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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간조사협회 사무실의 로고
▲ 한국민간조사협회 사무실의 로고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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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지면에 '사설탐정'이라는 단어가 오르내렸다.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에 후보로 출마한 김평우 변호사가 변호사들의 사설탐정업 진출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김평우 변호사는 신임 변협 회장으로 선출됐다).

유년시절부터 추리소설을 즐겨읽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탐정'이라는 직업을 꿈꾸어 보았을 것이다. 작은 자신만의 사무실에서 사건을 의뢰하는 고객을 만나고, 날카로운 분석과 추리로 맡은 일을 해결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보수를 받는다. 꽤 매력적이고 보람있는 일 아닐까.

민간조사원, 사설탐정과는 달라요

추리소설에서 형상화된 탐정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탐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 단어에는 왠지 남의 사생활을 파헤치고, 뒷조사나 하고 다니는 뉘앙스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민간조사원(PI : Private Investgator)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민간조사원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의 각종 분쟁들을 법률의 범위 안에서 조사하고 분석한다. 때로는 정부, 검찰, 경찰 등의 공권력과 협조하여 개인이나 단체, 기업의 부정사실조사와 증거수집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을 수행하면서 중요한 요소는 개인정보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이런 민간조사원들이 활동한다. 우리나라에는 약 500명의 민간조사원들이 있고 해마다 약 60여 명 가량이 증원되는 추세다. 아직까지 관련법안이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호사의 위임을 받아서 활동을 해야만 하는 제약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만 이 법안이 없는 상태다. 영국도 2년 전에 통과시켰고, 일본도 1년 전에 만들었다. 이 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법무부, 행자부, 검찰청, 경찰청에서 모두 느끼고 있다. 17대 국회에서는 무산되었지만 18대 국회에서는 제정될 거라고 본다. 지금같은 글로벌 시대에 우리나라만 뒤처져서야 되겠나."

지난 달 16일 경기도 분당에 있는 한국민간조사협회(www.pikorea.org) 사무실에서 만난 유우종(45) 협회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유 회장은 고등학교 시절 외삼촌의 의문사를 보면서 이런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민간조사원들은 어떤 활동할까

한국민간조사협회 사무실에 앉아있는 유우종 협회장
▲ 한국민간조사협회 사무실에 앉아있는 유우종 협회장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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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민간조사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다. 유 회장은 그때 자신이 생각했던 이미지는 탐정이자 맥가이버였다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 후에 20여 년 가까이 미국, 독일, 영국, 호주 등 해외의 민간조사원제도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한국의 실정에 맞게 정착시키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현재의 한국민간조사협회와 한국민간조사교육원이다. 민간조사원이 되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주최하는 민간조사 전문가교육과정을 우선 수료해야 한다. 이 교육은 한국능률협회, 한국범죄수사감식협회, 한국법과학연구소, 대한손해보험협회, 한국산업보안연구소의 후원 아래에서 진행된다.

"민간조사라고하면 사람들은 무슨 미아찾기, 가정사건, 이런 것들만 생각한다. 그건 전체에서 아주 일부에 해당한다. 산업스파이, 사이버범죄, 해외도피사범, 보험사기, 지적재산권 등이 민간조사원들의 주영역이다."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민간자격증인 PI자격증을 발급받은 수료생들이 많이 진출하는 분야도 이런 분야라고 유 회장은 말한다. 보험회사의 조사원이 되거나 기업의 법률팀 또는 법률사무소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니면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개인사무실을 열어서 의뢰인을 받을 수도 있다고. 유 회장이 그런 대표적인 경우다. 최근에는 산업스파이, 지적재산권 또는 기업의 부정사건 조사 등의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민간조사원 전문가 과정은 인성교육, PI법학개론, 범죄심리학부터 시작해서 지문감식, 보험범죄, 기업회계부정조사, 실탄사격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실제로 활동하면서 총기는 소지하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민간조사원도 총을 소지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실탄사격교육을 왜 하느냐. 어떤 의식적인 차원이다. 사건을 의뢰받아서 조사할 때 나약해진다거나 또는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된다. 실탄사격을 하면서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그런 다짐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민간조사원 되나

전문가 교육을 받기 위한 자격조건은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범죄사실이 없는 남녀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현재 3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응시하고 있다. 오래 전에 셜록 홈즈의 로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늦게나마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사건을 의뢰받아서 현장으로 조사를 나갈 때 민간조사원이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 신분을 밝힐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거나 사건조사에 방해가 될 가능성도 있고, 일반인들에게 민간조사원은 아직도 낯선 개념이기 때문이라는 것.

"사건 조사를 끝내면 항상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에서 인정하는 방식으로만 조사를 해야 한다. 빨리 법제화가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그런 거다. 어떤 관계자는 말하기를, 조사할 일 있으면 누구나 나서서 조사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한다. 누구나 조사하면 안된다. 정해진 규칙 내에서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사해야 한다."

업무의 특성상 신변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도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단다.

