 안다. 나는 싸움을 준비하며 내 몸을 긴장시키고 내 존재를 성소로 준비함으로서 승리의 노동계급과 무산자의 처절한 외침 속에 깃든 감동과 희망을 찬양할 것이다."(39쪽)

 

그는 의사와 탐험가가 아니라 게릴라 전사로서 거듭났고, 그 삶을 성실히 살았다. 피델과 많은 이들을 만나 쿠바 혁명을 이룩했다. 혁명을 성공했다면 권좌에 앉이 권력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는 떠났다. 궁금했다. 권력에 탐닉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그는 볼리비아로 갔을까?

 

 

<CNE, 한 혁명가의 초상>은 어떻게 답했을까? 1964년 '체'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1964년 12월 체는 알제리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우리는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의 공존을 인정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평화의 공존을 유지해왔습니다." (151쪽)

 

이는 소련을 겨냥한 경고였다. 사회주의란 겁떼기만 걸쳤을 뿐 알맹이는 착취하는 자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모스크바와 함께 할 수 없었다. 모스크바와 결별할 수 없는 피델을 위하여 체는 페델과 '정치적 결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피델은 작별 편지를 체에게 보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쿠바의 모든 책임을 면제시켜주려 하오 .쿠바가 나에게 보여준 모범에서 제외하고 말이오. 만약 내가 다른 하늘 밑에서 나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내 머리 속에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은 쿠바의 인민들, 특히 바로 당신일 것이오."(164쪽)

 

"끊임없이 전진하지 못하는 혁명은 혁명의 후퇴와 다를 바 없"으며 "나는 괜찮소. 우리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고, 또 그럴 것"이라 했던 체는 1967년 10월 8일 생포되었고, 다음 날 볼리비아 정부 지시와 미국 CIA의 묵인 하에 혁명가로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체는 마지막 순간에도 웃음을 머금었고, 시신은 자신의 적들에게 조소를 남겼다. 그들은 그가 정말로 생명을 잃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자, 가장 오래까지 웃는 자는 바로 그였다."(195쪽)

덧붙이는 글 |  페르난도 D. 가르시아와 오스카 솔라가 지음 ㅣ 안종설 옮김 ㅣ 서해문집 펴냄 ㅣ 20,000원


Che - 한 혁명가의 초상

페르난도 디에고 가르시아 & 오스카 솔라 지음, 안종설 옮김, 서해문집(2001)


태그:#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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