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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대한민국 교육계의 수준을 가늠해볼 사건이 발생했다. 한쪽에서는 성희롱 관련으로 쫓겨났던 전직 교장이 화려하게 현직에 복귀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했던 현직 교장이 중징계를 받아 교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충청북도교육청(교육감 이기용)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성희롱 혐의로 정직 1개월 후에 직위해제되었던 충북 괴산의 이아무개(60) 전 교장이 도교육청 연구관으로 다시 복귀했다. 같은 날 전라북도교육청(교육감 최규호)은 지난해 10월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가한 김인봉(55) 장수중학교 교장을 정직 3개월의 중징계에 처하며 교장의 업무를 중지시켰다.

 

같은 날 동시에 발생한 두 교장에 대한 엇갈린 처분을 보면서 교육철학도 명분도 상실한 대한민국 교육계가 암울한 빙하기 시대에 접어든 것은 아닌가 걱정이 앞서기만 한다.

 

성희롱 정직 1개월, 체험학습 허가는 정직 3개월?

 

이번에 충북교육청 학생교육문화원 장학관(학교장 중에서 선발하는 직책으로 교육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승진한 경우라고 본다)으로 복귀한 이아무개 전 교장은 2007년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의 여교사를 성희롱한 혐의로 1개월 정직처분을 받았으며 2008년 법원으로부터 700만원의 손해배상 판결까지 받고도 해임이나 파면은커녕 다른 중학교로 다시 발령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해당 중학교 학생과 학부모의 등교거부와 교육감실 점거농성, 지역 교육계의 비난 여론에 직면했던 충북교육감은 다시 이아무개 교장을 직위해제했다.

 

그러나 충북교육청은 15일 직위해제 기간이 끝나자마자 "이 전 교장이 특별 연구과제를 무난히 수행하였다"라는 이유를 밝히며 그를 다시 장학관 자리에 복귀시킨 것이다.

 

충북공동대책위 등은 이번 조치에 대해 '도민들을 기만하는 처사'라고 밝히고 이 전 교장의 퇴진을 교육감에게 요구하고 나섰다.

 

반면 전북교육청은 장수중학교 김인봉 교장에 대해 "일제고사를 거부한 것은 초·중등교육법 제9조를 위반하였다"며 정직 3개월의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김 교장은 앞으로 3개월 동안 교장 직무를 수행할 수 없으며 같은 기간 급여도 3분의 1만 받게 된다.

 

김 교장은 지난해 10월 전국적으로 실시된 일제고사에서 시험을 보는 대신 현장학습을 신청한 학생 8명에게 이를 허용했었다. 이에 전북교육청은 김 교장에 대해 "일제고사를 거부했다"는 죄(?)로 중징계를 내린 것이다.

 

김 교장은 이번 징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교육자로서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존중해 주었을 뿐"이라는 명확한 입장을 밝혔으며 '사회공공성 공교육강화 전북 네트워크' 등은 "학교장 재량으로 현장체험 학습을 승인한 교장을 중징계한 것은 명백한 교권침해"라고 징계 반대 투쟁을 계속한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학생과 학부모 선택권 보장은 학교장의 의무

 

장수중학교 김인봉 교장은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하려고 체험학습을 허용하였다. 일제고사를 대신하여 체험학습을 요청한 학생에 대해 교장으로서 허용한 것이 중징계를 맞아야 할 죄가 되는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자녀가 일제고사를 보지 않기를 원하면 학교에 의사를 전달하고 면제(exemption)를 받을 수 있고,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자녀의 시험점수가 통계 처리 되지 않기를 원하는 경우 이를 신청하여 제외시킬 수 있다고 한다.

 

당연히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한 김인봉 교장에 대한 중징계는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무너져 가는 대한민국 공교육을 살리고 엄습해 오는 '교육빙하기'를 막아내는 최소한 조치가 될 것이다.

 

오늘(16일) 또 서울교육청에 이어서 강원교육청에서도 일제고사 거부교사에 대해 해임과 파면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선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학교 서열화를 반대하는 것이 성희롱보다 더 큰 죄가 되는,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교육사에 유례가 없는 이 야만적인 징계와 반교육적인 일제고사 강요야 말로 교육을 거꾸로 되돌리는 정책이다.


태그:#일제고사, #김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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