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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우리 국민은 놀라고 가슴 쓰린 일을 겪었다. 어떤 실성한 노인이 던진 시너로 자랑스러운 숭례문이 불타버렸기 때문이었다. 불과 1년도 안 된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더 놀랍고 가슴 쓰린 일을 목격하게 되었다. 6명(경찰 1명 포함)이나 되는 사람 목숨이 기구하게도 숭례문처럼 시너에 불타 비명횡사했기 때문이다.

 

작년 숭례문 화재가 났을 때 어떤 비관적인 시인은 이명박 정부의 앞날을 알게 해주는 징조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시인의 말을 다 믿지는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대통령이 새로 결정된 시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취임하는 대통령을 축하했고 새 정부의 성공을 기원해 주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한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숭례문 복원은 국민 성금으로 하면 될 것이다"라고 했던가? 이번에 대통령은 민정수석의 보고를 받고 "사건의 진상을 시급히 파악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는 최소한의 유감 표명조차도 하지 않은 채 책임 소재를 가리기에 앞서 진상 파악이 우선이라는 냉엄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수많은 건설공사를 지휘한 바 있는 CEO가 아니었던가? 인명이 희생되었다는데 우선 유감표명이라도 하고 보는 것이 대통령에 앞서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가 아닐까? 우리는 이토록 자기 방어(디펜스)에 급급한 여유 없는 대통령을 일찍이 체험한 바가 없다.

 

 

정권 몰락의 징조는 여러 번에 걸쳐 나타나는 법

 

가혹한 말이지만 사람이 다수로 죽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무시로 일어나는 일이다. 최근에 만도 경기도 이천 공사장이나 고시원 등의 화재에서 다수의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이번 용산 철거민 참사는 이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고 무서운 사건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공권력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인명이 희생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공권력이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공권력의 집행이 외려 국민의 생명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불행이자 모순인 동시에 전적으로 공권력의 주체인 정부가 책임질 일이다.

 

또 하나 더 큰 문제는 공권력에 의해 국민이 생명을 잃는 일은 정권의 위기 또는 말기 현상 중 하나라는 데에 있다. 통상 정권 담당 능력이 부족한 정권일수록 공권력에 의존하게 되고 그 결과 공권력이 남용 또는 만용하게 되면 어김없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면 필경 정권이 몰락하게 되는 것이 역사의 이치다. 최근의 예로 아르헨티나의 델라루아 정권이 정부 정책 반대 시위를 진압하다가 5명을 죽게 만든 결과 정권이 몰락했다. 

 

이런 점에서 참사 현장을 방문한 진보신당 노회찬 공동대표가  "이번 일은 시작일 뿐"이라고 한 말은 의미하는 뜻이 날카롭다. 사실 큰일의 징조는 한 번에 그치는 법이 없다. 그것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징조를 나타내는 법이다, 시인의 말대로 숭례문 화재부터가 이명박 정권 몰락의 징조였다면, 사실 정권 몰락의 징조는 지난 1년 동안 적지 않게 누적되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지난여름의 격렬하고 치열했던 촛불시위가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는 어느 날 갑자기 태도를 바꿔 강경 진압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다행히도 큰 인명사고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이를 정부는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한 것 아닌지? 사고가 없었던 것은 촛불시민들이 파국을 원하지 않았거나 또는 국민 여론의 지원을 얻기 위한 비폭력적인 방법론 때문이었다.

 

이는 둘 중의 어느 것이든 민주적인 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자신들의 비민주적인 진압으로 촛불시위가 가라앉았다고 착각하지 않았나 싶다. 그때 그들이 동원한 것이 특공대와 컨테이너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 참사에 동원된 것도 영락없이 특공대와 컨테이너였고 그것이 참사의 직접 원인이 되었다. 요컨대 특공대와 컨테이너를 과신한 그들의 무모함과 어리석음이 이번 참사를 자초한 것이다.

