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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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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이

올 겨울 중 가장 추운 수은주를 기록했던 지난 15일 물살이 세고 수위가 깊어 좀처럼 얼지 않던 계룡시 두계천에 두꺼운 얼음이 얼었다.

 

넓은 공간이 생기자 이내 두계천 한 자락에는 썰매를 들고 나온 아이들로 북적거렸고, 어느샌가 썰매장이 생겼다.

 

눈으로 뒤덮였던 얼음판은 아이들이 왔다 갔다하며 썰매를 즐기는 동안 눈이 조금씩 사라지고 투명한 얼음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아이들의 썰매 스피드도 종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방학을 맞은 동네 아이들이 서로 앞을 다투며 얼음판으로 몰려와 썰매를 즐기는 사이 썰매장으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모르는 사이에 벌써 '썰매 대여'를 하는 장사꾼이 한 자리 차지하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시간에 관계없이 3천원의 썰매 대여료를 받는 장사꾼 아저씨와 불을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한 편에 쌓여있던 썰매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 추억에 빠졌다.

 

성냥 챙겼어? 다른 건 몰라도 성냥은 꼭 챙겨야 돼

 

마을에서 초등학교로 가는 중간에 비교적 큰 냇가가 흐르던 우리 마을 아이들은 다른 마을에 사는 아이들에 비하면 정말 행운이었던 같다.

 

이 냇가를 통해 여름에는 수영을 하고, 겨울에는 썰매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곳이 더 좋았던 것은 물고기도 잡고, 수중 생물을 쉽게 구하고 볼 수 있어 자연학습하는데 천혜의 보고라는 점이었다.

 

학교에서도 거리가 가까워 '자연' 과목 시간에는 마치 소풍을 가듯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살아있는 자연체험을 할 수 있고, 이곳에서 같이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자연을 만끽했던 기억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남아 있다.

 

특히, 유난히도 추웠던 어린 시절 겨울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기온이 뚝 떨어져 냇가에 얼음이라도 얼게 되면 마을친구 여럿이 무리를 지어 썰매를 타기 위해 냇가로 이동한다. 그런데, 무리 중에 썰매가 없는 친구가 있으면 다같이 썰매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재료를 구하러 마을 구석구석을 뒤진다.

 

스케이트날과 ㄱ자 모양의 쇠로 만든 고급스런 썰매를 만들어서 같이 타면 좋겠지만, 이러한 재료들은 구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만드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려 일단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판과 굵은 철사, 못 등을 구해 뚜딱해서 허름하지만 그래도 제법 구색은 갖춘 썰매 하나가 완성된다.

 

일행 모두가 썰매 하나씩 들고 이제는 기분좋게 썰매장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때 친구 한명이 무엇인가 떠오른 듯 말을 꺼낸다.

 

"아차! 성냥 챙겼어? 다른 건 몰라도 성냥은 꼭 챙겨야 되는데..."
"성냥은 왜? 오줌 싸게?"
"썰매타다가 옷 젖으면 말리게. 옷 젖어서 집에 들어가면 혼나잖어."
"아~맞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내가 부엌에 가서 하나 가지고 올게."

 

라이터 구하기가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는 지금보다 성능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아리랑성냥 하나면 만사가 해결됐다. 가마솥으로 밥을 하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도 성냥이 있어야 했고, 석유를 넣어서 지금의 가스렌지와 같이 음식을 하던 곤로에 불을 붙일 때도 성냥이 필요했다. 물론 썰매를 타다가 옷이 젖었을 때도 성냥 하나면 만사 해결되었다.

 

내가 성냥을 가지고 도착하자 친구들은 웃으면서 다같이 썰매장으로 이동했다.

 

일명 '곰보' 얼음 보신 적 있습니까? 없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점심도 거르고 썰매를 타기 위해 온 친구들은 냇가에 도착하자 신나게 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썰매 타는 스타일도 썰매의 모양과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각양각색이었다. 긴 꼬챙이를 들고 서서 타는 친구,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편안한 자세로 타는 친구, 썰매의 진정한 스피드를 즐길 수 있는 무릎 꿇고 타는 친구 등 다양했다.

 

이렇게 썰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얼마의 시간이 흘렸을까. 신나게 썰매를 타다가 썰매장을 둘러보니 날이 풀린 까닭에 얼음표면에 물기가 생기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얼음 녹는데. 깨지면 위험할텐데."
"괜찮어. 이제부터가 재미있는겨."
"이제부터? 왜? 더 위험하지?"
"아냐. 얼음이 곰보되면 출렁출렁 거리면서 더 재미있어."
"그래도 위험할 텐데. 나는 불이나 피워서 양말이나 말려야 되겠다."

 

말을 마친 난 썰매를 한 편에 두고는 주변에 있던 논으로 가서 추수를 마치고 쌓아 둔 짚을 가져다가 썰매장 주변에 불을 피웠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불가에 앉아 한참을 말리고 있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곰보가 된 얼음판을 누비며 재미있게 썰매를 즐기고 있었다.

 

바로 그때 친구 한명이 곰보가 된 얼음판을 건너다가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물속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그리 깊지 않은 곳이어서 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속옷까지 다 젖은 게 문제였다.

 

한쪽에서 얼음이 깨지자 다른 친구들도 더 이상 썰매를 타지 않고 모두가 얼음판 밖으로 나왔다.

 

"얼른 이리 와서 옷 말려. 동상 걸릴라."
"옷 다 젖었는데 언제 말리냐. 큰일났네. 엄마한테 혼날텐데."
"가까이 와서 말려. 다 말릴 수 있을겨."

 

한참을 그렇게 불가에 앉아 젖은 옷과 양말을 말리고 있는데 갑자기 타는 냄새가 났다.

 

"야! 옷 탄다. 빨리 치워."
"엄마한테 더 혼나겄다. 차라리 젖은 게 나을 뻔 했네."
"조심했어야지. 어쩌냐."
"잘 가려서 가야지 뭐."
"그게 가린다고 되냐? 솔직히 말씀드려."

 

잔뜩 기대를 가지고 와서 재미있게 하루를 보냈지만 결과는 옷도 젖고, 불에 옷까지 태워 어린 동심에 상처만 남게 되었다. 옷을 태운 친구는 결국 집에가서 엄마한테 호되게 혼났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추억들이 있기에 썰매를 타는 아이들을 보며 회상에 젖어볼 수 있는 게 아닐까.


태그:#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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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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