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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의 신년 강좌는 두 명의 명사가 강연과 진행을 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이문재 시인은 '명강연자'가 아니라 '명진행자'라는 타이틀을 얻을 만했다. 강연록은 매주 시사IN에 연재된다.
 시사IN의 신년 강좌는 두 명의 명사가 강연과 진행을 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이문재 시인은 '명강연자'가 아니라 '명진행자'라는 타이틀을 얻을 만했다. 강연록은 매주 시사IN에 연재된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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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벽두의 화두는 '경제' 아니라 '농촌'

"우리 모두 농민이 되지는 않더라도 농민을 중심에 두고 농적 가치를 귀하게 여기면서 살지 않으면 모두 끝장이다."(김종철)

"일본의 모든 초등학생들은 반드시 일주일간 농촌에서 지내야 한다는 규정이 문부성과 농무성에 의해 만들어졌다. 농촌의 원시적 생명력을 누려야 올바른 인간이 된다는 취지의 정책이다."(박원순)

요즘 시사IN 신년강좌를 들으러 다닌다. 돈을 내고 받는 유료강좌(강좌당 1만5천원)라 그런지 눈 부릅뜨고 강의를 듣게 된다. 첫 주(1월 7일)에는 희망제작소 박원순 변호사를, 두 번째 주(1월 13일)에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을 만났다.

<작가와의 만남>류의 강연회를 적잖이 다녀보았고 직접 주최를 해보기도 했지만 두 명의 연사가 제각기 역할을 맡아 진행하는 방식은 신선해 보였다. 특히 1월 13일 김종철 발행인과 함께 강연을 진행한 이문재 시인은 초반의 예열기와 강연 후의 청중문답 시간에 적절한 끼어들기 기술(?)을 선보이며 강연의 품격을 높여 주었다. 이를테면 생태적 상상력에 대한 김종철 발행인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채워지자 이문재 시인은
"생태적 상상력이란 문명과 곁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문명을 완연히 거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강력한 상상력입니다"라는 말로 김 발행인의 생태 철학을 말끔히 정리했다.

공교롭게도 박원순 변호사와 김종철 발행인이 꺼낸 화두는 '농촌'이다. 물론 각론은 달랐다. "대한민국 농촌에 술에 미친 사람 10명만 있어도 엄청난 성장을 거둘 수 있어"라거나 "안성으로 내려가서 안 무거운 합금방식을 만들어 보라"와 같이 박원순 변호사가 말하는 '농촌'은 철저히 사회적 기업 마인드에 따른 개념인 반면, 김종철 발행인의 '농촌'은 생명의 절박한 해방구로서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깊이가 다르다.

청중들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다. 박원순 변호사의 강연을 듣던 전라도의 방청객은 "박 변호사님이 말씀하시는 '농촌'은 농촌에서 올라온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도시의 싸구려 생산기지로서의 시골에 가깝다"고 매서운 비판을 했다. 김종철 발행인도 독자의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최근 서울로 사무실을 옮긴 데 대해 "지는 시골 내려가서 농사 지으라고 말하면서 상경은 또 무슨 말이냐"며 항의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박원순 변호사는 손수 자료화면을 준비해 와 세계의 사회적 기업의 사례를 소개했다. 많은 사례를 소개했지만, 요지는 "우리도 할 수 있다"였다. 나는 박원순 변호사의 '포지티브'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박원순 변호사는 손수 자료화면을 준비해 와 세계의 사회적 기업의 사례를 소개했다. 많은 사례를 소개했지만, 요지는 "우리도 할 수 있다"였다. 나는 박원순 변호사의 '포지티브'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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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척하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나약한 도시인들

"서울 사람 천만명이 매일 똥을 눈다고 생각해 보라. 이게 1~2년도 아니고 계속 되는데 똥 누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김종철 발행인은 자동으로 똥을 처리해 주는 양변기를 쓰는 도시인의 나약함을 단 한마디로 벗겨냈다. 그는 도시에 사는 사람의 일상을 다음과 같은 말로 정리했다.

우리가 사는 일상은 하나같이 거짓투성이이고 전쟁처럼 살아가면서도 빠져나올 줄 모른다. 인간의 품위와 자존심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살 수가 없고, (도시에서 살아가려면)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농촌은 먹고 싸는 문제에 있어서는 '책임감'이 있다. 17년 동안 농촌 문제를 고민하며 흙 묻은 글쓰기를 해온 평론가답게 그의 말은 유기농 야채처럼 거칠게, 그러면서도 내 내장에 직접 닿는 듯한 힘이 느껴졌다. 그가 말하는 '농적 가치'란 철학적으로 보면 '관조적인 삶'에 닿아 있다. 김 발행인은 일본의 장기 불황기를 보도한 뉴스위크 지의 기사를 인용했다. 해고와 조업 단축 등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일본인들은 생애 처음으로 꽃을 구경하고 황혼이 지는 모습을 오랫동안 응시했고, 비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고독에 잠길 수 있었다. "좋은 삶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삶"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구가 흘러나왔다.