 

'선무당 정부'에 의해 재현된 '난쏘공'의 참극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된 것은 1976년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때는 공권력의 만용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이 소설은 '난장이 일가'로 상징되는 도시 철거민 가정의 불행과 파국, 그리고 있는 자들과 이를 비호하는 공권력의 만용을 그렸다. 

 

한동안 우리는 난장이의 비극을 망각하거나 외면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이 '난쏘공'이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하나의 징조라면 징조가 아니었을까? 작가 조세희는 "난쏘공은 30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 우리를 화나게 한다. 여전히 있는 자들의 '악'이 '선'인 채 가장하여 위세를 부리고 있다"고 분노한다.

 

작가의 말대로 도시 철거와 이에 따른 철거민들의 불행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이번에 희생된 철거민 들 중에는 50대 가장도 둘 이상이나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들에게는 정치적 성향도 없을 것이다. 하물며 이념 따위는 더욱이 있었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는 것이 절대 절명인 가장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같은 배금주의 사회에서 가족이 생계를 위협 받는다는 것은 곧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저항한 것이다. 30년 전의 주인공은 굴뚝에 올라가 자살을 선택했지만 그들은 옥상에 올라가 저항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인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그 반대인 죽음이었다.

 

이것은 오히려 30년 전보다 더 끔찍하고 불행한 정황이다. 박정희· 전두환 등의 군부독재정권도 도시철거민을 다룰 때에는 시간을 가지고 신중을 기했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선무당 정부'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

 

참사 현장이 사업구역으로 지정된 것은 불과 3년도 안 된 2006년 4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용산구청이 관리 처분 계획 인가를 내 준 것은 작년 5월이었다. 이로써 볼 때 이명박 정부는 채 1년도 안 되는 유예 기간을 주고 정처 없는 세입자들을 무작정 혹한의 거리로 내몬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저항을 함부로 탓해서는 안 된다.

 

현장에는 삼성, 포스코 등 재벌기업들의 공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공권력은 영하의 냉기에도 아랑곳 않고 마구 물대포를 쏘았고 특공대를 투입하고 컨테이너를 옥상에 올려 몰아붙였다. 이것은 난장이처럼 굴뚝에서 떨어져 죽으라는 요구나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이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방화 살인이나 진배없는 짓이었다. 결과 5명의 난장이들과 1명의 공무 수행 젊은이가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부상당한 철거민과 경찰들 역시 만용을 부린 공권력의 희생자들이다.

 

 

법을 가장 많이 어긴 대통령이 법치를 강조해 빚어진 일

 

이명박 대통령은 시도 때도 없이 법치를 강조해왔다. 그처럼 법치를 많이 강조하는 지도자가 있었을까?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국민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얼마나 여러 차례 법을 어겼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사고가 터지기 전 날 삼성재벌의 떡값 추문이 있는 데다 유달리 법 집행을 강조하던 인물을 법무차관에, 촛불에 대한 최고 강경파이자 고향 후배이기도 한 사람을 치안총수로 결정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특공대 투입은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의 승인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결국 이번 사건은 이명박 정권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다. 특공대의 작전 내용을 알아보니, 그것은 전시의 작전 수행이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정상적인 법 집행이 아니었다. 그들은 철거민들을 마치 전쟁 중의 적군인 양 취급했다. 불과 수십 분의 작전에서 6명의 사망자와 20여 명의 부상자가 났다면 이것은 전쟁 상황보다 심한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위기가 심화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정부가 얼마나 신속히 그리고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정권의 앞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터이다. 지난 정권 때에는 시위대 한 명이 죽었는데도 경찰청장이 물러나고 대통령이 사과를 해야 했다. 이에 견주어 이번에는 보다 분명하고도 진지한 반성과 책임 추궁 및 쇄신이 따라야 한다.

 

당장 용산 현장에서는 다시 촛불이 점화되었다. 경찰은 20일 촛불추모집회에서도 폭력진압을 시도했다. 앞으로도 이럴 건가? 특공대와 컨테이너로 한 번 막아보시라. 단 그것이 정권 몰락의 지름길임을 모른다면 말이다.


태그:#용산참사, #촛불, #난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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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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