"2000년경만 하더라도, 보험사기사건에 조폭들이 많이 연루되어 있어서 위험하지 않느냐, 이런 얘기를 종종 들었다. 경호업무라면 그만큼의 위험이 따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자신을 노출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에 처할 가능성도 적어진다."

하지만 어떤 직업에 몸을 담고 있건 자신의 신변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법. 유 회장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 일을 생각하면서 몸을 단련해왔고 특전사에서의 군생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태어난 곳은 경남 거창, 그곳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보고 겪었던 일들, 그때 느꼈던 것들을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다.

"시골 법원 앞에 보면 옛날에 말하는 그런 해결사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한테 잘못 걸리면 가해자, 피해자가 뒤바뀌는 것은 순간이다. 그런 식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이 구치소에 다녀오는 경우가 있다. 시골사람들 단순하기 때문에 구치소에 한번 다녀오고 나면 거의 정신병자 수준의 리스크가 발생한다. 우리 삼촌의 일도 그렇다. 내가 보더라도 추락사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처리됐다. 거의 3개월 동안 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 일을 구상했다."

사설탐정업에 진출하려는 변호사들

 인터뷰 중인 한국민간조사협회 유우종 협회장
 인터뷰 중인 한국민간조사협회 유우종 협회장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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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김평우 변호사가 후보 시절 변호사들의 사설탐정업 진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사설탐정이란 것은 현재의 민간조사원을 지칭하는 것인데 그럼 기존의 민간조사원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유 회장은 의외로 담담하게 말한다.

"변호사라고 해서 베테랑 민간조사원보다 낫다는 보장이 없다. 기업이나 일반인이 누구한테 의뢰할까. 변호사라고 해서 의뢰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같이 갈 수 있다면 좋다. 모자란 부분은 서로 채워주고."

만일 법제화가 된다면 변호사의 위임장이 없어도 의뢰된 사건을 자유롭게 조사할 수 있다. 다만 조사하되 검찰의 관리를 받게 된다고 한다.

이런 제도가 시행되면 가진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불평등이 더 커지지는 않을까. 돈 없는 사람들은 억울한 일이 있어도 변호사나 민간조사원을 찾기가 힘들테니까. 유 회장은 그것도 제도적으로 보완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저소득층의 경우는 관련법을 통해서 그들을 위해 예산을 따로 비치해두면 된다고 한다. 돈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돈으로 의뢰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따로 책정된 예산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최근 경기서남부 연쇄살인과 같이 묻지마 살인이 종종 일어나고 범죄도 갈수록 지능적으로 변해간다. 민간인의 신분으로 그런 범죄와의 한판승부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민간조사원에 한번 도전해보는 것이 어떨까. 파이프 담배를 물고 조용히 사색하는 셜록 홈즈의 이미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매력적인 전문직이면서 자신의 노력에 따라서 고소득을 올릴 수도 있는 직종이다. 유 회장은 민간조사원들이 계속해서 자기계발을 할 것을 강조했다.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한다. 법과학, 지적재산권, 보험사기, 법률조사 등 자기만의 주특기를 하나 가지고 외국으로 가서 공부도 많이 하고.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인성이다. 교육과정에서 그리고 실무를 하면서 배운 노하우를 범죄에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 입학할 때 인성평가에서 70점을 넘지 못하면 아예 자격시험을 못보게 한다. 정도와 중도, 선비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이 일이다."

 경찰 "민간조사제도 불법행위 근절에 도움"
다음 글은 경찰과 검찰을 상대로 '민간조사원'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질의한 것에 대해 두 기관이 보낸 답변이다.

경찰

국민신문고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의에 대한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경찰청의 입장에서는 민간조사제도가 사인의 분쟁해결 및 용역센터의 불법행위 근절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긍정적인 입장에 있습니다.

현재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이 민간조사제도를 골자로 한 '경비업법' 개정안을 발의, 입법절차 진행중인 바, 국민 여러분께서 제도도입에 적극적인 지지를 해주신다면 더욱 조속히 법안이 통과되어 제도가 시행, 국민께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현재로서는 민간조사관을 경찰청에서 관리감독하고 있지 않아 교육과정 중의 실탄사격은 경찰청에서 허가를 한 바가 없습니다. 다만, '사격장'은 관할 지방경찰청장의 허가를 받아야만 개장할 수 있으므로, 사격장을 마련하여 실탄사격을 할 경우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며, 이에 대하여는 해당 지방경찰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하여 문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또한, 민간조사관을 경찰관으로 특채하거나 공채시 가점을 부여하는 제도는 현재 마련되어 있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검찰

안녕하십니까 대검찰청 민원담당자입니다.

현재 민간조사원 제도 도입에 관한 '경비업법 개정안 등 법률안'에 대해서 국회의원의 발의가 있는 상태이며, 법무부에서도 대검찰청 등 여러 산하기관의 의견을 수렴하여 법률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법무부에서 검토중인 사항에 대하여 산하기관인 대검찰청의 의견을 직접 외부에 표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됩니다. 원하시는 답변을 드릴 수 없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라니다.

귀하께서 검찰에 보내주신 관심과 격려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민간조사원#한국민간조사협회#사설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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