이야기에 홀려 있는 사이에 경제학으로 넘어갔다. 미국의 경제불황이 불러온 세계적인 경제불황을 보는 녹색평론의 발행인은 "경제성장이 멈췄다. 이제 모두 춤출 시간"이라고 선언했다. 경제 불황을 통해 우리가 어떤 자본이 부족했는지가 명확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현금자본과 부동산 자본이 아니라 바로 '사회자본'과 '인간자본'이 우리에게 필요한 자본이라는 설명이다. 김 발행인의 유년 시절에는 동네마다 정신을 놓은 사람이 있는데, 이런 금치산자들 중 굶어죽었다는 경우는 드물었다. "친구들이 있고 인간관계 있다면 사람들이 이 사람을 굶어죽도록 그냥 놔두지 않는다"는 것이 김종철 식 '자본론'이다.

그 다음은 교육이다. 김종철 발행인은 파격적으로 '대학 무용론'을 주장했다. 아예 조만간 '대학 안 가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대학 가 봐야 비정규직을 벗어나기 힘들고, 정규직이 돼 봐야 40세가 되면 어김없이 정년이다. 취직하자마자 정년을 맞게 되는 셈이다. 김 발행인의 말을 조금만 응용하면 대기업, 공무원이 되는 것도 별로 가치롭지 못한 삶인 셈이다.

전 주에 박원순 변호사는 이미 "삼성 사원, 공무원 되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김 발행인은 농촌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입이 닳도록 자랑했다. 흙을 밟으면 심성이 부드러워지고, 작물 키우면 자연히 어질어진다는 것이 꼭 김 발행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잘 아는 상식이다. 그는 농업과 교육의 융합을 고민하고 있는데, 이문재 시인은 김 발행인이 녹색평론 차원에서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종철의 농적 가치는 '정치학'으로 향했다. 녹색평론을 읽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소농공동체'는 녹색평론의 전매특허 아닌가. 김 발행인은 간디가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과 비슷한 정치철학을 주창했다고 말했다. 즉 자유시민 5~6천명이 모인 마을을 만들어 간다. 5~6천 명 이상은 직접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이 마을은 사실상 조그마한 공화국인 셈인데, 간디는 70만개의 마을에 각각의 공화국을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간디는 위대한 정치철학자라고 김 발행인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김 발행인은 "도시보다 농촌이 훨씬 민주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농촌은 1인이 명령을 내려서 작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민주적 가치는 빌딩이 아니라 숲과 땅에 둥지를 튼다는 말이다.

김종철 발행인의 '농적 가치'는 철학, 경제학, 정치학 등의 주제를 넘나들면서 뚜렷한 형상을 만들어 갔다. 하지만 '문학'이 빠질 수 있을까? 김 발행인은 '이야기의 부재'를 걱정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친구가 1년에 한번씩 찾아와 회포를 풀고 갔는데, 그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겪은 이야기를 밤새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김 발행인과 형제들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밤새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다고 회고했다. 한국인이 농촌에서 멀어지면서 이런 풍요로움은 더 이상 계승되지 않은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손실이라며 무척이나 아쉬움을 나타냈다. 인생이란 기본적으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신년강연에 '돈 내고' 참여한 방청객들은 빈 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저마다 필기도구를 가져와 강연 내내 판서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매 강연마다 주최측에서 강연을 불가피하게 끊어야 할 만큼 대단한 열기였다.
 신년강연에 '돈 내고' 참여한 방청객들은 빈 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저마다 필기도구를 가져와 강연 내내 판서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매 강연마다 주최측에서 강연을 불가피하게 끊어야 할 만큼 대단한 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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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은 영원한 블루오션

박원순 변호사의 '농촌'은 창의성이 가득하고 쓰고 남을 만큼 사회적이며 현실적이다. 그는 일본의 JAL 항공과 한국의 KAL 항공의 서비스를 단적인 예로 들었다. "JAL 항공을 타면 승객들에게 일본 전통주를 주는데, 우리의 KAL 항공을 타면 외제 위스키와 포도주만 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 경쟁력을 상실한 우리의 모습이라고 한탄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4000곳이 넘는 지역의 특산 명주가 생산된다.

박원순 변호사가 강연 내내 설파한 내용의 요지는 우리는 모두 레드오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개인도 그렇고 기업이나 국가가 모두 그렇다. '삽질'로 대표되는 정부의 비전은 빨갛다 못해 선혈이 낭자할 지경이며, 삼성 등 대기업도 '샌드위치 위기론'이나 '굴뚝'의 상상력을 넘지 못한다. 박 변호사는 21세기에는 소니나 도요타 같은 대기업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작은 기업이 무서운 시대가 되었다고 말했다. 1만 명을 고용한 1개의 기업은 만들 수 없어도, 1인을 고용한 1만 개의 기업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기업은 농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강연을 듣는 내내 강의 내용보다는 세계를 열성적으로 뛰어다니는 그의 체력이 궁금했다. 육체적 체력은 물론 정신적 자양분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궁금했는데, 그 비결은 그가 시골 출신이었다는 데 있었다. 시골에서 중학교 다닐 때 매일같이 30km 되는 거리를 걸어다니다 보니 체력이 좋아지고 발바리처럼 열심히 뛰어다닐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 명강사의 강연을 들으며 나는 '농촌'이라는 화두를 강력하게 머금었다. 한낱 나약한 도시인에 불과한 사람으로서 농촌까지의 거리가 까마득하지만 김종철 발행인의 말처럼 국내산 농산물을 구매하거나 생협에 가입하는 등 농촌과 아예 거리를 두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뛰어다니며 사고하라는 메시지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생각이다. 박원순 변호사의 말처럼 한 가지 일을 정신없이 하다 보면 다음에 할 일이 또 생기기 마련이니까.


태그:#박원순, #김종철, #시사IN 신년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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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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